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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솔사(多率寺)

강나루터 2014. 2. 19. 15:38

아~사솔사!

어릴적 하동에서 아버지를 따라 다솔사를 들렀다 진주로 가던 기억이 삼삼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자동차가 드물던 때라 다솔사까지는 트럭을 빌려 탔는데 그때 기사아져씨는 옆에 탔던 분을 뒤로 보내고, 아버지와 나를 기사옆에 타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나만 앞에다 태우시고 트럭 뒤에서 아져씨와 함게 타고가셨는데,트럭에서 내려서도 소나무 숲길을 꽤나 힘들게 걸은 기억생생한데, 지금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잘 닦여진 도로 덕분이겠지.

아무튼 그때 사찰에는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신 어른이 계셨고, 밥을 잘 차려주신 아주머니도 참 친절하셨던 꼭 엇그제 처럼 되살아나는 기억 .......

사찰은 분위기기 많이다르지만, 아득히 참 그리운게 많다.

 

사천시 곤양면 용산리 와룡산 자락에 다솔사多率寺가 있다.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고 여기기 쉬운 다솔사는 한자 이름대로라면 ‘많은 군사를 거느린다.‘라는 뜻이라 한다.

소나무 숲과 측백나무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다솔사로 가는 길이 한적하지만 운치가 있다.

이 절은 신라 지증왕 4년인 503년에 인도의 스님 연기조사가 창건한 뒤 영악사라고 하였는데, 성덕왕 5년에 다솔사라고 고치고, 문무왕 16년인 676년에 의상스님이 영봉사라고 고쳤다가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다솔사라고 고쳤다. 그 뒤 1326년에 나옹스님이 중수하였고, 조선 초기에 영일. 효익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숙종 때 복원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14년에 일어난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재건한 것이다. 현존하는 절 건물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83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양루(大陽樓)와 대웅전. 나한전. 천왕전. 요사채등 10여채의 건물들이 있다. 대양루는 1749년인 영조 25년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2층 맞배집으로 견평 106평의 큰 건물이다.

또한 1978년 2월 8일에 대웅전 삼존불상에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할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나와 적멸보궁으로 증 개축한 뒤에 불사리를 그곳에 모셨다. 적멸보궁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열반에 들기 직전의 부처님 모습인 와불상을 모셨다. (신정일의 다시쓰는 택리지에서 인용)

 

아직 단풍이 곱게 남아있는 다솔사에서, 보안암을 들러 물고뱅이 마을로 넘는 적당한 산행도 오늘의 기행도 오랬만에 상쾌한 트래킹이다. 마을로 내려오니 감을 썰어 말리는 빨간 채반들이 곱고, 안내표지석이나 설명도 없이 꼭 단군 할아버지를 닮은 석상이 저만치 우뚝 서있어 한컷 담아봤다.

 

올 가을을 완전히 반납했던 나를 위함인가, 12월인데도 다솔사에는 아직 단풍이 곱게 남아있다.

낮설지만 왠지 푸근한 산자락에 저리 예쁘게 단장한 연못까지 우리땅의 한 자락이 참 곱게도 그려지는 내게는 참 특별한 곳이다.

 

 

 

 

 

 

 

 

 

 

현 사리탑에 모셔진 진신사리를 모셨던 탑이다.(

 

이절 응진전은 일제 때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고 스님인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러 수도를 하였던 곳이고, 소설가 김동리金東里가 머물면서 <등신불等身佛>이라는 소설을 쓴 곳이기도 하며 김법린. 최범술. 김범부등이 은거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곳이라 한다,

 

 

 

 

사진에는 그그림같은 연못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느낄수없어 유감입니다.

 

 

다솔사 절 근처에서 재배되는 죽로차竹露茶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차인데 다솔사에 딸린 암자인 보안암은 다룬 곳에서 보기 드문 석굴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39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굴의 외형은 판상의 사암질 활석을 단층식으로 쌓아올린 분묘형태이며, 평면은 방형이다. 석굴의 입구에는 미륵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목조전실을 지나서 2m정도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석실이 있다. 중앙에 장대석을 대좌로 하여 결가부좌한 석조여애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 본존의 뒤쪽 좌우에는 각 8구의 석조 나한좌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석굴은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경주 석굴암과 군위 삼존석굴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석굴이다.“ (신정일 선생님의 다시쓰는 택리지에서 인용)

 

 

보안암을 기점으로 산을 넘어 내려오는 길에 만난 후덕해 보이는 바위들, 상당히 가파르고 주로 흙이 순해보이는 곳에 저런 바위 둘이 꼭 이 산을 지키고 있는듯 보였다. 신샘 왈, 책을 쌓아 올린것 같다 하고, 어느도반은 켜켜이 쌓은 떡같다고도 하고.....

 

 

 

 

 

 

출처 : 구름재
글쓴이 : 寶軒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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