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스크랩] 개암선생의 갓과 문집

강나루터 2012. 11. 29. 07:10
  • 개암선생의 갓과 문집
  • 개암선생의 갓과 문집 [남계서원 창건시 시련 받던 이야기] 조선시대에 지식인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향리에 서원이 산재해 있었다. 서원은 학문을 연마하는 터전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어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원이 많은 곳으로는 서울에서 봤을 때 좌측에 안동이 있었고 우측에 함양이 있었다. 좌안동 우함양이라 부른 것은 안동과 함양이 학문을 숭상하여 가장 인재가 많았고 예의바른 고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함양에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던 것인가? 그것은 서원이 많이 세워졌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서 였다. 서원이란 조선시대 인재 배출의 본산이었으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오늘날의 대학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서원이 주세붕이 창건한 죽계서원(소수서원. 백운동서원)을 처음 세운 이래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것이 함양의 남계서원이다. 그 밖에 함양에는 당주서원, 백연서원, 도곡서원, 구천서원, 송호서원, 정산서원, 청계서원, 용문서원, 화산서원 등이 있었다. 남계서원(지방문화재 91호)을 세운 이는 개암 강익 선생이다. 선생은 동국 18현이면 조선조 5현의 한분이신 문헌공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리고 천령고을의 학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서원을 건립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를 가까이 따르던 선비들과 지우들도 그의 뜻을 크게 찬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도 크게 기뻐하는 서한을 보내 격려하였다. 고을의 선비들 중에는 서원 건립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전답을 선뜻 내놓기도 하고 가난한 선비들은...더보기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메추리12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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