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스크랩] 김유신(金庾信)설화

강나루터 2010. 11. 21. 15:18

 

  김유신(金庾信)설화

 

 신라통일기 명장 김유신(金庾信)에 관한 설화, 김유신의 일생을 다룬 내용은 <삼국사기>열전에 실려있고

                   그밖에 김유신의 행적에 관한 단편적인 일화들은 <삼국유사>기이 제1 김유신조를 비롯하여

                                                                     <파한집>·<동경잡지>·<동국여지승람>등에 실려 있다.

 또한 구전설화는 김유신이 활약하였던

                  경상북도 경주시·월성군 일대와 백제지역이었던 전라북도지방에 전하고 있다.

 

 전해지고 있는 설화의 내용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

 

1. 김유신은 가야 수로왕의 12대 후손이며 금관가야의 구해왕의 증손으로 경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은 신라왕족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길에서 만나 좋아하여

   야합했는데 숙흘종이 딸을 가두어두었더니 벼락이 쳐서 감시를 피해 만명이 서현에게로 도망쳐갔다.

 

2. 서현은 두 개의 별이 내려오는 꿈을 꾸고 만명은 금빛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탄 동자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뒤 잉태하여 20개월만에 김유신을 낳았다.

 

3. 15세에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렸다.

 

4. 17세에 신라를 침공하는 외적을 물리칠 뜻을 품고 홀로 중악(中嶽) 석굴에 들어가 빌었더니

                                  산신이 나타나 방술을 전해주고는 오색찬란한 빛만 남기고 사라졌다.

   18세에 열박산(咽薄山) 골짜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니

                                            빛이 내려와 보검에 실리고 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5. 35세에 아버지를 따라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치러 가서

                              혼자 적진에 들어가 적장의 목을 베어오는 용맹을 떨쳐 승리로 이끌었다.

   백제의 계속되는 침공 때문에 출정할 때

             자기 집 앞을 그냥 지나가는 의연함을 보여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싸움마다 승리했다.

   비담(毗曇)·염종(廉宗) 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큰 별이 떨어져 신라왕이 질 징조라 하자

                    허수아비를 태워 떨어진 별이 도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게 하여 난을 평정했다.

   백제와의 싸움에서 거짓 패하는 척하고 달아나다

                                          백제군을 포위하고 협상하여 품석(品釋) 부부의 유골을 찾았다.

   백제장군 은상(殷相)이 공격해왔는데

                                   물새가 동쪽으로 나는 것을 보고 첩자가 올 것이라 점쳐 승리하였다.

   김춘추(金春秋)를 왕으로 즉위하게 하고 백제를 물리칠 때

   연합한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치려 하자 당군과 싸울 굳은 결의를 보여 당나라 군사는 그냥 귀국했다.

   고구려와 말갈이 북한산성을 포위하자 김유신이 제단을 쌓고 기도 드리니

                                                   하늘에서 큰 별과 뇌성벽력이 떨어져 그에 놀란 적군이 물러났다.

   고구려의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는 당나라 군사에게 적진을 뚫고 군량을 수송하게 했는데

                                김유신은 현고잠(縣鼓岑)의 산사에 이르러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니

                                                                이번 길에 죽지 않으리라는 계시를 받았다.

   거듭되는 백제유민의 반란을 김유신이 꾀를 가르쳐 물리치도록 했고

                    고구려정벌 때에도 출전하는 장수들에게 천도·인심·지리를 얻어야 승리한다고 하였다.

 

6. 문무왕은 김유신 집안의 3대에 걸친 업적을 칭찬하고 유신에게 태대각간이라는 최고직을 주었다.

 

7. 나라에 요성(妖星)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나며 군복을 입고 병기를 가진 수십명의 군사가

   유신의 집에서 울면서 나가더라는 말을 전해듣고는 유신은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예언하였다.

   문무왕 13년에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8. 김유신의 묘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시조대왕릉에 이르고

   티끌이 일어나며 울며 한탄하는 소리가 나자 혜공왕이 두려워 제사드리고 사과하였다.

