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독립을 만든 윤봉길 김구 왕아초 진명추 장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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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구공원의 윤봉길과 왕아초 진명추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에서의 의거전 중국인들은 나라를 잃고 중국에 피난온 조선사람들을 멸시하여 고려방즈라 부른다.
중일전쟁전후 일군들은 조선인들을 선봉대로 하여 중국인들의 원한은 커지고 만다.
그러나 윤봉길의 의거후 중국인들은 욕을 거두고 조선인들에 음식을 제공하는등 모두 호의를 배풀게 된다.
1932년 1월 28일 일본군은 상해에 돌습하여 상해갑북의 팔자교지역에 주둔하고 국민당 19로군이 혈전을 하지만 고립무원과 무기의 성능차이로 철수를 한다.
일본은 이를 경축하려고 4월 29일 소화천왕의 생일인 천장절에 승리를 경축하는 행사를 하기로 한다.
상해의 虹口公園에서 거행하기로 하고 소식을 안 송호경비사령부의 陳銘樞는 민국시 유명한 암살대왕 王亞樵를 찾아 일본인들의 경축을 깨뜨리기로 한다.
그러나 안전문제로 일본군은 어떠한 중국인들의 입장도 막기로 하여 상해 흑세계를 통치하던 왕아초는 조선임시정부를 떠올리고 법조계로 가서 복국운동중인 경무부장 金九를 만나 상의한다.
두사람은 공동목표가 일치한 것으로 김구는 일어에 능통한 일심보국의 尹奉吉을 최종적인 살수로 선정한다.
김구는 이미 조직과 자금부족으로 조국을 배신한 자들을 암살하는 행동으로 유명한데 김원봉도 마찬가지로 두사람은 국민당 정보기관의 암살조직인 남의사의 암살행동을 전범으로 삼는다.
그러나 행사장에 무난한 입장이 쉽지않은데 일본의 교민들은 물통과 도시락을 지참하게 하고 일장기를 들도록 한다.
당시 상해에는 근대적 공업을 일본인들이 장악하여 교민이 10여만에 이르러 이들의 입장을 허락한 것이다.
총명한 김구는 같은 같은 도시락찬구들을 구하고 왕아초를 통해 폭탄을 같은 모양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하단사진이 왕아초
천장절 당일에 상해의 일본교민들은 일제히 참석하여 10만을 헤아리는데 일본옷으로 일장기를 든 잘 차려입은 윤봉길이 나타난다.
그는 태연히 홍구공원으로 입장하는데 먼저 일군 15000명의 병사들이 정연히 입장하고 열병식을 시작한다.
운동장에는 상해 파견군 사령관 令白川義(시라가와)대장이 총지휘하는 식전겸길중장의 열병에 응대한다.
그는 말위에 타서 열병을 받는데 열병식후 시라가와의 연설에 모두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고 광풍에 빠진다.
21발의 예포성으로 해군군악대가 일본국가인 천왕을 위하여가 울려퍼지는데 윤봉길은 혼란속에 주석대에서 물병과 도시락폭탄을 위로 던진다.
곧이어 큰폭음으로 주석대의 모든 이들은 쓰러지는데 요인들은 모두 사망 혹은 중경상을 입는다.
시라가와대장도 중상으로 3일후 병원에서 죽고 ,13년후 동경만 미주리호상에 항복조인식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일본대표인 重光葵외상도 이당시 중상자이다.
폭작발생후 윤봉길은 도주하지도 않고 대한민국만세를 불러 기개를 보인다.
체포된후 윤봉길은 일본에 송환되고 곧 사형에 처해지는데 중국인들은 대단한 충격을 받는다.
김구선생의 아들 김신은 회고에서 중국인들은 그후 한국인들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모두 거리에서 존경을 표시했다 한다.
홍구공원의 폭작은 중국인들의 태도변화는 물론 국가영수 장개석은 감탄하여 국민당군 10개사단도 하지 못할 쾌거라 칭찬한다.
이후 장개석총통은 임시정부의 모든 생계와 투쟁을 지원하고 카이로영수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서에 기록하게 하는데 당시로서는 1차대전시작시의(1918년) 기준으로 영토를 반환확정하기로 하여 우리는 1910년 한일합병으로 협상의 대상이 아니어서 미국의 반대에도 서류로 기록을 남긴것이다.
루스벨트나 처칠은 한국에 대한 나쁜 정보로 타고난 분열과 당쟁의 인간들로 본것인데 루스벨트는 하버드대 친구인 일본인들에게서 나쁜정보만 들었던 것이다.
장개석은 壯烈千秋라는 휘호를 임시정부에 보내고 거액의 자금을 보내주어 독립투쟁을 고무시킨다.
광복군의 설립자금도 민국정부가 모두 부담하고 임시정부가 명맥을 유지하는데 현상수배된 김구는 가흥시에서 숨어 지내는데 일본군이 큰 돈을 현상금으로 걸고 수배한 것이다.
윤봉길 김구 장개석 진명추 왕아초는 우리의 복국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이름으로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
진명추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