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달마 관심론(觀心論) 2

강나루터 2022. 9. 29. 10:35
종교, 명상, 수련달마 관심론(觀心論) 2
대일여래추천 0조회 16111.06.18 10:48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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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관심론(觀心論) 7 
육바라밀은 배와 같아서 모든 중생 피안으로 운반


能制舌賊 不貪邪味 讚詠講說 無疲厭心 名爲精進 能伏身賊 於諸觸欲 湛然不動 名爲禪定
능제설적 불탐사미 찬영강설 무피염심 명위정진 능복신적 어제촉욕 담연부동 명위선정
能調意賊 不順無明 常修覺慧 樂諸功德 名爲智慧 又度者運也 六波羅密 喩若船筏
능조의적 불순무명 상수각혜 악제공덕 명위지혜 우도자운야 육바라밀 유약선벌
能運衆生 達彼岸故 云六度
능운중생 달피안고 운육도


혀의 유혹을 다스리면 그릇된 맛을 탐내지 않고, 불법을 읊고 이야기하되
피로하다거나 싫어함이 없는 것을 정진이라 하며, 육신의 유혹을 항복받으면 모든
감촉(感觸)의 욕망에 담담해져서 흔들림이 없는 것을 선정이라 하며, 뜻을 잘 다스리면 무명(無明)을 따르지 않고 항상 깨침의 지혜를 닦으면서 모든 공덕을 즐거워하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또 도(度)라고 함은 ‘운반한다는 뜻이다.
육바라밀은 비유하자면 배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운반하여 피안에 이르게 하므로
육도라 하는 것이다.”


又問曰 經文所說 釋迦如來 爲菩薩時 曾飮三斗六升乳   方成佛道 卽先因食乳後
우문왈 경문소설 석가여래 위보살시 증음삼두육승유미 방성불도 기선인식유후
證佛果 豈唯觀心 得解脫也 答曰 誠如所說 無虛妄也 必因食乳 然始成佛 佛所說食乳者
증불과 기유관심 득해탈야 답왈 성여소설 무허망야 필인식유 연시성불 불소설식유자
非是世間不淨之乳 乃是眞如淸淨法乳 三斗者 卽三聚淨戒 六升者 六波羅密 佛成道時
비시세간부정지유 내시진여청정법유 삼두자 즉삼취정계 육승자 육바라밀 불성도시
由食此淸淨法乳 方證佛果 若言如來 食於世 間狀欲和合 不淨 腥之乳者 豈不成謗之甚乎
유식차청정법유 방증불과 약언여래 식어세 간음욕화합 부정전성지유자 기불성방지심호
다시 물었다.
“경문에는 ‘석가여래께서 보살로 계실 때, 서 말 여섯 되의 우유죽을 드시고 비로소
성불하셨다’ 했습니다.
먼저 우유를 드신 후에 불과(佛果)를 증득하셨는데, 어째서 관심(觀心)만으로 해탈한다 하십니까.”
대답했다. 
“진실로 경문의 말씀은 허망함이 없다.
우유를 드신 후에 비로소 성불하셨는데, 이는 세속의 부정한 우유가 아니라
진여(眞如)의 깨끗한 법유(法乳)이다.
서 말(三斗)이라 한 것은 삼취정계요, 여섯되(六升)라 함은 육바라밀이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실 때, 청정한 법유를 마심으로 해서 불과(佛果)를 얻으셨는데 도리어 말하기를 ‘세속의 음욕으로 화합된 누린내 나는 젖을 먹었다’하니, 비방함이
심한 말이 아니겠는가.


如來者
여래자
自是金剛不壞無漏法身 永離世間諸苦 豈須如是不淨之乳 以免飢渴也 如經所說 此牛不
자시금광불괴무루법신 영리세간제고 기수여시부정지유 이면기갈야 여경소설 차우부
在高原 不在下濕 不食栗麥糠   不與特牛同群 其牛身作紫摩金色
재고원 부재하습 불식율맥강부 불여특우동군 기우신작자마금색
言此牛者 則毘盧遮那佛也
언차우자 즉비로자나불야


여래란 금강석과 같아 무너지지 않는 무루법신(無漏法身 : 번뇌 없는 진실한 몸)이라서 세상의 고통을 영영 떠났는데, 어찌 이 같은 부정한 우유로 기갈을 면했겠는가. 경에 말한 것처럼 ‘이 소는 높은 언덕에도 있지 않고, 낮은 습지에도 있지 않고, 곡식이나 지게미도 먹지 않으며, 잡된 소와 어울리지도 않으며, 몸은 자마금색(紫摩金色)이다’
하였으니, 이 소는 바로 비로자나불인 것이다.