 

            (자료 출처 :'삼국사기','삼국유사', 정신문화연구원'한국구비문학대계', 1980∼1986.)

 

 

김유신의 어머니 설화

 

 요즘은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옛날에는 남녀가 딱히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별로 없었으며

                                     주로 낮선 남자와 여자의 마주침은 우물가에서 시작되곤 하였다.

 신라의 명장이던 김유신의 어머니 역시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를 우물가에서 만났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의 어머니 이름은 ‘만문’으로

                                 학식이 높고 성품이 자애로워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만문이 처녀티를 벗지 못 한 어느 해 마을의 큰 우물에서 두레박질을 하고 있는데

 말을 타고 지나가던 행렬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한 젊은이가 말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죄송하지만 물 한 사발만 주시오.” 하면서 다가왔다.

 만문은 젊은이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나그네의 목마름을 헤아려

 공손히 물을 떠서 젊은이 앞에 내밀었다. 젊은이는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더니

“봄 동산을 날아가는 한 마리 나비가 아름다운 꽃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까?” 하며 말을 건넸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야, 망망대해를 건널 적엔 조심하지 아니 하면 물에 빠져 죽으리라.”

 만문의 낭랑한 화답에 젊은이는 의외라는 듯 놀라는 기색이었다.

 잠시 후 젊은이는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만문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만문은 얼른 도망쳐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부터 만문과 젊은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두터운 정을 나누었는데

                            두 사람의 정은 자연스럽게 남녀 간의 운우의 애정으로 발전하였고

                                        이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다.

 결국 만문의 아버지의 귀에까지 이 소문이 들리자.

 만문의 아버지인 숙흘종은 딸을 불러 놓고 엄히 문책을 하였다.

“혼인도 치르지 않은 처녀에게 이 무슨 흉측한 소문이냐? 어떤 놈이냐?”

 만문은 머리를 숙인 채 굳게 입을 다물었고 화가 난 만문의 아버지는 그녀를 곧장 광에 가두어 버렸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날 밤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만문이 갇힌 광문으로 번개가 내리쳐서 광을 지키던 하인이 졸지에 번개를 맞아 죽고

                 만문을 창문을 넘어 도망쳐서 젊은이를 만나 진주 땅으로 달아나 혼인을 치렀다고 한다.

 딸이 도망가 혼인을 치른 것을 알게 된 숙흘종은 어쩔 수 없이

                   젊은이를 사위로 인정하였는데 그 젊은이가 바로 김유신의 아버지인 서현공이다.

 만문은 혼인 후에도 언제나 겸손하고 매사에 후덕하여 사람들은 그녀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만문 부인이 친정에 잠시 다니러 가게 되었는데

 검소한 그녀는 가마도 마다하고 젖먹이 어린 딸을 건사할 여종 한 명만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친정에 도착할 요량으로 만명 부인은 산을 넘기로 하였다.

 그런데 산 중턱에 이를 무렵 산길 한쪽에 쓰러져 신음하는 늙은 걸인을 보게 되었다.

 만명부인은 급히 그를 부축하여 대충 몸의 상태를 살폈는데

                         늙은 걸인은 허기에 지쳐 탈진상태로 곧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자 만명부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저고리를 풀어 헤치고 잔뜩 부푼 젖가슴을 꺼내어 늙은 걸인의 입에 물렸다.

 처음에는 미동도 하지 않던 걸인은 젖가슴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자

                                                            정신없이 만명 부인의 젖꼭지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놀란 계집종은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을 돌려 섰다.

 만명부인은 전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늙은 걸인이 젖을 좀 더 잘 빨 수 있도록 걸인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받쳐 주었다.

 한참 후 늙은 걸인이 겨우 의식을 회복하자 만명 부인은 손수 걸인을 부축하여 마을에 데리고 가서

              주막집에 돈을 치르고 주모를 불러 따로 수고비를 주면서

                          걸인이 몸을 회복할 때까지 몸조리를 부착하고는 다시 친정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여종은 마음으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아

                             그 일을 죽을 때까지 발설하지 않고 마음속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주막집에서 건강을 회복한 늙은 걸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사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아무도 그 신원을 알 길이 없었다.

