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240화
임진왜란을 예언하다 (必有倭亂) . 양주 어느 마을에 박 참판이 살았는데, 같은 마을에 양반도 아닌 상인으로 조씨 성을 가진 한 사람이 권농(勸農) 직을 맡고 있었다. . 조 권농은 비록 양반은 아니었으나 사람됨이 성실하고 부지런했으며 누구에게나 공손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와 친근하게 지냈다. . 특히 박 참판은 조 권농을 존경하고 따라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집안의 제반사를 서로 의논했고, 음식이 생기면 나눠 먹을 만큼 정의가 두터웠다. . 어느 날 밤이었다. 박 참판이 잠이 오지 않아 홀로 사랑방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 그리고는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조 권농이 들어와 앉아서는 박 참판의 이름을 부르며, "그대는 왜 이렇게 혼자 앉아 있는 게요?" 하고 반말 비슷하게 묻는 것이었다. . 그러자 박 참판은 저이가 평소 마루 아래 엎드리며 감히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공경하던 사람인데, . 갑자기 밤에 찾아와서는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여 매우 괴이하게 생각했으나, 좀더 지켜보기로 하고 꾹 참으며 대답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앉아 있거늘, 권농은 무슨 일로 밤이 깊었는데 이렇게 찾아온 게요?" . "아, 뭐 밤도 길고 심심해서 이야기나 하려고 왔습니다." . 이러면서 권농은 옆구리에 차고 온 술병과 삶은 닭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밤이 제법 이슥해지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얼큰하게 취해 갔다. . "나와 참판은 양반과 상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있었으나 오랫동안 서로 친분을 유지해 왔는데, . 이제 작별을 하게 되니 자연히 슬픔에 가슴이 메이는구려."
"아니, 작별이라니? 권농은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왔는데, 어찌 고향을 떠난단 말인가? 무슨 일로, 어디로 가려고?" . "나와 참판 사이에 감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앞으로 3년 후면 반드시 왜란이 있을 텐데, 8년 이내에는 평정하기 어려울 걸세. . 그래서 내 떠나려고 하는 거라네." 이 말에 박 참판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대가 왜란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고, 또 쉽게 평정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왜 조정에 막을 방도를 알려주지 않는고? . 나에게라도 어떻게 막을 방도를 알려 주게나?" "참판! 우리 조선은 사람의 임용을 명분에 의해서 하기 때문에, . 아무리 옛날 중국 한신(韓信)이나 장자방(張子房) 같은 재능을 지녔더라도 신분이 천하면 임용되지 못한다네." "그렇다면 현재로는 왜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말이로군." . "그렇다네, 다만 상책(上策)을 사용하면 3년 만에 평정할 수 있고, 중책(中策)을 쓰면 5년 안에 평정할 수가 있다네. . 그리고 하책(下策)을 쓰면 8년이라야 평정할 수 있게 되네."
그러자 박 참판은 그의 손을 잡으며 좀더 자세한 내용을 일러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권농은 말을 이었다. . "상책이란 것은 안동 고을에 아전으로 있는 아무개를 임용하는 일이고, 중책은 내가 나서는 일일세. 그리고 하책은 남쪽 지역에 있는 이순신을 임용하는 일이라네."
"그건 그렇다 치고, 왜란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디로 피란을 해야 안전할까?" "음, 그래서 내 일러 주려고 온 것이라네. . 어느 고을 어느 산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있으면 화를 면할 수가 있는데, 참판의 아우가 마음이 흉악해 반드시 그 움막을 뺏으려 할 것이니 그게 문제로세. . 한 가지 방법은 처음 움막을 지으면 참판 아우가 빼앗으려 할 테니 주어 버리고, 다시 큰 기와집을 한 채 지으면 아우는 또 그 기와집을 빼앗으려 할 걸세. . 그 때 기와집을 아우에게 주고, 다시 그 움막에 들어가 살면 무사할 걸세."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새벽이 되었다. . 참판은 잔을 씻어 다시 권농에게 술을 권하고, 서로 손을 잡은 뒤 헤어졌다. 아침에 참판은 종을 시켜 조 권농 집에 가보라고 하자,
이미 떠나고 집이 비었더라고 아뢰었다. 다시 참판은 편지를 써서 종에게 주고는 안동 관아의 모 아전에게 전하고 답서를 받아 오라고 했더니, . 종이 돌아와서는 어느 날 그 아전이 종적을 감추었다고 아뢰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전이 종적을 감추었다는 날을 계산해 보았다. . 조 권농이 집을 떠난 날과 같은 날이었다. 이에 박 참판은 조 권농의 예언이 허언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가 일러 준 고을 그 산으로 갔다. . 처음에 움막을 하나 지으니, 과연 아우가 내막을 알고는 그 집을 달라는 것이었다. . 박 참판은 할 수 없이 그 집을 아우에게 주고 다시 기와집을 크게 지으니,
또 아우가 뺏으려 하기에 주어 버렸다. 그리고 움막으로 들어와 있으니, . 얼마 후 도적이 산속의 큰 기와집을 보고 들어가 아우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달아났다.
세월이 흘러 3년이 지나니, 조 권농의 예언대로 왜란이 일어나 8년을 끌다가 평정되었다. . 이런 일로 보면 마음이 착한 사람은 비록 환란을 당해도 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라 하겠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5071?category=651358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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