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스크랩]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산실 비슬산과 만지송

강나루터 2018. 8. 16. 06:05

 

비슬산 도성암 못미쳐 있는 만지송

관기와 도성스님이 소요했다는 고사가 전해 오는 비슬산

도성국사가 창건했다는 유가사 대웅전

비슬산에 자생하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식물 솔나리

한 때 비슬산에 자생했으나 지금은 멸종된 복주머니난

도성 국사가 수도 했다는 도성암(道成巖)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산실 비슬산과 만지송

보호수 대장에는 소나무라고 표기해 놓았으나 일반적인 소나무와 다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지송(萬枝松)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유가사를 지나 수도암을 좌측으로 하고 잘 정비된 임도를 따라 가다가 도성암 못미처에 있다.

오래 등산을 다녔지만 미처 보지 못했는데 최근 보호수로 지정하면서 가려져 있던 앞부분의 잡목을 정리해 놓은 것 같다.

만지송이라는 나무 이름은 없다. 그러나 한 줄기에서 여러 가지가 난 것을 일러 많다는 의미로 일만 만(萬), 가지 지(枝), 소나무 송(松)자를 써서 만지송(萬枝松)이라고 부른다.

아주 귀하게 여겼다. 혹자는 소나무 송(松)자는 열 십(十)자에 여덟 팔(八)자를 더해 공(公)자로 이루어진 글자이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가 난 것 즉 18지송(十八枝松)을 가장 이상적인 형이라고 한다.

만지송이 귀한 것은 임란을 수습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명재상 류성룡 선생의 고택 충효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3대 종부 무안박씨가 친정에서 가져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무수하게 뻗은 가지처럼 후손들이 번성하라는 의미를 담고 심었을 것이다.

비슬산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삼국유사>의 저자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 1206~1289)스님이다. 몇 년 전 군위군이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슬로건을 내 걸었지만 실제 태어난 곳은 경산시이고, 70여 년의 승려생활 중 거의 절반을 보내며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이자 득도한 곳이 비슬산이다.

그러나 역저 <삼국유사>에 비슬산에 관한 기술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비슬산의 유래를 밝힌 점과 몇 종류의 나무이야기가 있는 점은 매우 뜻 깊다.

피은(避隱) 제8 “포선이성(包山二聖)” 즉 ‘포산의 두 성사’에 의하면 포산은 원래 소슬산(所瑟山)했는데 소슬이라는 말이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싸다(包)는 뜻과 같아 쌀 포(包)자를 써서 포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소슬’이란 ‘솟다’는 말의 한자식 표기로 생각되고 현풍 평야에 우뚝 ‘솟은 산’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 아닌가 하나 스님은 해석을 달리 했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략한다. 두 성사의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다.

“신라시대 포산에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니 관기(觀機)는 남쪽의 암자에, 도성(道成)은 북쪽 굴속에 살았다. 10여 리 떨어졌지만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늘 서로 왕래했다. 남쪽에 사는 관기가 북쪽에 살고 있는 도성을 보고 싶어 하면 나무들이 북쪽으로 구부러져 도성을 영접하는 자세를 취하고 반대일 경우에는 남쪽으로 구부러져 관기가 그 뜻을 알고 여러 해를 지냈다. 도성은 그가 거처하는 곳의 뒤에 있는 높은 바위에서 언제나 좌선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바위틈에서 나와 온 몸이 허공으로 올라가 버려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수창군(현, 수성구 일대)에 가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관기 또한 그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두 성사의 이름을 붙였는데 지금도 그 터 모두가 남아 있다. 도성암은 높이가 몇 길로서 뒷날 사람들이 그 굴 아래 절을 지었다.

태평흥국(송나라 태종의 연호) 7년(982) 승려 성범이 처음으로 이 절에 와서 아미타불이 주관하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여 만일(萬日)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만일 미타도량을 열어 50년 동안 부지런히 노력하니 여러 번 특이한 상서가 있었다. -------지금 산중에는 아홉 성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관기, 도성, 반사, 첩사, 도의, 자양, 성범, 금물녀, 백우사들이다.

다음과 같이 찬미(讚美)한다

달빛 밟고 왕래하며 운천(雲泉, 구름이 일고 샘이 솟는 곳)을 희롱하던

두 늙은이의 풍류 몇 백 년이 흘렀나.

연하(煙霞) 가득한 골짜기에 고목만 남았는데

누운 듯 일어선 듯 찬 그림자 서로 맞는 모양일세.

반(木+般)은 음이 반(般)인데 우리말로는 피나무라 하고, 첩(木 +牒)은 음이 첩(牒)인데 우리말로는 떡갈나무라 한다. 반사(木+般師), 첩(木+牒師) 두 스님은 오래 동안 바위 사이에 숨어 지냈을 뿐 인간 세상과는 교분이 없었다. 두 분 모두 나뭇잎을 엮어 옷으로 입고 추워와 더위, 습기를 막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을 뿐이다. 그래서 반사 첩사로 호를 삼았다. ----이는 곧 옛날 세속을 떠나 숨어사는 사람들의 뛰어난 운치가 이와 같이 많았음을 알겠으나 따라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일찍이 포산에 머무르면서 두 스님이 남긴 일들을 기록하여 두었는데 이제 그것을 함께 적는다.