 늙은 걸인은 그날부터 신라 전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축원하는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얼마 후 만명부인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더니

                                           눈부신 광채가 나는 둥근 옥 한 개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덕이 크고도 아름답도다.

 여인이여 내가 너에게 주는 이 옥은

 장차 나라와 가문을 길이 빛낼 귀한 보배이거니 부디 소중하게 간수하고 잘 닦도록 해라.”

 관세음보살로부터 그 옥을 소중히 건네받아 품에 안은 만명부인은

 순간 짜릿한 전율이 강하게 느껴졌으며 그 꿈을 꾸고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을 낳았다고 한다.

 그 꿈이 김유신 장군의 태몽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태어난 김유신 장군은

             어머니 만명부인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후에 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이루게 되었다.

 

   

 그가 백제 원정을 떠날 때의 일이다.

 여러 차례 계속되는 싸움에 참여하던 김유신은 집에도 한 번 들르지 못하고 싸움터에 나가 있었다.

 어느 날

 다시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는 데, 가족들이 그를 보기 위해 문 앞에 나와 있었다.

 그는 가족들을 돌 아보지도 않고 가다가 말을 멈춘 후 집에서 물 한 바가지를 가져오도록 시켰다.

 그러고는 "우리 집 물 맛이 아직도 예전과 같다."고 하였다.

 이에 군사 들은

"대장군도 이러하거늘 우리가 어찌 가족과 떨어져 있음을 서글프게 여기겠는가." 하면서 분발해서 싸웠다.

 

 

  구토설화(龜兎說話)

 

 출 전 : 삼국사기 권41 열전 '김유신조'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병들어 앓고 있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토끼의 간을 구해서 약을 지어 먹으면 낳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다 가운데 토끼가 없으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 한 거북이 용왕께 자신이 구해오겠노라고 아뢰었다.

 거북은 마침내 육지에 올라 토끼에게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고 그곳에는 맑은 샘과 맛있는 과일이 많고

                                              날씨도 적당하며 매나 독수리들도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한 2, 3리 헤엄쳐 가다가 거북이 토끼를 돌아보며 잡아가는 진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토끼는 말하기를 "나는 신령의 후예이므로 간을 내어 씻었다가 다시 넣곤 한다.

 마침 그것을 내어서 바위 위에 말려두었다.

 나는 간이 없어도 사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냐 ?"고 했다.

 거북은 토끼의 이 말을 믿고 토끼를 도로 업고 돌아서서 육지로 올라갔다.

 토끼는 풀숲으로 뛰어들어가며 거북에게 말하기를

"어리석구나. 이 거북아. 어찌 간 없이도 사는 놈이 있단 말이냐 ?" 하였다.

 거북은 가련하게도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 구토지설

 

 이 설화는 토끼로 대표되는 평범한 인물의 지혜로운 행동과

 거북, 용왕으로 대표되는 지배자의 강압과 무능함을 대비시켜 토끼의 생기발랄한 성격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후대 판소리, 소설로도 전승된다.

 이야기는 불경에도 나오며 일찍이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에 군사를 청하러 갔다가 옥에 갇혔을 때,

       고구려의 신하인 선도해에게 뇌물을 주자 그가 탈출을 암시하며 춘추에게 알려준 이야기라고 한다.

 

 

  용원설화(龍猿說話)

 

  출 전 : 인도의 불경 '자타가 본생경(本生經)'

 

 바닷속에 용왕이 살았는데, 그의 왕비가 잉태하여 원숭이의 염통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용왕은 원숭이의 염통을 구하기 위하여 육지로 나와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원숭이를 만났다.

 용왕은

"그대가 사는 이곳은 좋지 못하니 아름다운 수목이 있고 먹을 열매가 많은 바닷속으로 안내하겠다."

                                                                                                                        제안하였다.

 이에 솔깃한 원숭이는 기뻐하여 용왕의 등에 업혀 물 속으로 갔다.

 도중에서 용왕은 그만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원숭이는 용왕을 보고 염통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왔으니 얼른 다시 가지러 가자."고

 하였다.

