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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불의에 맞서 싸우는 자가 짊어진 고뇌와 한계, 황량하다!

강나루터 2018. 10. 25. 23:23

 

 

"성경 말씀에 원수를 용서하라 하셨지. 나는 신께 기도하네. 우리가 남작을 용서할 때까지 나를 용서치 마시라고!"

 

부정한 자가 휘두르는 부당한 횡포에 맞서는 데에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국가라는 권력을 등에 진 권력의 힘과 이어진 자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잘못을 저지른 자는 정작 뻔뻔하게 거짓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재산을 착복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서슴지 않고 빼앗는데도, 그에 맞서야 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오히려 복수라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조차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어야 한다. 인간 사회는 조금씩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밀어낸다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느껴야 하는 울분에는 그 속도의 더딤과 여전한 권력의 추악함이 참으로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때는 16세기 봉건제 사회의 프랑스, 말을 사육해서 내다 파는 상인 미하엘 콜하스(매즈 미켈슨, Mads Mikkelsen)는 말을 키우는 능력이 출중해서 꽤 성공한 부농으로 주위의 평판도 좋다. 어느 날, 말을 이끌고 하인들과 평소 다니던 길을 지나려는데, 그곳을 관할하던 남작이 죽고 새로 젊은 남작이 부임해서, 이제부터는 통행세를 거두겠다며 돈을 요구했다. 잠시 실랑이를 벌이던 미하엘은 화가 났지만 일단 그들의 요구대로 말 두 마리와 하인 하나를 맡기고 가던 길을 떠난다. 성공적으로 볼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말들은 온몸에 상처가 난 채로 상태가 엉망이 되어있고, 하인은 개에게 물어뜯겨 모골이 송연한 꼴이 되어 있다.

 

 

 

정당한 분노와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를 권력은 반란이라 하네!

 

미하엘은 남작이 통행료 징수권도 없으면서 부당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법원에 고소하지만, 세 차례나 고소가 기각되고 말자 마침내 관할 최고위 권력에 있는 공주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런 미하엘이 혹시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하던 아내 주디스(델핀 쉬요, Delphine Chuillot)는 자신이 대신 공주를 만나겠다면 길을 떠났다가 결국 피범벅이 되어 돌아와 죽고 만다. 울분과 슬픔에 젖은 미하엘은 아내의 시신 앞에 오열하고, 딸 리스베뜨(멜루지네 메이앙스, Melusine Mayance)를 피신시킨 후에 하인들을 이끌고 급기야 복수의 칼날을 든다. 그리고 그의 싸움은 귀족에게 수탈당하던 농민들의 봉기로 이어진다.

 

미하엘과 농민들의 전투는 승승장구 이어지며 마침내 권력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지만, 미하엘이 애초부터 요구했던 것은 권력 자체를 전복하겠다는 게 아니라, 자기의 말과 하인이 입은 피해를 원래대로 보상해달라는 게 전부였다. 그것을 거부했던 권력에 맞서 본의 아니게 미하엘은 농민 봉기의 주모자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초점을 맞춘 곳은 권력에 저항하는 피지배층의 반란이 아니라, 당시 사회가 가진 정치적, 종교적인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인 미하엘의 분노와 고뇌, 그리고 갈등이 담겨 있다.

 

 

 

권력은 불의를 거부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던 그를 어떻게 대했나?!

 

영화의 결은 화면의 배경만큼이나 어둡고 거칠다. 이야기의 흐름은 구체적 설명보다는 큰 틀의 그림 속에서 생략과 도약이 반복되다 보니 등장하는 주변 인물이나 미하엘 자기 생각과 감정의 변화도 바짝 다가서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의 온 힘이 집중된 건 바로 미하엘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배우 매즈 미켈슨의 얼굴과 몸에서 흘러나오는 깊고 묵직한 기운에 의존되어 있다. 미하엘이 아내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 외에는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영화다.

 

부정한 세상과 맞서 정의를 실현하려던 미하엘의 신념은 어찌 보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벽을 뛰어넘기에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정치가 곧 종교이고, 종교가 곧 정치이던 시대를 살던 그에게는 자신이 가진 개인적 복수와 사회적 신념이 넘지 못하는 선을 알고 시작한 싸움이기에, 역설적으로 그가 드러내지 못했던 권력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지를 참담히 보여준다. 이 세상 어떤 권력도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고, 피지배 계급의 권익에 공평무사한 적이 없음을, 국가권력과 신을 거의 동일 선상에 놓았던 그가 넘어서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추어볼 때 미하엘보다 세상의 구조를 훨씬 더 잘 아는 오늘날의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면서, 미하엘이 마지막 보여주던 그 암울한 슬픔과 착잡한 심정이 더없이 무겁게 다가온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음울하고 어두운 화면, 호흡을 가쁘게 하는 소리, 그리고 엄청난 기운을 내뿜는 존재로 우뚝 선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매즈 미켈슨의 존재감으로 가득 찬 영화다. 미하엘의 마지막 그 눈빛이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새겨진다.

 

 

 

Michael Kohlhaas

감독: 아르노 데 팔리에르(Arnaud des Pallieres)

 

* 영화 중후반부에 당시의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 역으로 드니 라방(Denis Lavant)이 나온다. 모르고 있다가, 그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출처 : 『BluE, 2월30일生』
글쓴이 : evo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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