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세상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강나루터 2023. 7. 24. 07:32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는 사람에게 인격(人格)이 중요하듯 예술은 격조(格調)가 중요한데, 예술의 격조는 높은 수준의 학문을 닦은 후에야 비로소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문인 사대부들의 주장이었다.

양해, 이백음영도, 남송

처음 문인들의 서화예술은 아마추어의 여기(餘技)로서 출발했다. 그러나 후에 회화의 지위는 시문 ·서법과 동등한 위치까지 끌어올려져 회화를 화공(畵工)의 하찮은 재주에서 사대부의 오락적 예술이 되었다.

사대부들은 청록산수(靑綠山水. 산을 주로 청색과 녹색 계열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산수화)에서 수묵산수(水墨山水. 채색을 쓰지 않고 먹물로만 그린 산수화)로, 사실(寫實)에서 사의(寫意)로, 그리고 더 나아가 수양(修養)과 사기(士氣), 그리고 서권기(書卷氣)를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강희맹, 독조도(獨釣圖), 조선 전기

‘문자향(文字香)’은 글씨의 조형성에서 풍기는 기운을 의미하며, 서권기(書卷氣)는 학문과 독서를 통해 얻어지는 지성미와 인품을 말한다.

학식과 수양이 모자란 그대, 그림을 그리지 말라!

그런데 문자향서권기가 되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학식과 수양을 닦아야 한단 말인가? 웬만한 학문으로는 도달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게 안 되는 사람은? 그림 그리지 말라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미학자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가 “기하학/수학을 모르면 그림을 그리지 말라!"라고 주장했듯이 동양의 사대부들은 “학식과 수양을 쌓지 않은 그대, 그림을 그리지 말라!"라고 외쳐댔던 것이다.

동기창, 산수 화첩, 명나라

남송(南宋)의 조희곡(趙希鵠)은 화가는 세 가지 측면의 수양을 갖출 것을 요구하였는데, “가슴속에는 만권의 책이 있고, 눈으로는 앞 시대의 진귀한 명적(名適)을 실컷 보며, 또한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천하의 반은 되어야 바야흐로 붓을 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은 한술 더 떠 “만 리의 길을 걷지 않고 만 권의 책을 읽지 않으면 화조(畵祖- 화풍의 창시자)가 되고자 하더라도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외쳐댔다.

문동, 죽석도

또 명말(明末)의 문인 화가 운격(惲格)은 “인품이 높지 않으면 용필에 법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문자향 서권기’는 일반 화공으로서는 거의 도달하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아니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주장을 해대는 사람들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학식이 낮고 재주 있던 화공(畵工)들의 삶은 결코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예술은 자기들의 책임질 테이니 학식 없고 재주만 있는 너희들은 그냥 국가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도화(圖畵)나 기록화를 그리는데 만족하고 어디 가서 예술 한다고 떠들지 말라는 말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 사회체제의 근간이 신분제에서 경제적 계약관계로 급속히 이동하여 갔다. 이와 함께 풍속화나 민화(民畵) 등 서민 문화가 급속히 퍼져나가자 양반 사대부들은 심각한 체제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사적으로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사회적·문화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서권기 문자향’을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였다.

김정희, 세한도, 조선 후기

문인들은 민화, 풍속화 등으로 대표되는 서민 문화를 격렬하게 공격하였다. 문인들의 눈에는 풍속화나 민화 같은 것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격조(格調)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정희와 문인들을 문기(文氣)의 강조를 통해 초기 사대부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충효 문자도

사군자(四君子)

사대부들의 말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분야가 있는데, 사군자였다. 사군자(四君子)는 화훼화(花卉畵 - 꽃과 풀을 주제로 그리는 그림)의 화제(畵題)로 매화(梅花) · 난초(蘭草) · 국화(菊花) · 대나무(竹)를 일컫는다.

김정희, 산속의 난초, 조선 후기

사군자(四君子)는 각 식물이 지닌 특유의 장점을 군자(君子), 즉 덕(德)과 학식(學識)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부른 말이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피어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린다. 국화는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한다. 이런 특성이 군자의 성품과 닮았다고 하여 사군자(四君子)라 불렸다.

어몽룡, 월매도, 조선 중기. 어몽룡의 매화는 황집중의 포도, 이정의 대나무와 함께 삼절(三絶)로 불렸다.

조선 중기 문인 화가 어몽룡(魚夢龍 1564-? )의 「월매도(月梅圖)」이다. 매화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달에까지 닿을 듯 꼿꼿하게 피어 있다. 꺾일지 언정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조선 사대부의 기개와 지조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운수평(惲壽平), 묵매도축(墨梅圖軸), 청나라

청나라 운수평(惲壽平)의 「묵매도축(墨梅圖軸)」를 보자. 그는 담담하고 윤기나는 필묵으로 굽은 매화의 줄기를 그렸는데, 나무의 가지 끝에는 매화가 터져 나와 꽃잎이 번성하여 맑은 향기가 풍겨나는 듯하다.

김정희, 어몽룡, 운수평의 사군자에서 보듯 사대부의 문인화는 그림을 그리는 기능만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가 없는 예술이었다.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사대부들의 말대로 높은 수준의 학식과 수양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사대부들의 이런 그림은 두 번 다시는 인류가 만들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식이야 과거 보다 더 높은 수준까지 오를 수 있겠지만 시서(詩書)에 대한 높은 학식과 예술적 소양, 그리고 자기 수양과 품격을 갖춘 과거 사대부 같은 인간들은 인류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나올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대부의 문인화는 과거 동양이라는 특수한 사회가 만든 시대적 산물이었다. 예술은 손재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인들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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