 원숭이는 육지에 나오자마자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용왕을 보고 조소만 하였다.

                                                                                                          -  구토지설 - 

 

 

 김유신과 천관

 

 김유신(金庾信) 장군이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은

 그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벗을 잘 사귀어야 하되 언제나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을 벗으로 삼고,

                                             거짓말을 하거나 비겁한 행동을 하는 자는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

 김유신이 나이가 들어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되자

                     천관이라는 기생을 알게 되어 가까이 사귀게 되었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소문을 듣게 된 어머니는 김유신에게

"훌륭한 가문의 자손으로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할 네가

                              몸과 마음을 닦는 일을 게을리하고 기생방에 드나들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

 이후부터라도 기생방에 출입을 금하고 공부에 열중해라.

 그렇지 않으며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하고 하였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김유신은 크게 뉘우치고 다시는 기생방을 드나들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유신은 친구집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그의 애마를 타고 귀가하는데 졸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말은 평소 주인이 잘 가던 기생 천관의 집으로 가고 말았고

                       귀에 익은 말발굽 소리를 들은 천관은 방에서 뛰어나와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잠에서 깬 김유신은

           그가 어머니와 했던 맹세를 생각하고는 갑자기 칼을 뽑아 그가 사랑하는 말의 목을 쳤다.

 그리고는 붉게 물든 핏물위로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 갔고

                               이 모습을 지켜본 천관은 유신을 잊지 못하다가 그만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 후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노장 김유신은 그를 잊지 못해 자결한 천관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녀의 집터에 천관사라는 절을 짖고 그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김유신(金庾信)과 세 여신(女神)

 

 삼국유사의 기록에

 

 유신공은 해와 달과 별들의 정기를 타고났으므로

                                          등에 7성(星)의 무늬가 있고 또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많았다.

 그는 나이 열여덟 살 되던 임신년(서기612)에 이르러 검술 공부를 하여 국선(國仙)이 되었다.

 이 당시 백석(白石)이라는 자가 있어

            어디에서 왔는지 내력은 알 수 없었는데 여러 해 동안 화랑의 무리에 속하여 있었다.

 유신은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할 계획으로 밤낮 몰두하고 있었는데

 백석이 그의 계획을 알고 유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당신과 함께 먼저 비밀히 저 나라들을 정탐한 후에 일을 착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유신이 기뻐서 친히 백석을 데리고 밤에 길을 떠났다.

 고개 위에서 막 쉬는데 웬 여자 둘이 나타나서 유신을 따라왔다.

 골화천(骨火川.지금의 경주시 동천동 지방이라고 한다.)에 와서 유숙하는데 또 한 여자가 홀연히 왔다.

 유신공이 세 처녀들을 데리고 즐겁게 이야기를 할 때에 처녀들이 맛좋은 과자를 대접하니

     유신이 이것을 받아 먹고 마음으로 서로 허락하여 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처녀들이 고하기를,

"당신이 하시는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바라옵건대 당신이 백석을 잠시 따돌리시고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시면 다시 사뢸 곡절 이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그들과 함께 숲속으로 들어갔더니 처녀들은 금방 신령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타나면서 말하기를,

"우리들은 나라를 보위하는 내림(奈林.경주의 낭산),

           혈례(穴禮.경주시 건천읍의 부산), 골화(骨火.경주시 동천동의 금강산)등 세 곳의 신령이외다.

 지금 적국 사람이 당신을 유인하는데 당신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길을 가니

                             우리는 당신을 만류하고자 이곳까지 왔습니다." 하고는 말을 마치자 사라졌다.

 유신공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쓰러졌다가 공손히 절을 하고 나와 골화의 숙소에 묵으면서

 백석에게 말하기를,

"지금 타국으로 가면서 필요한 문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가지고 오자." 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백석을 결박해 놓고 실정을 고문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고구려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신라의 유신은 우리나라의 점치는 술객 추남(楸南)이 환생하였다고 합니다.