지모와 황정으로 배를 채우고

가린 옷은 나뭇잎, 누에치고 베 짠 것 아니네.

찬 솔바람 쏴쏴 불고 돌은 험한데

해 저문 숲에서 나무꾼 돌아오네.

깊은 밤 헤치고 달 빛 향해 앉으니

반신은 시원히 바람 따라 나는 듯

떨어진 부들자리 가로누워 단잠 들면

꿈속의 혼도 세속에 얽매이지 않네.

구름 놀다 가버린 두 암자의 빈터에는

산 사슴만 뛰놀 뿐 인적은 드물어라. ”

이상이 <삼국유사>의 피은 제8 “포산이성” 즉 비슬산에 수도했던 관기와 도성 두 스님 이야기 중 일부를 발췌한 글이다. 주로 나무에 관련된 부분이다. 이글을 통해서 관기, 도성 두 스님의 마음을 나무가 미리알고 구부러지는 기이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가 사람의 마음에 감응한다는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밝혀졌다. 하물며 수행이 깊은 고승이기에 이 현상을 전설로 치부할 수만 없을 것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나무와 두 스님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두 성사의 이야기로 확인된 셈이다.

피나무 잎과 떡갈나무 잎으로 옷을 해 입어 각기 반사와 첩사로 불리는 두 스님의 이야기도 사실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일연(一然)은 두 스님의 일을 ‘지모(知母)와 황정(黃精)’으로 배를 채우며 가린 것은 나뭇잎’이라고 노래했다.

지모(知母)는 “지모(知母)”로, 황정(黃精)은 “둥굴레”로 불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런 나무나 풀 이야기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비슬산은 식물 다양성이 높은 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생화를 관찰하려면 팔공산보다 비슬산이 제격이다. 정상부의 숲이 짙지 않아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자라고 산이 가파르지 않아 관찰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관찰자의 조사범위, 계절 등에 따라 다르고, 지형과 위도 등이 달라 어떤 식물은 팔공산 어느 한 곳에서만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일 때도 있다.

즉 개회나무, 고란초, 금강애기나리, 노랑무늬붓꽃 등은 팔공산에는 자라지만 비슬산에는 없고, 정향나무, 설앵초, 세뿔투구꽃, 가침박달은 비슬산에는 자라지만 팔공산에는 없다.

비슬산의 여러 종류의 야생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난과의 복주머니난과 백합과의 솔나리였다. 그러나 복주머니난은 남획되어 최근에는 관찰되지 않고, 북방계 식물로 멸종위기 2급 종인 솔나리는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무차별적인 채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바위틈에 상당한 개체가 남아있다. 이외에도 정상부근의 꽃창포군락도 보호를 서둘러야 할 귀중한 자원이다.

<달구벌, 대구시, 1977> 전설 편에 의하면 도선국사(삼국유사 포산 이성(二聖)의 도성스님의 잘못으로 생각됨)와 관기스님이 서로 만나기 위해 달밤에 산길을 걷다가 억새를 사람으로 오인하여 밤길을 해매일 때 칡넝쿨에 걸려 여러 번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이에 두 스님이 비슬산신 점수대왕(삼국유사에는 정성천왕)에게 억새와 칡을 없애달라고 해서 비슬산에는 칡과 억새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전설일 뿐(아니면 지기 즉 땅의 기운이 다해서 그런지) 지금 비슬산에는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이고, 칡도 무성해 오히려 다른 나무의 자람에 장애를 주고 있다. 나무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많은 소나무 중에서 이 만지송과 국내 최대의 진달래군락은 비슬산신 정성천왕(靜聖天王)이 우리에게 준 귀한 선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수목원(2009년)에 의하면 비슬산에는 115과 729종의 식물이 자란다고 한다.

해발고도별로 200m에서 400m까지는 주로 졸참나무, 굴참나무, 물오리나무, 비목나무, 산사나무, 물개암나무, 때죽나무, 매화말발도리, 말발도리, 나래회나무, 은대난초, 반디지치, 기린초, 계요동, 달래, 주름조개풀이 자라고, 400m에서 600m까지에는 소나무, 고로쇠, 느티나무, 붉은병꽃나무, 정향나무, 생강나무, 산수국, 알며느리밥풀, 새끼꿩의비름, 돌양지꽃, 까실쑥부쟁이, 둥근잎천남성, 홀아비꽃대, 둥굴레 등이 자라며, 600m에서 1, 000m까지에는 소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조록싸리, 서어나무, 노린재나무, 흰여로, 노랑제비꽃, 꿩의다리, 개쑥부장이, 수리취, 미여취 등이 자라며 1,000m 즉 정상부에는 신갈나무, 소나무, 야광나무, 진달래, 솔나리, 설앵초, 둥근이지풀, 쓴풀, 산부추, 자주꿩의다리, 은방울꽃, 범꼬리, 고본, 곰취, 구절초, 꽃쥐손이, 꽃창포 등이 자란다고 한다.

특히 이중에서 설앵초, 솔나리, 꽃창포, 가침박달, 정향나무, 창포는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들이라 보호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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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이야기,꽃이야기
글쓴이 : 이정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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