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화림사(花林寺)에서 유래한 마을 ‘화리미(花林)’ 우리마을탐방[201] 휴천3동 ‘화리미(花林)’
미나라꽝으로 유명했던 도심 속 농촌 마을
휴천3동 화리미 마을의 위치 지난 17일 화리미에 갔다. 이날 화림경로당에서 신진옥 통장, 신시균 노인회부회장, 이면웅 노인회총무, 지옥주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화리미의 유래와 전설을 들었다.
영주의 역사와 화리미
휴천동의 내력 조선 문종-단종 때 상장군(上將軍,정3품)을 지낸 단종 절신 전희철(全希哲,1425-1527)이 1457년(세조3)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처가 곳 영천(榮川)으로 낙남(落南)하여 현 휴천동(광승)에 숨어살면서 호를 휴계(休溪)라 했다. 그가 호를 휴계라 한 것은 당시 이곳 지명이 휴계(休溪)였기 때문이다. 휴계는 야성송씨 영주 입향조 눌재(訥齎) 송석충(宋碩忠,1454~1524)의 장인이다. 송석충 또한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처가 곳 광승에 은거했다. 지금의 휴천리(休川里)는 조선말(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당시 광승리(廣升里)와 지천리(至天里) 일대를 통합하여 휴천리(休川里)라 칭했다.
화리미(花林)의 유래 또 화리미에서 구서원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돌이 많아 ‘돌고개’라 불렀다. 고갯마루 좌측에 있는 마을을 ‘장방골’이라 한다. 장방(將房)이란 예전에 ‘관아의 서리(書吏,수령의 심부름꾼)가 기거하는 방’이란 뜻인데 이 마을에 서리가 살았다 하여 장방골(將房谷)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천마산 운강사 운강사 신도들은 “운강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마가 힘차게 이 땅에 뛰어 내리는 듯하기도 하고, 땅위에서 뛰어놀던 말들이 천마가 되어 하늘나라로 비상하는 듯하기도 하다”며 명당임을 자랑했다.
화리미의 자랑 영주대장간 500년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 제1의 대장장이로 소문난 석노기(65) 장인(匠人)이 화리미에 산다. 충남 논산 노성리에서 태어난 소년 석노기(1954生)는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14살 때 매형이 경영하는 대장간에서 풀무밀기를 시작했다. 몇 년 후 공주에 있는 큰 대장간에서 기술을 익힌 다음 1972년 청년 석노기는 경상도 영주땅에 첫발을 디뎠다. 석 사장은 “현 영동교회 자리에 있던 대장간에서 월급생활을 하다가 22살이 되던 1976년 이 자리에 ‘영주대장간’ 간판을 걸고 자립했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향토뿌리기업 인증패, 숭례문대장간 사진, 2011 MBC TV방영 장면, 2014 KBS 굿모닝대한민국 ‘당신이 국가대표입니다’ 방영 사진 등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석 사장은 “2011 숭례문 복원 때 숭례문대장간에서 1년간 전통방식으로 철물을 제작했었다”며 “지금 국가명인 등록을 권유 받았지만 아직 후계자 양성을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의 곁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동갑내기 부인 황경숙 씨가 있다. 그는 “아내 내조 덕에 오늘 내가 있다”고 말했다. 화림경로당 신진옥(66) 통장께 다시 물었다. 신 통장은 “조부(신웅선)님은 한학자이셨고, 선친(신영조)께서는 1960-70년대 휴천리 이장, 새마을금고 이사장 등을 역임하셔서 지명유래를 잘 알고 계셨다”며 “예전에 광승쪽 산기슭에 ‘화림사’라는 절이 있어 마을 이름이 ‘화림’이 됐다는 이야기 와 조부님께서 1970년대 마을 뒷산에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어 복사꽃이 만발했다는 이야기를 선친께 들었다”고 말했다. 신시균(82) 노인회부회장은 “화림경로당은 2012년 시(市)에서 부지를 확보하고, 2013년 3월 공사를 완료한 후 5월 8일 준공식 및 화림경로당 현판식 그리고 경로잔치를 열었다”면서 “이해원 노인회장님과 신진옥 통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모두가 만족하다”고 말했다.
화리미 사람들 정위숙(82) 할머니는 “나라에서 하는 일 중 경로당 정책이 으뜸인 것 같다”며 “어르신들이 편히 쉴 수 있고, 대우 받을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 오래 산 박선여(73) 씨는 “화리미는 광승쪽 산비탈에 옛 마을(달동네)이 아직 남아 있고, 코레인아파트, 새마을주택, 슬라브주택, 현대양옥, 연립주택 등 시대별 주택이 골고루 있어 주택박물관 같다”고 말했다. 강경숙(79) 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영동교회 주변에 미나리꽝이 여러 군데 있었다”며 “도시 속 농촌풍경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했다. “노인회장님은 안 나오셨냐?”고 여쭈었더니, 이면웅(79) 노인회 총무는 “이해원 노인회장님은 비오는 날이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왜냐?”고 하니 “농사를 짓기 때문”이라고 했다. 며칠 뒤(18일) 이해원(82) 회장을 만났다. 82세 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 이 회장은 체구가 장군 폼이다. “회룡포에 농장이 있는데 벼농사에 고추, 감자, 마늘 등 골고루 다 한다”고 했다. “농기계도 직접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했다. “장수(건강)의 비결이 뭐냐?”고 했더니 “편안한 마음과 욕심 없이 사는 것”이라고 했다. 화림경로당에서 좌장이신 양분녀(86) 할머니는 “일제와 6.25를 겪으면서 나무껍질과 쑥으로 연명하던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에 사는 것 같다”며 “6.25 후 3년간 가뭄으로 융년이 들었을 때가 제일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정자(75) 전 총무는 “의식주를 자급자족하던 어릴 적을 생각하면 우째살았는지 신통하다”며 “지금은 나라에서 쌀주지, 기름주지, 에어콘 주지 넘넘 만족하다”고 말했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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