역사 이야기

[스크랩] [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71>와각지쟁(蝸角之爭)

강나루터 2017. 4. 1. 05:13

[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71>와각지쟁(蝸角之爭)

 

蝸: 달팽이 와 角: 뿔 각 之: 어조사 지 爭: 다툴 쟁 

 

 

명분도 없는 부질없는 싸움이나 별 성과가 없는 전쟁을 비유한다.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의 준말이며 와각상쟁(蝸角相爭) 와우지쟁(蝸牛之爭)과 같다. 장자 ‘칙양(則陽)’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제나라 위왕(威王)과 맹약을 했으나 위왕이 배반하자 혜왕은 노여워하여 자객을 보내 그를 찔러 죽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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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말을 들은 공손연(公孫衍)이 만승의 군주가 필부를 보내 원수를 갚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군사를 일으켜 정당하게 공격하라고 하였다. 계자(季子)라는 자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손연의 의견에 반대했고, 화자(華子) 역시 공손연과 계자의 의견이 모두 잘못됐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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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논쟁이 계속될 뿐 결말이 나지 않자 혜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혜시(惠施)가 현인 대진인(戴晉人)을 천거하여 혜왕과 만나게 했다. 대진인이 달팽이를 아느냐고 묻자 혜왕은 그렇다고 했다. 대진인은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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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왼쪽 뿔에 있는 나라는 촉씨(觸氏)라 하고,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는 만씨(蠻氏)라고 했습니다. 때마침 ‘이들이’ 서로 영토를 놓고 싸워서 주검이 몇 만이나 되게 즐비했고 도망가는 군대를 쫓아갔다가 십오 일이 지난 뒤에야 돌아왔습니다(有國於蝸之左角者曰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曰蠻氏, 時相與爭地而戰,伏尸數萬, 逐北旬有五日而後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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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된다는 혜왕의 말에 그는 천지 사방 위아래의 공간에 끝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혜왕이 없다고 하자 그의 말은 이어진다. “무한한 공간에서 노닐게 할 줄 알면서, 이 유한한 땅을 돌이켜본다면 이 나라 따위는 있을까 말까 할 만큼 아주 하찮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혜왕에게 대진인은 위나라나 제나라도 겨우 촉씨와 만씨처럼 별 볼일 없는 그런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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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쟁은 없던 일로 되어 버렸다. 시인 백거이도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 때문에 다투는가(蝸牛角上爭何事)-‘대주(對酒)’”라고 했듯이 하잘것없는 다툼을 버리고 대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송산리고분군중 지석이 나와서 무령왕릉이라고 알수있는 유일한 고대왕조 왕릉이다.

 

公州 宋山里 古墳群

백제가 문주왕(475~477), 삼근왕(477~478), 동성왕(479~501), 무령왕(501~523), 성왕(523~554)까지 64년간 도읍지로 삼았던 곳인 웅진(지금의 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해발고도 130m의 송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송산 서쪽으로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동쪽으로는 공산성이 보인다. 송산리 고분군에는 벽돌무덤과 할석 ·괴석으로 만든 돌방무덤 2가지 유형이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왕릉의 분포를 보면 계곡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 동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5호분은 궁륭으로 된 천장식 돌방무덤인데, 1~4호분은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직후부터 6세기 초반에 출토된 것으로 보인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터널형 천장의 벽돌무덤으로서 백제시대의 벽돌무덤으로는 이 두 개만이 남아 있다. 6호분은 벽 네 면의 일부에 사신도를 그려넣은 벽화고분으로서 긴 배수구가 널길을 향해 밖으로 뻗고 있으며, 벽돌의 무늬와 축조방법상 무령왕릉보다 조금 앞선 6세기 초의 무덤으로 보인다. 6호분의 배수로가 5호분의 널방[] 아랫부분을 지나고, 무령왕릉의 배수로 상면에 5호분의 봉토 일부가 걸리는 점으로 보아 무령왕릉 역시 5호분보다 일찍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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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誌石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으로 2매이다. 이 지석은 무령왕의 장사를 지낼 때 만들어진 것인데, 그 후 왕비()를 합장하였을 때 이 매지권()의 뒷면을 이용하여 왕비()에 관한 묘지문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1971년 무령왕릉을 발굴, 조사할 때 함께 출토되었다. 크기는 왕의 매지권이 길이 41.5cm, 너비 35.2cm이고, 왕비의 매지권은 길이 41.3cm, 너비 35.5cm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진묘수鎭墓獸

사자(死者)의 시신이 묻혀있는 무덤은 성스러운 장소로 귀중한 유품들이 부장되어 있다. 악령이나 도굴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묘실과 연도에 상서로운 짐승의 모습을 표현한 진묘수(鎭墓獸)를 두었다. 초기에는 점토 조형이 주류를 이루지만, 점차 유약을 사용한 도기로 바뀌어 간다. 몸체는 사자, 용, 멧돼지 등을 모델로 삼았으나, 머리에는 뿔을, 몸에는 날개를 달았으며, 눈을 크게 뜬 채 혀를 내밀고 있는 괴수의 모습이 많다. 이는 상상 속의 신령스런 짐승이며 전체적으로 주칠을 하였다

 

 

동탁은잔 공주 무령왕릉 - 높이 15cm -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동탁은잔은 뚜껑과 잔, 잔받침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박산향로의 구성과 비슷하며, 뚜껑과 잔의 바깥 면과 잔받침의 안쪽 면에 향로에서 보이는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뚜껑에는 삼산형()의 산봉우리가 4곳에 솟아 있고, 그 사이에 봉황, 사슴, 살아가는 새, 나무가 순서대로 새겨져 있다. 잔은 윗부분에 구름무늬(유운문: )가 물 흐르듯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세 마리의 용이 유유히 날고 있으며, 또 그 아래로는 연꽃과 고사리 같은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잔 윗부분의 구름무늬를 중심으로 위에는 봉황과 산수문이 아래는 용이 새겨져 있어 백제금동대향로의 전체적인 구성()과 닮아 있다.름무늬를 중심으로 위에는 봉황과 산수문이 아래는 용이 새겨져 있어 백제금동대향로의 전체적인 구성()과 닮아 있다.

 

동제잔

안의 안쪽은 물고기 그림, 바깥쪽은 연꽃그림이 세겨진 유물인데, 작품성이 아주 뛰어남,

국보급은 아니지만, 급보급보다 더 세련된 모습에 한참을 감상했습니다.

 

출처 : 시간과공간
글쓴이 : 재휘애비溢空총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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