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5) - 태백산 정암사
정암사의 옛이름은 원래 갈래사(葛來寺)였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갈래사란 사명은 이 절의 창건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갈래사사적기>에 따르면 신라시대 대국통(大國統)을 지낸 자장 율사는 말년에 강릉에 있는 수다사(水多寺)란 절에 머물고 있었다. 하루는 꿈을 꾸었더니 이상하게 생긴 스님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에서 보자’고 했다. 스님이 대송정으로 갔더니 문수보살이 꿈에 나타나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만나자’고 한 후 사라졌다. 스님은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바로 그곳’ 이라며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다. 이곳이 바로 갈래사라는 것이다.
갈래사라는 사명에 얽힌 또 다른 설화가 있는데 이것도 자장율사와 관련이 되어 있다. 자장율사는 처음에는 사북에 있는 불소(佛沼) 위쪽에다 사리탑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탑을 쌓으면 자꾸 무너졌다. 그래서 기도를 했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넝쿨 세 갈래가 눈 위로 뻗어나가 지금의 수마노탑과 적멸보궁, 그리고 요사채가 있는 곳에 멈추었다. 스님은 이곳이 바로 절과 탑을 세울 곳이라 하여 절을 짓고 이름을 갈래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갈래사는 창건과 함께 3개의 보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북쪽의 금봉대에는 금탑, 남쪽의 은대봉에는 은탑을 세우고 가운데에 수마노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중 수마노탑은 사람이 쌓은 탑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금탑과 은탑은 도력으로 지은 것이라서 물욕이 많은 중생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당시 용왕은 장차 자장이 이곳에 불사리탑을 지을 것을 미리 알고 마노석을 베어 배에 실어 보냈다. 이 돌은 울진포에 당도해 신력(神力)으로 이곳에 옮겨져 인연을 기다리다가 탑을 지을 때 쓰여졌다고 한다.
창건에 얽힌 설화가 이처럼 풍부한 데 비해 이후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숙종 39년(1713) 자인(慈忍), 일종(一宗), 천밀(天密) 등 세 분의 스님이 합심하여 수마노탑을 중수했으나 그 해 8월 벼락으로 파손되자 6년 뒤인 1719년 천밀 스님이 다시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 뒤 정조 12년(1788)에는 취암(翠巖), 성우(性愚) 두 스님이 적멸보궁과 탑을 다시 중수했으며, 철종 9년(1858)에 해월(海月), 대규(大圭) 두 스님이 다시 원력을 발해 보궁과 탑을 중수했다. 근년에 들어서는 1919년 보룡(普龍)화상이 중창불사를 했고, 1972년 이후는 등각(登覺), 삼지(三智), 법보(法寶), 삼보(三寶) 스님 등이 당우를 고쳐 적멸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암사 적멸보궁에는 불상이 없다. 다만 부처님이 앉아 계신 것을 상징하는 붉은 색 방석이 수미단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보궁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직접 남기고 간 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리가 모셔진 곳이 바로 빈 방석 너머 장방형으로 난 창문 밖에 서 있는 수마노탑에 봉안되어 있다. 이 수마노탑을 보궁 안에서 직접 바라 볼 수는 없다. 탑을 제대로 친견하기 위해서는 적멸보궁 뒤편 급경사를 따라 100m쯤 올라가야 한다.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된 국가지정 문화재이다. 모전석재(模塼石材)를 이용한 7층 탑으로 높이는 9m 가량이다. 탑신을 구성하고 있는 석재는 수성암질의 석회암으로 판석의 길이는 30~40cm , 두께 5~7cm 정도다. 상륜부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노반(露盤)위에 모전석재를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청동제 상륜을 설치한 탑이다.
정암사는 불자들의 이 같은 열렬한 신심을 돕기 위해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4분 정근을 실시한다. 그러나 불자들의 지극한 신심은 이것도 모자라 하룻밤을 꼬박 새우는 철야정진이 이어진다. 부처님 그 분에 대한 불자들의 존경과 귀의가 얼마나 크고 간절한 지는 철야정진에 동참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일주문에서 왼쪽으로 1977년에 지은 선불장(選佛場)이 있다. 이곳은 정암사 스님들과 참배객이 머무르는 숙소로 쓰인다. 선불장 옆에는 무량수각과 자장각, 삼성각이 얼굴을 맞대고 나란히 서 있다. 도량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개울 건너에는 아침저녁 예불 때 울리는 범종루가 서 있다. 적멸의 땅 정암사에서 저녁 예불을 올리기 전에 듣는 범종소리는 다른 절에서 듣는 종소리와는 사뭇 감회가 다르다.
정암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자장율사 영정을 모신 자장각은 정암사를 더욱 특별하게 느끼게 한다. 불보살을 친견하려는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하는 자장율사에 얽힌 설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덕여왕 12년(643)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는 승단의 최고 지위인 대국통(大國統)이 되었으나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었다. 그래서 만년에 강릉 수다사에 머물며 문수보살을 친견하기를 원하던 중 갈반지에서 만나자는 현몽을 받고 이곳으로 옮겨와 기도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은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가지고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시자가 대국통을 지낸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물자 늙은 이는 그저 ‘스승에게 여쭙기만 하면 내가 누구인지 알 것’이라고 했다. 시자는 마지못해 이 사실을 자장에게 전한다. 그러나 자장도 미친 늙은이겠거니 하고 만나 주지 않는다. 그러자 노인은 ‘아상(我相)을 가진 이가 어찌 나를 만날 수 있으랴’하면서 삼태기에 들어있던 강아지를 내려 놓자 강아지는 사자로 변했다. 노인은 이 사자위에 삼태기를 올려 놓고 보좌를 만든 뒤 그 위에 앉아 찬란한 빛 속으로 사라졌다.
뒤 늦게 이를 안 자장은 후회하면서 사자가 사라진 쪽으로 쫓아 갔으나 끝내 문수보살을 만날 수가 없었다. 자장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절규하다가 끝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천하의 존경을 받던 고승의 열반 치고는 비극적인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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