 달마 관심론(觀心論) 8 
몸 가운데 진여불성 녹여서 계율의 틀에 넣으면 ‘眞容의 모습’


以大慈悲憐憫一切故 於淸淨法體中 流出如是三聚淨戒 六波羅密 微妙法乳
이대자비연민일체고 어청정법체중 유출여시삼취정계 육바라밀 마묘법유
乳養一切求解脫者 飮如是淸淨之牛 淸淨之乳 非獨如來飮之成道 一切衆生
유양일체구해탈자 음여시청정지우 청정지유 비독여래음지성도 일체중생
若能飮者 皆得成阿 多羅三 三普提   又問曰 佛說經中 令衆生修造伽藍
약능음자 개득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 우문왈 불설경중 영중생수조가람
鑄寫形像 燒香散花 燃長明燈 日夜六時行道 持齋禮拜 種種功德 皆成佛道 若唯觀心
주사형상 소향산화 연장명등 일야육시행도 지재예배 종종공덕 개성불도 약유관심
摠攝諸行 說如是事 應虛妄也
총섭제행 설여시사 응허망야


대자비로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청정한 법체에서 이러한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법유(法乳)를 흘러내리게 해서 해탈을 구하는 이들을 법유로 기르시니, 이와
같은 청정한 소의 청정한 우유를 마시면 비단 부처님만 그걸 드시고 성도(成道)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도 마시기만 하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게 된다.”
다시 물었다.
“경전에는 ‘중생이 절을 짓고 성상(聖像)을 세우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장명등을 켜고, 밤낮으로 여섯 차례나 행도(行道)하고, 재계(齋戒)를 지키며, 예배를
올리는 등 여러 가지의 공덕을 닦으면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오직
관심법(觀心法)에 모든 수행이 포함된다 하시니 이건 전혀 허망한 말 같습니다.”


答曰 佛所說經 有無量方便 以一切衆生 鈍根狹劣 不悟甚深之義 所以假有爲事
답왈 불소설경 유무량방편 이일체중생 둔근협열 불오심심지의 소이가유위사
喩無爲理 若復不修內行 唯只外求 希望獲福 無有是處 言伽藍者梵音
유무위리 약부불수내행 유지외구 희망획복 무유시처 언가람자범음
此言淸淨處也 若永除三毒 常淨六根 身心湛然 內外淸淨 是則修伽藍也
차언청정처야 약영제삼독 상정육근 신심담연 내외청정 시즉수가람야
又鑄寫形像者 卽一切衆生 求佛道也 所謂修諸覺行 假像如來眞 容妙相
우주사형상자 즉일체중생 구불도야 소위수제각행 가상여래진 용묘상
豈道鑄金銅之所作也 是故求解脫者 以身爲爐 以法爲火 以智慧爲工匠 三聚淨戒 六波羅密
기도주금동지소작야 시고구해탈자 이신위로 이법위화 이지혜위공장 삼취정계 육바라밀
以爲模樣 鎔鍊身中眞如佛性 遍入一切戒律摸中 如敎奉行 一無缺漏 自然成就眞容之相
이위모양 용련신중진여불성 변입일체계율모중 여교봉행 일무결루 자연성취진용지상
所謂 究竟常住微妙法身 非是有爲敗壞之法 若人求道 不解鑄寫眞容 憑何輒言成功德也
소위 구경상주미묘법신 비시유위패괴지법 약인구도 불해주사진용 빙하첩언성공덕야


대답했다.
“경전은 무수한 방편으로 되어 있다.
중생들은 근기가 둔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깊은 뜻을 알지 못하므로 유위(有爲)의 일로 무위(無爲)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만약 안으로 수행하지 않고 밖에서 복을 얻으려 한다면 옳은 처사가 아니다.
가람이란 범어의 음략(音略)인데 청정처란 뜻이다.
만약 삼독을 영원히 없애고 항상 육근이 깨끗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안팎이 청정하다면 이것이 가람을 짓는 것이다.
또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중생들이 불도를 구할 때, 말하자면 각행(覺行 :
自覺·覺他하는 행법)을 닦을 때에 여래의 참되고 묘한 모습을 허상으로 반영한 것이지 어찌 법을 금동(金銅)으로 주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해탈을 바라는 자는 몸으로 불가마를 삼고, 법으로 불을 삼고, 지혜로
공장(工匠)을 삼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로 모양을 삼아 몸 가운데 있는 진여불성
(眞如佛性)을 녹여서 계율의 틀에 넣어 하나도 빠뜨림 없이 가르침대로 행하면 절로 진용(眞容)의 모습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허물어지는 유위법이 아니라 영원히 상주하는 절대 진리의 미묘
법신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를 구하면서도 이러한 참된 진용(眞容)을 조성하고 그리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공덕을 이룬다 하겠는가.


