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옥 식
영주시의회 4대 의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김경진 형을 맨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하망동에 있는 소백신문사였습니다.
책보다는 군사독재에 대한 돌팔매질이 더 많은 대학시절을 보냈고, 막걸리 잔에 울분을 삭히기만 했던 내가 고향에 내려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해서 찾은 곳이 소백신문사였고, 바로 그 곳에서 경진 형을 만났습니다.
당시에 지역신문은 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지방화・민주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신문사 발행인이었고 나는 평기자로 활동을 하다가 신문사의 경영난으로 다른 주인을 만나고 나는 얼마 안 있어 지역신문기자를 그만두었습니다.
나에게는 고향에서 첫 직장이었던 신문사가 그에게는 전 재산을 바친 희망이었던 줄은 이 책 죽령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경영난으로 신문사 문을 닫고 죽령에 올라 벼랑 끝의 절망을 딛고 있었을 그를 생각하니 참으로 죄송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당시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철없던 시절이었기에 신문기사의 논조(사회비평)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나름대로 그 속에서 추억을 남긴 한 때의 청춘이었는데, 경진 형에게는 부모님의 유산마저 날리고 좌절과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생각해보면 가슴이 저며 옵니다.
그러나 형은 죽령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동녘의 지평선 여명을 맞이하여 다시 영감을 얻고 희망을 채우며 살아왔습니다. 신문사 경영이 어려울 때도, 민감한 기사로 정보기관의 협박을 받았을 때도,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도 죽령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절망을 떨치고 희망을 채우며 당당하게 한 시대를 지켜왔습니다.
이와 같이 죽령은 그에게 절망의 언덕이자 희망의 언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내가 형의 책 ‘죽령’을 읽고 새삼 깨달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죽령은 시대가 혼란스럽고 분열에 빠져있을 때, 말발굽과 군홧발이 부딪혀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민초의 삶이 각박하게 말라비틀어져가는 절망의 현장이었습니다. 삼국전쟁 당시에도 그랬고 항일독립운동과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죽령은 꿈과 희망의 언덕이기도 했습니다. 의상의 ‘불국토의 희망’이 전파되고, 안향과 퇴계의 ‘유도의 꿈’이 펼쳐지고, 금계 황준량의 ‘목민관의 꿈’이 실현된 것 모두가 이 죽령고갯길을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또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항일투사 심산 김창숙, 기려수필의 저자 송상도, 청포도 시인 이육사 등 의인들의 ‘조국 광복의 꿈’들이 모두 이 죽령고갯길을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죽령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준 경진 형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앞으로 죽령에 대한 더 많은 사료가 발굴되고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이 이어지는 고갯길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또 이를 계기로 그 옛날 죽령을 넘었던 의인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오늘날의 의인들이 이 땅에 많이 탄생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제 죽령에는 따베이굴(또아리굴) 따라 철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고속철도터널이 직선으로 뚫린다고 합니다.
높기만 하던 죽령이 외부와의 교통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비와 바람과 구름이 만나 천혜의 자원을 만들어 주던 시대는 차츰 사라지고 문명의 보화가 소백산 아랫동네에도 물밀 듯 밀려오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마치 구멍 난 소백산 중턱처럼 가슴 한편이 휑하니 뚫린 것 같은 허전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 허전한 마음을 형의 책 “죽령”으로 달래봅니다.
끝으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저널리스트의 사명을 잃지 않으려는 경진 형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죽령처럼 곁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윤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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