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허미수와 송우암

강나루터 2011. 2. 5. 19:31

     허許.송宋 두선생은  젊은시절 같은 절에서 공부 한적이 있었는데 글을 읽다가 쉬는시간이면  재미난 이야기도 나누곤하였다

어느날은  송 선생이 자기 이름이 송 時烈이니까  나는 열렬무왕 (烈烈 武王)이요 하고 뽑내었다

    --烈렬은 성질이 용감하다는 뜻인데  , 주周나라 둘째임금인용감한 무앙은 성군으로서 공자도 숭배하던 분이니  젊은 우암으로서는 우쭐할수밖에

그러자 곁에 있던 허선생이  자기이름이 목穆이니까 ,나로 말 할것 같으면 목목 문왕 (穆穆 文王)이요 하고 쏜살 같이 대꾸를 하는것이였다

   __ 목穆은 위의가 바르고 성대하다는 뜻으로 .훌륭한 문왕은 무왕의 아버지 인것이다

그러고 보니 잠깐 사이에 우암은 미수의 아들이 된것이다

 

허.송 두 선생은 정계에나가서도 죽기 살기로 싸움을계속했다  그런데 불공 대천의 원수지간인데도 사私적인 관계에선 서로가 대인의 풍모를보여 주었다

우암이 병이나자 그 아들을 시켜서 허선생에게 약 처방을 물어 보고  허 선생은 흔쾌히 약 방문을 가르쳐 준 사실이다

    ---송우암은 그당시 정계의 실상을 살펴 볼때에 언제인가 자기에게  비상을 탄 사약이 내리란것을 미리알고 비상의 독을 막기 위해서 항상 자 기소변을 받아 마셨다고한다  소변 찌꺼기가 비상의독을 물리치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소변 찌꺼기가 병을 만든줄을 우암은깜짝 몰랏던모양이다

  허미수선생의  약 처방이 엉뚱하게도 비상 서돈을 약에넣어서 다려 먹으란것이다  우암의 아들은 비상의 양을 줄여서 두돈을 다려서 아버님 우암께 드렸더니  병이  완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모두 아는이야기이다

 

 우암은 나중에 남인파에 의하여  사약을 받고 타계했지만 세월이흐르고 난다음 향교에 배향 되고  허미수 선생은  퇴계학파 인데도 향교 입향은 되지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두분 선생의 우열을 따질수는없다  조선조에서는 학파의 순수성만 따지다보니 아까운 인물들이 빛을 못보는 경우가 있었다.

        단기 4344년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