달마 관심론(觀心論) 9 
정법의 향과 꽃 공양하라 하였는데 근기 둔하여 향 태우고 꽃 뿌리니…


燒香者亦非世間有相之香 乃至無爲正法之香 薰諸臭穢 斷無明惡業
소향자역비세간유상지향 내지무위정법지향 훈제취예 단무명악업
悉令消滅 其正法香有五種 一者戒香 所謂能斷諸惡 能修諸善 二者定香 所謂深信大乘
실령소멸 기정법향유오종 일자계향 소위능단제악 능수제선 이자정향 소위심신대승
心無退轉 三者慧香 所謂常於身心 內外觀察 四者解脫香 所謂能斷一切無明結縛
심무퇴전 삼자혜향 소위상어신심 내외관찰 사자해탈자 소위능단일체무명결박
五者解脫知見香 所謂覺察常明 通達無碍 如是五香 名最上香 世間無比
오자해탈지견향 소위각찰상명 통달무애 여시오향 명최상향 세간무비


향(香)이란 세속의 형상이 있는 향이 아니라 무위정법(無爲正法)의 향이다.
더러운 냄새를 없애고 무명의 악업을 끊어 다 소멸시키는 것이다.
정법의 향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계향(戒香)이니, 모든 악을 끊고 선행을 닦는 것이다.
둘째는 정향(定香)이니, 대승(大乘)을 깊이 믿어서 물러남이 없는 마음이다.
셋째는 혜향(慧香)이니, 항상 몸과 마음을 안팎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넷째는 해탈향(解脫香)이니, 모든 무명의 결박을 끊는 것이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이니, 항상 관찰하는 것이 밝아서 걸림 없이 통달하는 것이다.
이 다섯 향은 최상의 향으로서 세상에서는 견줄 것이 없다.


佛在世日 令諸弟子 以知慧火 燒如是無價寶香 供養十方一切諸佛 今時衆生 愚癡鈍根
불재세일 영제제자 이지혜화 소여시무가보향 공양시방일체제불 금시중생 우치둔근
不解如來 眞實之義 唯將外火 燒於世間沈檀薰陸質碍之香 希望福報 云何可得 又散花者
불해여래 진실지의 유장외화 소어세간침단훈육질애지향 희망복보 운하가득 우산화자
義亦如是 所謂演 說正法諸功德花 饒益有情 散治一切眞如之性
의역여시 소위연 설정법제공덕화 요악유정 산치일체진여지성
普施莊嚴 此功德花佛所稱歎 究竟常住 無凋落期
보시장엄 차공덕화불소칭탄 구경상주 무조락기


부처님이 생존했을 때, 제자들에게 지혜의 불로써 이러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의 향을 사루어 시방세계의 부처님에게 공양하라 하셨는데, 요즘 중생은 어리석고 근기가 둔하여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침단·훈육 등 제조된 향을 불로써 태우며 복을 바라니 어찌 복을 얻겠는가. 또 꽃을 뿌리는 것도 역시 같은 이치이다.
말하자면 정법(正法)의 공덕 꽃을 설명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진여의 성품을
다스리고 뿌려서 널리 장엄(莊嚴)을 베푼다면 이런 공덕의 꽃이야말로 부처님이
칭찬하는 것으로 영원히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若復有人 散如是花 獲福無量 若言如來 令諸弟子及衆生等 剪截艶綵 傷損草木 以爲散花
약부유인 산여시화 획복무량 약언여래 영제제자급중생등 전절염채 상연초목 이위산화
無有是處 所以者何 持淨戒者 於諸天地森羅萬像 不令觸犯 誤損者由獲大罪
무유시처 소이자하 지정계자 어제천지삼라만상 불령촉범 오손자유획대죄
況復今者加毁淨戒 傷損萬物 求於福報 欲益反損 豈有是乎
황부금자가훼정계 상연만물 구어복보 욕익반연 기유시호


어떤 이가 이러한 꽃을 뿌린다면 한없는 복을 받는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제자나 중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꽃이나 초목을 꺾어서 공양하게 했다’고 말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계행을 지키는 이는 천지의 삼라만상을 해칠 수가 없고, 설령 실수로 해치는 것도 큰 죄를 받는데, 어찌 청정한 계를 무너뜨리고 만물을 손상시키면서까지 복을
구하겠는가. 이는 이익을 바라다가 도리어 손해가 되니 어찌 옳다 하겠는가.


