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스크랩] 國立中央博物館 (아라비아의 길)

강나루터 2018. 3. 15. 18:09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아라비아

 (ROADS OF ARABIA)

 

사우디아라비아 歷史와 文化

 

 

大韓民國과 사우디아라비아의 修交 55주년을 맞이 하여 사우디觀光國家遺産遺産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歷史와 文化를 紹介하는 特別展 아라비아의길을 마련 하였읍니다.  아라비아는 古代 文明의 交叉路로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페르시아,地中海 地域 文明圈들과 활발히 交流하여 多樣한 文化를 꽃 피윘읍니다.  또한 이슬람교의 發祥地로서 지금도 수많은  巡禮者들이 모여드는 宗敎的 中心地 입니다.

 

 

황금가면

 

 

1. 아라비아선사시대

 

 

아라비아에 初期 人類가 定着하기 시작한 時期는  130 萬年前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아라비아에서 出土된 先史時代의 石器들은 아프리카 에서 誕生한 人類가 아라비아를 거쳐 全 世界로 擴張해 갔다는것을 보여 줍니다. 약 1 萬年 전 무렵의 아라비아는 水木이 무성하고 깊은湖水 비옥한 습지 豐富한 野生資源을 保有한 지금과 전여 다른 모습의 땅이었읍니다. 草綠의 아라비아 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는 地中海 연안의  근동지역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다양한 道具와 武器를 製作했습니다.

 

 

 

 

 

찍개

아라비아이 最初 石器는 北部地方의 슈와이히티야에서 確認 되었읍니다. 여기서 나온 찍개와 긁개등 여러 石器들은 탄자니아 올두바이 峽谷에서 나온 石器의 製作技法과 一致 합니다. 이는 아라비아에 올드완기(260만년전 ~ 170만년년전)에 해당하는 前期 舊石器文化가 流入되었다는것을 證明해 줍니다.

 

긁개

이 石器는 10 萬年에서 2 萬 5 千年 전의 中期 舊石器 時代에 호모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 남쪽 地域에 살았음을 證明하는 道具 입니다.

 

 

 

양면석기

紀元前 8 千年 ~ 6 千年 사이 아라비아는 사바나에 가까운 草源 地帶였읍니다. 따라서 영,소 떼를 몰던 레반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의 遊牧民들은 아라비아 北東部로 移動해 定着했읍니다.  이 지역의 聚落地에서 發掘된 石器들은 돌을 다듬고 떼어네는 裝飾에서 레반트 남쪽에서 出土된것과 매우 비슷 합니다.

 

 

코끼리뼈

아라비아 半島는 한때 코끼리가 棲息할 정도로 草木이 豐富한 草源地域 이었읍니다. 최근 나푸드에서 發見된 動物化石은 이러한 氣候 條件을 類推할수 있게 합니다. 코끼리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표범,영양,야생당나귀,늑대등 지금은 아라비아 半島에서 볼수없는 動物化石들이 確認 되었읍니다.

 

 

                                                 독수리머리                                                      염소머리                            사냥개

마가르 遺蹟의 바위 그림에 개를 이용해 사냥하는 場面이 그려져 있어 사냥개의 모습으로 推定해 볼수 있읍니다. 개의 모습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오래전부터  飼育되었던 살루키 개와 비슷 합니다.

 

 

 

                                                                              양의머리                                                                        타조의머리

 

머리와 몸통만 남아 있는 이 彫刻은 마가르 地域에서 發見되는 돌로 만들어졌읍니다. 목의 길이나 머리의 形態로 볼때 순수 아라비아 血統의 말과 비슷 합니다. 입 周邊에 굴레 形態가 擴延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말을 家畜으로 길렀다는것을 보여 줍니다. 

 

 

2. 오아시스 문명

 

 

아라비아의 동쪽 아라비아 만 沿岸의 타루트 섬은 대추야자 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로 新石器時代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定着하여 살기 始作했읍니다. 이 地域은 紀元前 2천년대 後半부터 1천년대 初半까지 古代 딜문(Dilmun)文明의 中心地 중 하나였읍니다. 타르투 섬 뿐만 아니라 다란,도시라야,아브까이끄,등 동부 沿岸 地域의 다양한 出土品들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인더스,文明과과의 활발했던 交易을 보여줍니다. 古代都市 게라로 추정되는타즈는 기紀元前 3세기부터 1세기까지 그리스의 文化의 영향을 받기도 했읍니다. 

 

 

 

 

   

사람모양의 석상

이 石像은 비록 上半身만 표현되어 있으나 身體의 특징은 매우 正確하게 表現되어 있읍니다. 둥근 얼굴에는 귀가 달려 있으며 비대칭적인 눈과 조그만 입술은 人物은 人物의 感情까지 느껴지기 합니다. 몸통은 직사각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팔과 손으로 몸을 감싸 안아 자연스럽게 身體의 形態를 維持하고 있읍니다.

