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제14분) 해설 /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3)
<상을 떠나서 적멸함>(3)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 說非忍辱波羅蜜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 설비인욕바라밀
是名忍辱波羅蜜
시명인욕바라밀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가 설하되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라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환경이나 금욕스러
운 상황을 끝까지 참아냄으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입니다.
다른 바라밀도 있지마는 상을 떠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인욕이라는 것이
중요한 방편으로 대두됩니다.
허황된 일체의 상에서 떠나게 되면 그 어떠한 감정의 대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참아낼 대상도 기뻐할 대상도 성낼 대상도 그 어떤 것도
없게 됩니다. 우리들의 고통을 초월하였으므로 실제로 참을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욕바라밀은 인욕바라밀이 아닌 것이고 단지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인 것입니다.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앙 할절신체
我於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아이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주자상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하이고 아어왕석절절지해시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嗔恨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응생진한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야, 내가 옛적 가리왕에게 신체를 낱낱이 베
일 때에 나는 그때에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베일 때
에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으면 응당 성내고 원망함을
내었으리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초월하여 텅 비어 있는 상태에서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에 대하여 성을 낼 수 있겠습니까. 인욕바라밀도 인욕
바라밀이라고 할 수 없는 그 경지를 부처님께서는 전세(前世)에 겪었
던 실제를 예로 들려 주십니다.
부처님게서 전생에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서 산중에서 혼자 수행을
하고 있을 때, 그 시대의 왕인 가리왕(歌利王)은 많은 신하와 궁녀를
거느리고 사냥을 나왔습니다.
왕은 점심을 먹은 후 노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자기 주위에
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여기저기를 찾아보니 자기의 시종
들이 바위앞에 있는 어느 수행자에게로 가서 지극한 예를 다한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시종들이 전부 거기에
가 있으니 왕은 거만한 마음에서 큰 화가 났습니다. 그 수행자에게로
급히 가서 물었습니다.
"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러자 그 수행자는 고요히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인욕(忍辱)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그래 정말로 참기를 그렇게도 잘 하는냐. 내가 직접 시험을 해 보겠다."
하면서 칼을 뽑아 수행인의 신체를 하나하나 마디마디 잘라내었습니다.
"이렇게 해도 아프지 않느냐. 원망하는 마음(瞋恨)이 나지 않느냐."
"내 이미 있지 않고 너 또한 떠나 있는데 무엇이 아프고 누구를 원망
한단 말입니까."하며 그렇게도 낱낱이 베임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늘의 제석천이 그것을 보고 가리왕에게 돌비(石雨)를 퍼부어
벌을 주고, 수행자의 몸을 본래대로 환원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바늘 끝에 조금 찔리거나 손가락에 조그마한 가시 하나
가 박혀도 얼마나 아픕니까. 가만 있는 사람을 약간만 건드려도 신경질
부터 내는게 보통 우리들 수준인데 그토록 마디마디 살점을 오려내고
뼈를 갈라놓은 아픔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진한(瞋恨)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는 수행자다. 수행자니 이 정도는 참아야지'하는 수준의
인욕은 아닐 것입니다. 나와 너를 공(空)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사상(四相)에서 떠나 있으므로 이미 고(苦)의 상도 없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고통도, 원망할 가리왕도, 심지어는 고마
워할 제석천도 없는 것입니다.
須菩提 又念過去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에
수보리 우념과거어오백세 작인욕선인 어이소세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수보리야, 또 과거 오백세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때의 세상에서도 아상이 없었으며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으며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생각난 김에 부처님께서는 과거 오백생 동안에 수행한 인욕을 다 반야
의 광명에 비추어 들려 주십니다. 그 때에도 사상이 없음으로 해서 이름
하여 인욕바라밀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꼭 부처님의 전세가
아니더라도 역사상에는 이와 같은 예가 많이 있습니다.
사자존자(獅子尊子)는 부처님의 법맥을 이은 분 중의 한 분인데 이교도
의 모함을 받아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에 임하면서 남긴 시가
있습니다.