달마 관심론(觀心論) 10 
근기 둔한 사람 밖으로 과보 구해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 돈다.


又長明燈者 正覺心也 覺知明了 喩之爲燈 是故一切求解脫者 常以身爲燈臺 心爲燈盞
우장명등자 정각심야 각지명료 유지위등 시고일체구해탈자 상이신위등대 심위등잔
信爲燈炷 增諸戒行 以爲添油 智慧明達 喩如燈光 常燃如是覺燈 炤破一切無明癡暗
신위등주 증제계행 이위첨유 지혜명달 유여등광 상연여시각등 소파일체무명치암
能以此法 轉明開悟 卽是一燈 燃百千燈 以燈續明 終無盡故 故號長明
능이차법 전명개오 즉시일등 연백천등 이등속명 종무진고 고호장명
過去有佛 名曰燃燈 義亦如是
과거유불 명왈연등 의역여시


또 장명등이란 바르게 깨친 마음을 뜻한다.
깨달은 지혜의 명료함을 등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등대(燈臺)를 삼고, 마음으로 등잔을 삼고,
믿음으로 심지를 삼고, 계행을 기름으로 삼으면 지혜의 밝기가 마치 등불 같을 것이다. 항상 이러한 깨달음의 등으로 모든 무명과 어리석음을 비추어야 하며, 이러한 법으로 밝은 깨달음을 열어나가야 한다.
즉 하나의 등불로 백 천개의 등불을 밝히고 이 등불의 밝음이 끝없이 이어지므로
장명등이라 한다.
과거 세상에 연등불이 계셨다는 것도 역시 이러한 뜻이다.


愚癡衆生 不會如來方便之說 專行虛妄 執着有爲 遂燃世間蘇油之燈 以炤空室
우치중생 불회여래방편지설 전행허망 집착유위 수연세간소유지등 이소공실
乃稱依敎 豈不謬乎 所以者何 佛放眉間一毫之光 尙照十萬八千世界
내칭의교 기불류호 소이자하 불방미간일호지광 상조십만팔천세계
若身光盡現卽普照十方 豈假如是世俗之燈 以爲利益 審察斯理 應不然乎
약신광진현즉보조시방 기가여시세속지등 이위이익 심찰사리 응불연호
어리석은 중생이 여래의 방편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허망한 짓을 하고,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세간의 소유(蘇油)로 등을 켜서 빈방을 비추는 것으로써
가르침대로 한다고 하니, 어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미간(眉間)에 있는 백호광(白毫光)으로도 십 만 팔천의 세계를 비추고,
신광(身光)을 다 나타내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게 되는데, 어찌 이런 세속의 등을
빌려서 이익을 삼겠는가. 이런 이치를 깊이 살펴보면 응당 그렇지 않겠는가.


又六時行道者 所謂六根之中 於一切時 常行佛道 佛者覺也 卽時修諸覺行 調伏六根
우육시행도자 소위육근지중 어일체시 상행불도 불자각야 즉시수제각행 조복육근
六情淸淨 長時不捨 名爲六時行道 塔者身心也 常令覺慧 巡 身心  念念不停 名爲 塔
육정청정 장시불사 명위육시행도 탑자신심야 상령각혜 순요신심 염념부정 명위요탑
過去諸聖 曾行此道 得涅槃樂 今時世人 求解脫者 不會斯理 何名行道 竊見今時鈍根之輩
과거제성 회행차도 득열반락 금시세인 구해탈자 불회사리 하명행도 절견금시둔근지배
曾不內行 唯執外求 世間塔 日夜走驟   徒自疲勞而眞性一無利益 迷愚之輩 甚誠可愍歟
증불내행 유집외구 요세간탑 일야주취 도자피로이진성일무이익 미우지배 심성가민여


또 여섯 차례 행도(六時行道)한다는 것은 항상 육근(六根)의 활동이 불도를 행한다는 뜻이다.
부처란 깨침이다.
즉시 모든 각행을 닦아 육근을 조복시키고 육정(六情)의 청정함을 오랜 동안
버리지 않는 것, 이를 육시행도라 한다.
탑이란 몸과 마음을 상징한다.
밝은 지혜로 몸과 마음이 돌며 생각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을 탑돌이라 한다.
과거 성현들도 이 도를 행하여 열반락을 얻었는데 지금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이런
이치를 모르니 어찌 행도한다 하겠는가. 근기가 둔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닦지 않고 밖으로 과보만 구하면서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을 돈다.
이는 피로하기만 하고 진성(眞性)에는 아무 이익이 없으니 어리석은 무리여
참으로 가엾다
김원각<시인·역경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