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상망(長毋相忘)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이지요. 우리 덕화만발의 도반(道伴) 동지(同志)께서는 잊지 못할 사람이 얼마나 많으신가요? 저는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잊지 못할 분도 많습니다.
장무상망(長毋相忘)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1856)가 제주도 유배 시절인 1844년에 제자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 : 1804~1865)’에게 그려준 <세한도(歲寒圖 : 국보 제180호)>에 찍혀 있는 인장입니다.
세한도는 추사 연구의 대가였던 ‘후지츠카 지카시(藤塚鄰)’가 일본에 가져간 것을, 근대 최고의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 1903~1981)’이 1944년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일본에 건너가 그를 설득해 가져온 보물이지요. 그 후 후지츠카의 집은 미군 폭격에 잿더미가 되었고, 그가 소장했던 많은 추사 관련 작품도 한 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존추사실(尊秋史室)’이란 당호(堂號)를 썼던, 손재형 선생의 열정 덕분에 세한도는 비극적 운명을 모면한 것입니다. 세한도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해지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있어, 시대를 초월한 향기를 지금도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한도에는 오른쪽 위 제목 옆에 찍힌 백문인(白文印), 그리고 세한도와 서문 형식의 글이 이어진 자리에 찍힌 주문인(朱文印), 또한 글 끝 부분에 찍힌 주문인 또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찍힌 주문인 등, 네 개의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김정희는 스물 네 살이던 1809년에는 해마다 청(淸)나라에 파견하는 사절단의 부사(副使)가 된 아버지를 따라 청(淸)나라의 수도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을 다녀왔습니다. 이후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를 통해 조선 최고의 학자로 성장하였지요.
특히 금석학(金石學)과 서화(書畵) 방면에서 김정희의 명성은 청나라에서도 높았습니다. 청나라의 지식인들은 김정희와 교유하기를 희망하였고, 김정희의 연구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는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 그 자신마저 제주도(濟州道)에 유배되었습니다.
모두가 정치적 투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 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추사의 제자 ‘우선 이상적’은 그런 김정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지요.
추사는 바다 건너 외딴 섬에 나락처럼 떨어져 있는 자신을 위해 머나먼 청나라에서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이루 말로 못다 할 지경이었지요.
추사는 세한도에 ‘‘권세와 이익을 위해 모인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성글어진다.’라는 사마천(司馬遷)의 말과,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라는 공자의 말씀이 들어 있어, 성인(聖人)께서 특별히 소나무와 잣나무를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는 곧고 굳센 정절(貞節) 때문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겨울이라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 그런 것이다.’라는 말로, 이상적이 세속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리를 갖고 있음을 칭찬하였지요. “고맙네! 우선, 이 세한도(歲寒圖)를 보게나(藕船是賞)” 이상적은 이 작품을 받아 들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승 추사에게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나 이익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초연히 세상의 풍조에서 벗어났겠습니까? 다만 보잘것없는 제 마음을 스스로 그칠 수 없어 그런 것입니다”라는 편지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품 오른쪽 귀퉁이에 ‘길이 스승님의 가르침과 은혜를 잊지 않겠다.’라는 뜻을 담아, ‘장무상망(長毋相忘)’ 인장을 찍어, 스승을 향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남겼습니다. 또한 그는 세한도를 청나라에 가지고 가, 청나라 문인 16인의 글을 받아 스승의 뜻을 기렸지요.
이 세한도 속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장무상망(長毋相忘)’의 붉은색, 네 글자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도리는 무엇이며 또 세속 권력이나 이익과는 무관하게 몸과 마음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 가를 말해주는 듯한 인장입니다.
‘장무상망’은 이처럼 스승 ‘추사 김정희’와 제자 ‘우선 이상적’의 변치 않는 의리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장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런 사제(師弟)의 정이 부럽지 않은가요?
저도 은혜를 갚아야 할 스승님도 있고, 보고 싶고 그리운 도반과 동지, 친구들도 많습니다. 이제 다리가 부실해져, 일일이 찾아뵐 수도 없습니다. 예전처럼 큰 홀을 빌려 잔치를 열 수도 없습니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은혜를 입고 갚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지은보은(知恩報恩)!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일! 제가 입은 스승님의 은혜를 어찌하면 갚을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네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6월 30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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