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은 원래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기골은 장대했지만 생사를 건 수행에 매달리다보니 젊어서부터 늘 몸이 좋이 않았다. 그래서 성철 스님이 가장 먼저 챙기는 필수품은 약을 달이는 약탕기다. 해인사 부속 지족암에 계시던 일타 스님이 성철 스님을 얘기할 때마다 떠올리는 기억도 바로 약탕기다.
"성철 스님 행각(行脚.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 하실 때 보면 가관이거든. 걸망 속에 물건을 차곡차곡 넣으면 많이도 들어가고, 걸망이 그렇게 부풀지도 않을텐데 짐을 어떻게 쑤셔넣으셨는지 걸망이 울퉁불퉁 불룩한데 그 속에 약탕기가 꼭 들어가는거라. 그걸 어째 걸망속에 잘 넣으면 표시가 나지 않을텐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젊은 시절 성철 스님의 모습이 상상됐다. 내가 모신 성철 스님은 매사 자로 잰듯 반듯해야 하는 분인데, 젊었을 때는 큰스님도 참 무심하셨나보다는 생각이다. 도우 스님의 기억도 그런 젊은 날의 무심한 성철 스님 모습을 말해준다.
"성철 스님 빨래하시는 거 한번 볼 만했지. 물에 주물럭거려 빠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망이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물 속에 잠시 담가 두었다가 꺼내서는 후두둑거리는 물방울만 대강 털어서 말리는 거야. 다림질 대신 발로 여기 저기 밟아 큰 주름만 펴면 그냥 입는 거야. 그것이 다였지."
그렇게 무심한 성철 스님인데도 약탕기는 반드시 챙겼다고 하니, 그만큼 약탕기가 필요한 물건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노년의 성철 스님은 관절염으로 고생을 했지만 그 외에 크게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시절엔 맹렬한 정진수행이 힘들었는지 늘 탕약을 달여 먹었다고 한다.
약탕기 얘기를 하자면 빠트릴 수 없는 분이 현재 해인사 방장이자 원로회의 의장인 법전 스님이다. 성철 스님의 후배격인 법전 스님은 1950년대초 경남 통영 안정사 인근에 지은 작은 토굴인 천제굴(闡提窟) 에서 성철 스님을 모신 적이 있다.
성철 스님의 첫번째 상좌인 천제 스님이 출가하기 직전이다. 법전 스님은 탕약을 잘 달이기 위해 저울을 활용했다. 저울의 한쪽엔 약탕기를 달고, 다른 한쪽에는 약탕기보다 조금 더 무거운 돌을 얹어 둔다. 약을 달이다보면 물이 줄어들게 되는데, 자연히 약탕기 쪽이 가벼워져 균형이 맞게 되면 약을 다 달인 것이 된다.
워낙 빈틈 없는 법전 스님인데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장치까지 해두었으니 혼자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큰스님 시봉에 차질이 없었다고 한다.
성철 스님은 저울을 만들어 약을 달이는 법전스님 솜씨가 참 신기했던지 말년에 안마를 해드릴 때면 늘 "법전 스님은 희한하게 저울가지고 약을 달이는데, 기가 막히게 잘 달였제"라고 기억하곤 했다. 성철 스님이 약탕 만드는 일과 관련해 자주 들려주던 옛날 얘기가 있다.
"옛날에 어느 대감이 정실 마누라가 있는데, 소실을 둔 거라. 옛날 양반들은 꼭 어데가 아파서가 아이라 그냥 몸 아끼느라 더러 보약을 달여 먹었거든.
어느날 그 대감도 보약을 먹게 됐제. 그래서 먼저 소실한테 보약을 달여 오라는데 정성이 지극했는 거라.
약을 달이다 보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데, 늘 일정한 양으로 약사발을 가져오거든. 대감은 약사발을 들 때마다 '얼마나 정성스러우면 이렇게 약을 잘 달여올까'하면서 그 정성에 흐믓해했제.
그러다 '소실은 저래 정성스러운데 정실인 본마누라는 어쩔까'하는 생각이 들은 거라. 그래서 큰마누라한테 약을 달여 오게 했거든. 그런데 큰마누라는 들쭉날쭉인 거라.
어떤 때는 그릇 까득 가져오고, 또 어떤 때는 탄 냄새가 날 정도로 빠짝 졸여갖고 오는 거라. 대감이 하도 괘씸하다 싶어 큰마누라를 친정으로 쫓아버렸제.
그 뒤에 대감은 애첩의 약 달이는 솜씨가 하도 신기해 부엌에 나가 몰래 쳐다본 거라. 가만 보니 양이 많으면 버리고, 졸여서 적으면 물을 부어 맞추는 거 아이가. 기가 막히제. 그래서 애첩을 당장에 내쫓아 버렸다는 얘긴 거라."
성철 스님은 그렇게 얘기를 끝내고서는 한마디를 덧붙이곤 했다.
"그런데 나도 너거들한테 작은 마누라 약 마이 얻어 먹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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