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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긍허부(驕矜虛浮)

강나루터 2024. 2. 13. 09:33
*德華滿發*
 
교긍허부(驕矜虛浮)
 


 선거 철이 가까워지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서서 떠드는 말이 가히 가관(可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쏟아내는 공약(公約)을 보면, 그 천문학적인 돈은 누가 낼 것이며, 자신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것을 보면 교만(驕慢)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교긍허부(驕矜虛浮)’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만(驕慢)하고 자랑하며, 거짓되고 들떠 있다’ 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믿고 자만하거나, 거짓 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중국의 고전인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상군(商君)은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개혁 가 이자 정치가로, 엄격한 법 집행과 부국강병 정책으로 진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상군은 진 나라의 왕인 효공(孝公)에게, “교긍허부(驕矜虛浮)하는 사람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라고 말하며, 이러한 사람들을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요. 이후 ‘교긍허부’는 중국의 역사와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대에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겸손한 태도를 강조하는 데 자주 인용됩니다. 그럼 실속이 있는 인격 자의 모습에 대한 예화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6·25 때, 서울에서 이학박사(理學博士) 학위를 가진 어떤 노 학자가 피란을 와서 모 고등학교 임시 교장으로 있었습니다. 공부만 하는 분이라 차림새에 별 신경을 안 썼지요. 어느 날 교장 실에 앉아 있는데, 청소 당번 학생들이 교장 실 청소한다고 좀 나가 달라고 하자, 두 말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허름하게 생긴 노인이 교장 실에 왜 와 있는 지를 몰라 나가 달라고 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다음 날 조회 시간에 알고 보니, 그분이 바로 자기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 이학박사는 열 사람도 안 될 정도로 귀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은 고인이 된 포항공대 초대 학장 김호길 박사의 예화입니다. 김호길 박사가 서울대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어 안동 고모 집에 다니러 갔습니다. 그런데 옷깃에 달린 서울대 배지를 보고, 고모부가 충고했습니다.
 
 “이 시골에 공부는 잘해도 가정 형편이 안 돼서, 대학은커녕 중학교도 못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네가 대학 다닌다고, 배지 달고 다니면, 그 많은 청소년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다. 그리고 너처럼 좋은 대학 못 다니는 학생은 너 때문에, 얼마나 기가 죽겠느냐? 너 혼자 기세등등하게 자랑하고 다니는 동안 많은 사람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린다.”
 
 김 박사는 그 이후로 대학 배지를 달아본 적이 없었고, 평생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자리에 있게 되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네요.
 
 중국의 전 국무총리 주용기는 출장 갈 적에 산하 각 관청에서 사람들 동원하지 못하게 버스를 타고 조용히 다녔습니다. 요즘 북 콘서트나 학술 행사, 문화 행사를 하면, 부쩍 내빈 소개라는 순서가 있어 참석한 유명 인사를 소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개를 끝내고 나면 반드시 말썽이 생기지요. 상당수의 사람이 자기가 소개 받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소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소개를 받은 사람 가운데도, 소개하는 순서에 불만이 있기도 하고, 소개하는 내용에 불만이 있기도 해 다툼이 일어납니다.
 
 소개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위 관료나 국회의원, 기업가 등이고 소개하는 측은 학교나 문화예술단체들인데, 소개 받은 사람들에게 예산 지원 등,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하므로, 그 행사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영향력이 큰 인사들에게 비중을 두어 소개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행사의 본래 목적과 상관없이 유명 인사 소개하는 장소처럼 되는 상황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참석 인사 소개 다 끝내고,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뒤늦게 도착해서, 자기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인사도 있어, 부득이 소개하면 행사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 남에게 인정받고 대우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출세한 사람이라고 맹목적으로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지요.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장소에서 소개 받는다고, 남에게 자신을 알려 이름을 얻고, 표를 얻으리 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평소에 정성을 들여 두루 두루 잘하고, 늘 남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서 자신이 감동을 주어야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않을까요? 출세한 사람은 이름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당선된 사람은 낙선한 사람을 생각하며, 얻은 사람은 잃은 사람을 생각하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여 세상이 분열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명예나 지위를 얻은 사람이 더 얻으려 해서. 많은 사람의 반발을 삽니다. 지위를 얻은 사람이,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는 마음과 자세를 갖고, 교만을 떨고, 잘난 체하며, 허세를 부리고 과시하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지요.
 
 ‘화무십일홍이요, 권 불 10년’이라 했습니다. 우리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하고 허세를 부리는 ‘교긍허부’의 허무함을 깨달아 겸양의 미덕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기 4357년, 불기 2568년, 서기 2024년, 원기 109년 2월 13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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