 

 

여성상

女性의 모습을 매우 단순한 形態로 樣式化하여 表現한 石像 입니다. 表情과 身體 특징이 살아있는 4千年前의 南性상과는 對比됩니다.

 

 

돌칼

이 돌칼의 形態는 오늘날 아라비아에서 使用하는 儀禮用 短劍과 비슷 합니다, 몸에 短劍을 차는것은 아라비아의 代表的인 文化中의 하나로 紀元前  9000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오랜 慣習 입니다.  

 

갈판

마가르 遺蹟에서는 화살촉 외에도 긁개, 절굿공이, 가락바퀴, 幾何學 무늬로 裝飾된 凍石 항아리들이 나와 당시 사람들의 石器 製作 技術을 폭넓게 理解 할수 있읍니다.

 

   

 

 

 

 

   

 

 

 

 

 

   

 

석상

사람 模樣의 이 石像들은 무덤에 位置를 標示하고 죽은이를 記憶하기 위해 세워졌읍니다. 네페쉬 石像으로 불리는 이 石像들은 바레인에서도 發見되었습니다. 네페쉬는 숨(영혼)을  뜻하는 아랍어 에서 派生된 單語로 헬니즘 文化의 影響을 보여 줍니다.

 

인장

이 印章은 아라비아 만 沿岸에서 가장 이른 時期의 것입니다. 時期는 紀元前  2200年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北東部 地域에서 주로 發見 되었읍니다. 젖은 진흙이나 왁스에 引章을 찍어서 行政 文書나 書信을 封印하는 用途로 使用하거나 벨트나 목걸이의 長身道具로 利用 하였읍니다.

 

석비

이 石碑에는 하빌리나우마트 안녕히 (Habib il Nawmat Greetings) 라는 名門이 새겨져 있읍니다. 東部 아라비아에 發見된 몇 안되는 그리스어 名門中 하나로 이와 비슷한 墓碑가 바레인에서 發見 되었읍니다.

 

석비

하사위 지역 方言이 새겨진

 

묘비

이 墓碑紀元前 3 ~ 1世期에 아라비아 北東쪽에서 使用하던 하세인(Hasaean)어로 쓰여졌습니다. 죽은 이는 가디야트 (Ghadhiyyat)라는 이름의 女性으로 특이하게도  母系 血統의 조상들만 묘비에 언급되었습니다.

 

사람모양의 침대다리

少女가 누웠던 寢臺는 地中海 樣式으로 꾸몄고 寢臺 다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었읍니다.

 

카페오가 있는 목걸이

少女의 머리맡에 있던 몰걸이는 루비,진주,大理石으로 裝飾 되었읍니다.

 

황금가면과황금장갑

少女가 얼굴애 쓰고 있던 黃金 假面에는 얼굴의 특정적인 부분만 간단히 假面되었습니다. 假面의 크기로 보아 女子 아이를 위해 특별히 製作했을 可能性이 있습니다.

 

장신구

少女가 누윘던 자리에서 發見된 金鈑의 一部에는 제우스신의 形像이 새겨져 있읍니다.

 

                                                                             조각상                                             주전자

 

     

 

사발

이그릇은 타이마의 시나이에 있는 한 무덤에서 出土되었읍니다. 타이마에서 出土된 土器중 비교적 큰 이 사발은 질적으로 우수한 土器 입니다. 곱게 정제된 흙으로 나팔 模樣의 形態를 만들고 外面에 赤褐色으로 기하무늬를 그려 넣었읍니다.

 

     

 

채색잔/향로

바닥이 扁平하고 口緣部에 작은 손잡이가 달렸읍니다. 바깥면은 긴 線으로 裝飾되어 있으며 손잡이도 彩色 되었읍니다. 손잡이가 달린것으로 보아 香爐로 쓰였을 可能性이 있읍니다.

 

항아리

몸체가 구형에 가깝고 口緣部가 넓은 이 항아리는 거친 붉은색 粘土로 만들었읍니다. 바깥 면에는 平行線 세개가 口緣部 아래쪽을 두루고 있고 그 아래쪽에는 물결선 세개를 그려넣어 裝飾的인 效果를 높였읍니다.

 

팔찌

타이마의 무덤군에서 모두 여덟개의 조개 팔찌가 發掘 되었읍니다. 각 팔찌는 큰 조개껍질을  한 방향으로 자른뒤 조개안을 除去하고 잘린 가장자리 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만들었읍니다.

 

청동검

타이마에서 出土된 靑銅 武器는 戰士를 象徵하며 무덤에 副葬되었읍니다. 紀元前  2 千年 무렵에 북쪽의 시리아나 레반트 地域에서 使用한 靑銅 검과 形態가 類似하여 타이마와 레반트 地域 사이의 直接的인 交流를 알수있읍니다.