"사대원무주 (四大元無主)
오음본래공 (五陰本來空)
장두임백인 (將頭臨白刃)
유사참춘풍 (猶似斬春風)" 풀이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 수 화 풍 사대가 원래 주인이 없고
색 수 상 행 식 오음으로 이루어진 이 몸도 마음도
모두 공한 것이라서 머리를 가지고서
흰 칼날 앞에 대어도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다오."
칼로써 봄바람을 베어 보십시오. 무슨 흔적이 있으며 또 봄바람을 베는
칼잡이는 무슨 흥이 있겠습니까. 망나니가 칼을 들고 사형을 집행하려
는 순간에도 이런 시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공한 것으로
보니 가능합니다. 이 정도의 경지라면 부처님의 전신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남김없이 비운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순교자 이차돈도 자기 자신을 불생 불멸의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한 점 주저없이 불법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보시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是故 須菩提 菩薩 應離一切相 發阿縟多羅三먁三菩提
시고 수보리 보살 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일체 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
리심을 낼지니"
보리심은 모든 상을 떠나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 상념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때 깨달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온갖 시비선악의 판단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진실
한 자기를 볼 수 있습니다.
참선 일념(參禪 一念)에 들면 그 동안 우리들 마음 속에 누적 되어 있는
온갖 기준과 법도, 지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깊고 깊은 마음의 세계
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거나 떼어내어 날려 버려서 벗어난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
속에는 본래로 온갖 사변에서 떠나 있는 공적한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참선입니다.
이 세상의 제도(制度)라는 상을 떠난다고 깊은 산중에 가서 도를 닦는
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상념들의 찌꺼기에 매여 있고 얽혀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고, 복잡한 세계에 침잠하여 상으로 부터 벗어나 있으
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
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문 바 없는 그 마음을 낼지니라."
앞에서 "일체상(一切相)을 다 떠나라."라고 했던 것을 하나하나 분석
하여 일러 주십니다. 사실 나라고 하는 것은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인식
되어지는 색성향미촉법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물, 소리, 향기, 맛, 감촉, 법의 이 여섯 가지에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물을 인식하여 분별을 짓고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들으며 냄새를 맡고 감촉을 느끼며 사는 세계는 사실 거대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을 축적해가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심지
어 저 높은 하늘나라 도솔천 내원궁을 아는 법의 세계도 굉장히 큰 세계
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 다 이 여섯 가지 속에 포함
됩니다.
그러나 좀 더 깨어 있자면 이 여섯 가지 세계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주착하지 말고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어디,
그 어떤 일과도 연관을 갖지 아니 하면서 홀로 드러나 있는 소소영령한
진실생명이 활발히 작용을 하여 자기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若心有住 則爲非住 是故 佛說菩薩 心不應住色布施
약심유주 즉위비주 시고 불설보살 심불응주색보시
"만약 마음에 머묾이 있으면 곧 머묾 아님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
님이 말하기를, "보살은 마당히 마음을 색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
하느니라
우리들이 그 어디와도 연관을 맺지 않고 살아가기란 사실 참으로 어렵
습니다. 태어나면서 한 가정의 일원이 되고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세계
에 속해지면서 사회적인 자아(自我)가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여 소속감이나 안정감을 얻을
수도 있지마는 때로는 자신을 옭아매는 경우도 생깁니다.
주위에서 보면 많은 모임에 적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사람이
의외로 자신의 일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한 '누구 누구의 무엇이다'하는 관계로 밖에 드러나지 않고 진실한
자기 자신은 없어집니다. 그것처럼 색성향미촉법의 어떠한 대상에
집착해 버리면 집착해버린 그 대상 하나밖에 알 수가 없고 전체를
온전하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대상에 갇히지 않고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을 때면 그 무엇
에도 머물 수 있는 큰 삶이 되는 것입니다. 수박껍질을 벗겨야 맛있는
수박 알갱이를 먹을 수 있고, 매미도 한꺼풀 벗어나야 성충(成蟲)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우리들을 한정지우는 온갖 상(相)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신선
하고 새로운 삶이 활짝 열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