 나라 지경에 거슬러 흐르는 물이 있어 그를 시켜 점을 쳤더니 그가 왕에게 아뢰되,

'대왕의 부인께서 음양의 법칙을 거슬러서 이와 같은 조짐이 나타난 것이외다.' 하니

 왕은 놀라 괴상히 여기고 왕비는 크게 노하여 이를 요사스러운 말이라고 왕에게 고하여

                  다시 다른 일로써 시험해 물어보아 말이 틀리면 엄중한 형벌을 내리자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쥐 한 마리를 함 속에 넣고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이는 틀림없이 쥐요, 마리 수는 여덟이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이 틀렸다고 하여 바로 사형을 집행코자 하니 그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는 바라건대 대장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다' 라고 하니

                                                                                      즉시 목을 베었습니다.

 쥐를 잡아 배를 갈라본 즉 새끼가 일곱 마리였습니다.

 그제야 그의 말이 맞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더니 다들 말하기를,

                   '추남이 발원을 하고 죽더니 과연 맞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나를 이곳까지 보내어 당신을 모해코자 한 것이외다." 라고 하였다.

 유신이 즉시 백석을 처형하고 갖은 음식을 갖추어

                        세 분 신령에게 제사를 하니 신령들이 모두 사람으로 현신하여 제사를 받았다.

 

                                                                                                       라고 전하고 있다.

 

 김춘추와 문희

 

 김춘추(金春秋)는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되고

                              그의 왕비 문명왕후(文明王后)는 김유신의 막내 누이인 문희이다.

 문희에게는 언니가 있었으니 이름은 보희라고 한다.

 하루는 보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는데 오줌이 서울 안에 가득 찼다.

 아침에 동생 문희를 데리고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문희가 듣고 말하기를,

“내가 그 꿈을 사겠어요”하여 언니가 말하기를, “무슨 물건을 주겠니?”라고 하였다.

 문희가,

“비단 치마면 어떻겠어요?”하니 언니가 좋다고 하여 동생은 옷섶을 헤치고 받아들이는데

 언니가 말하기를,

“간밤의 꿈을 네게 물려준다.”고 하니 동생은 비단 치마로 값을 치렀다.

 한 열흘 뒤에 유신이 춘추공과 함께 정월 오기일(午忌日)에

         유신의 집 앞에서 공을 차다가 일부러 춘추공의 옷자락을 밟아 옷끈을 떼었다.

 유신이 청하기를, “우리 집에 들어가 꿰맵시다.”고 하니 춘추공은 그 말대로 좇았다.

 유신이 보희를 시켜 꿰매드리라고 하니 보희가 말하기를,

“어떻게 그런 하찮은 일로 함부로 귀공자를 가까이 하겠나이까”하고 이를 사양하였다.

 그제야 동생 문희에게 명하였더니 춘추공이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그와 관계하여 이로부터는 자주 내왕하게 되었다.

 유신이 문희가 아이 밴 것을 알고 그를 나무라며

“네가 부모에게 말도 없이 아이를 배었으니 웬일이냐?”하고는

                                 곧 서울 안에 소문을 퍼뜨리고 문희를 태워 죽이려고 하였다.

 유신은 선덕여왕이 남산에 놀러 나가는 틈을 타서

                                             장작을 마당 가운데 쌓고 불을 질러 연기를 올렸다.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었다.

 측근자들이 아뢰어 말하기를,

“아마도 유신이 그 누이를 태워 죽이는 모양이외다.”고 하였다.

 왕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 누이가 남편도 없이 아이를 배었던 까닭이라고 하나이다.”하고 하였다.

 왕이

“이것이 누구의 소행이냐?” 고 물으니

                  이때 마침 춘추공이 왕을 측근에서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빛이 사뭇 달라졌다.

 왕이 이 모양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이 네 소행이로구나. 빨리 가서 구원하라!”고 하였다.

 춘추공이 이 명령을 받고 말을 타고 달려가 왕의 분부를 전달하고 이를 말렸으니

                   이로 인해 버젓이 혼례를 치르고 문희는 장차 왕이 되는 김춘추의 부인이 된다.

 

 

 

 

 

 

 

출처 : 마이웨이 
글쓴이 : 박지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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