 

목걸이

펜던트의 크기와 模樣 材質이 多樣합니다. 양 끝에 구멍이 뚫린것으로 보아 줄을 꿰어 목걸이로 사용했던것을 알수 있읍니다. 

 

 

3. 사막위의 고대도시

 

 

紀元前 1000年 무렵부터 아라비아를  가로지르는 傳說的인 香料 交易路가 만들어졌읍니다. 이 길 위에서 經濟的인 富 를 蓄積한 都市들은 國際的인 都市로 거듭났읍니다. 아라비아 北西쪽의 타이마에는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王인 나보나두스가 10年동안 支配하면서 새로운 藝術 樣式이 傳波 되었읍니다. 紀元前 6世紀 무렵부터 紀元前 1世紀 까지 리흐얀 王祖가 地配했던 울라는 거대한 彫刻과 寺院이 가득한 웅장한 古代都市 였읍니다. 까르얏 알파우는 가장 富維헀던 都市중 하나로 地中海 地域文化이 影響을 받은 獨自的인 文化를 곷 피윘읍니다.

 

원판

說明 文字가 새겨진 두 彫刻은 原版 毛樣의 彫刻 一部였읍니다. 가장자리에 신바빌로니아 說明文字로 바빌로니아의 全能한 王 - 나보니두스의 그림과 石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읍니다.

 

주춧돌

儀禮場面이 새겨진 주춧돌

 

   

 

 

 

   

 

 

   

 

 

 

 

 

 

 

 

 

 

 

 

 

나바테아양식기둥머리

라틴語 名文과 함께 發窟된 이 기둥머리는 아랫 부분에 기둥이 連結되어 있읍니다. 크기로보아 門이나 大門  裝飾用 이였을것으로 推定됩니다.

 

   

물고기무늬土器

 

 

 

 

 

 

명문판

寺院의 入口 壁에 附着되었던 靑銅 銘文板은 까르얏알파우에서 미네아 文化와 慣習에 대해 言及하고 잇읍니다. 미네아인들은 香爐를 生産하는 南部 아라비아에서 왔지만 對象들을 統制하기 위해 대개 北部都市에서 살았습니다.

 

 

 

   

사자의머리

靑銅으로 만든 포호하는 獅子의 머리는 콰르얏 알파우의 南西部 나즈란(Najran)에서 發見된 것입니다. 나즈란은 北部 아라비아로 가는 香爐길의 重要한 都市였읍니다. 獅子의 모습에 그리스 - 로마 彫刻의 특징을 보이지만 눈을 表現된 갈기.고부조로된 수염은 아비아 南部의 특징적인 表現 樣式이기도 합니다.  

 

 

 

 

 

 

 

 

 

   

 

 

 

 

남자가그려진벽화조각

까르얏 알파우의 住居 流跡에서 發窟된 이 壁畵에는 都市 上流層의 삶이 드러나 있읍니다. 짙은색 곱슬머리의 南子가 下人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알이 가득한 葡萄가 그의 周邊에 있읍니다. 이 壁畵는  1  ~  2세기경 중근동 地方에 퍼진 디오니소스 도상의 影響을 보여 줍니다.

 

 

 

    

 

 

 

 

 

   

아라비아낙타청동상

작은 낙타의 배 밑에 두개의 구멍을 뚫어 支持臺로 바닥에 固定시켰습니다. 두 사마위(dhu Samawi)神에게 이 낙타를 바친다는 明文으로 보아 儀禮用 으로 製作했다는것을 알수 있읍니다. 두 사마위는 대상 (caravan)부족이었던 아미르(Amir)족이 崇拜했던 神 이었읍니다.

 

   

 

   

 

 

침대裝飾

 

     

 fight·ing,fight·ing,fight·ing

다음에 만날때까지 建康하고 幸福하세요

파이팅

 

 

가장 멀고, 가장 빛나는 길

가장 멀고,
가장 빛나는 길은
내가 나를 찾아 떠나는 길입니다.
빛과 어둠은 내 마음속의 길에도 있습니다.
내 안의 빛이 어둠에 눌려 가려져 있다가
먼 길을 걷는 순간, 그 어둠을 뚫고 올라와
가장 눈부신 빛으로 나를 비춰줍니다.
그래서 그 먼 길을 또다시
용기내어 떠납니다.


- 고도원의《절대고독》중에서 -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나를 잘 모릅니다. 방향을 잃을 때도
많습니다. 빛과 어둠이 수시로 교차합니다.
빛일 때는 빛을 따라서, 어둠일 때는 그 어둠을
뚫고 나와, '나를 만나는 길'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매우 먼 길이지만, 사실은
가장 빛나는 길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출처 : 密城 朴 善 泳
글쓴이 : 鳳伊 朴先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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