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스크랩] 미스테리한 여자

강나루터 2015. 2. 22. 08:50

 

 

 

                                                                                                  ㅡ 수 한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묘한 여자를 이곳에서 만났다.

 그래서 난 이여자를 '미스테리녀' 라고 부른다.

 

 나이는 나보다 두살 아래이니 같은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다,

 처음에 이여자를 봤을때는 꼭 청학동출신 같이만 보였다.

 화장기없는 얼굴에 생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매고 늘 회색법복을 입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이여자의 고집스러운 표정이 영 접근불가를 느끼게 했다.

 

 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어려워하고 한편으로는 마땅치 않아하는 여자였다.

 매사가 너무 완벽하니 그녀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못마땅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일은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일꾼이기도 했다.

 

 누가 이 고집세고 별스런 여자를 다스려야할지 고민들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잘못한 것도 없으니 내보낼 수도 없는 일.

 스님들조차도 어려워했으니...

 

 그런 이여자와 내가 생각지 않게 가까와지게 되었다.

 이여자의 정식업무는 빨래보살이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서 공양간 일도 돕고 있었다.

 마침 공양주 한 분이 그만두는 바람에 내가 공양간에 투입되어 일을 하면서 이여자와 말을 트게 되었다.

 처음엔 냉정하게 바라보던 그녀와 조금씩 말을 나누게 되면서

 난 참으로 놀라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청학동에서 온 것 같은 이여자,

 무뚝뚝하게 생각했던 이여자는 의외로 상냥하고 부드럽게 나를 대했으며

 나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으며 자신의 이력을 들려주었다.

 

 명문가문에 태어나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여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해운업을 했었다고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돈도 벌었다고...

 

 난 깜짝 놀랐다.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여자가 명문가문의 여자라고?

 그것도 해운업을 했었다고?

 오마이 갓!!!

 

 왜 이런 삶을 자청해서 사느냐의 질문에,

 "어느 순간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굶주린 이리같이 보였어요.

 정말 다들 이리같아요. 탐욕의 이리들 말에요.

 그런 세상이 너무 역겹고 싫었어요.

 나의 남편도 그랬어요.

 그래서 이혼을 요구했죠.

 다행히 아이가 없었으니 미련도 없었죠.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했죠.

 제가 이 세상에서 사랑할 사람은 부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알았어요.

 엄청난 부를 걸머졌으나 제 가슴은 항상 허전했어요.

 참 화려한 삶을 살았지요.

 사업을 정리한 후에 산으로 들어왔어요."

 

 "왜 출가를 하지 그랬어요?"

 

 "했었지요. 행자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제 이력에 결격사유가 있어서 승인이 나지 않았죠.

 일찍 죽은 여동생의 딸을 제 호적에 올렸거든요. 양육할 자녀가 있으면 안된다고 했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밝힐 수 없는 사람이라 했다.)

 그래서 그냥 선지식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살았어요.

 삼년 후엔 타종단으로 출가할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절을 지어서 선지식 모시고 살려고요.

 제가 존경할 만한 선지식만 만난다면 전 그 분을 업어서 모시고 살 수도 있어요.

 농사 지으면서 공양하며 살고 싶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 참 선지식이 없네요...많이 찾아 헤맸는데..."

 

 물욕도 애욕도 이미 떨어져 나갔다는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삶은 참 재미있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여러가지를 질문하고 물고 늘어졌다.

 

 "그런데 그 많은 재산은 어디에 숨겨두었어요?"

 

 "호호...바다에 던져 버렸어요."

 

 "저런...차라리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시지..."

 

 "언젠가 제가 필요할 때가 되면 바다에 가서 건져오지요 뭐. 호호호

 전 화려하게 살았던 지난 날 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아주 좋아요."

 

 하루는 그녀가 자신이 혼자 살고 있는 토굴로 초대를 하였다.

 버려진 토굴인데 스스로 자청해서 살고 있었다.

 귀신이 출몰한다고 하여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 집이었다.

 담력있는 스님들이 도전했다가는 다 포기했다는 토굴이었다.

 

 소문대로 토굴주변에선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육이오 전쟁터였던 곳이라 비명에 간 젊은 영혼들이 많이 떠돌고 있다고 하였다.

 미스테리녀는 몇군데에서 출몰했던 영혼들을 만났던 이야기

 그들을 염불의 힘으로 천도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그당시의 비밀스런 일들도 스크린처럼 보았다고 했다.

 

 그런 영적인 능력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런 능력은 치열한 수행의 결과 얻어진 것이에요?"

 

 "아뇨...어려서부터 있었어요. 그래서 세상이 더 시시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전 그 결과가 그려졌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달려가더라구요.

 그것을 떨구어보려고 공부에 몰두했고, 일에 미쳐서 살았고

 한때는 운동에 미쳐서 살기도 했지요.

 그러다 부처님 법을 만나서 큰 깨우침을 얻고는 세속을 접었답니다."

 

 그녀의 토굴에 들어가니 그 안은 밝고 맑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루종일 나무아미타불 염불테잎을 틀어놓고 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정진을 하고,

 저녁에 일이 끝난 후엔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고 토굴에서 염불정진을 한다고 했다.

 티비도 컴퓨터도 없었다.

 오로지 책과 염불테잎만 있었다.

 

 "염불하는게 그렇게도 좋수?"

 

 "그럼요...넘 행복해요. 언니 우리 나중에 꼭 극락세계에서 만나요.

 그곳에서 같이 수행하여 성불한 다음에 다시 중생제도하러 지구에 옵시다."

 

 "난 자신없는데? 그대는 자신있수?"

 

 "예...전 결정코 극락왕생할 겁니다.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을 절대적으로 믿거든요."

 

 오...참 그 지극한 신심이 부러웠다.

 내게는 없는...또는 부족한 면을 그녀는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온순하고 순종적인 면도 있었다.

 절식구들이 모두 마땅치 않아 하는 그녀의 단점.

 즉, 자신이 이 절 일을 모두 하는 것같이 상을 내는 점,

 자신이 없으면 이 절이 안 돌아갈 것 처럼 생각하는 점.

 그 점을 내가 조심스럽게 지적했더니 의외로 잘 받아들였다.

 강하게 부정하거나 반기를 들을까 좀 염려했었는데.

 역시 배운여자인지라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사람에겐 무장해제였다.

 

 "모든 사람들이 절 그렇게 생각했다면 제가 한참 공부가 안되었다는 증거네요.

 제가 고쳐야지요...이 도량이 너무 좋아서 3년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안에 짤리고 싶지는 않아요 ㅎㅎ.

 제가 맞추고 살아야지요. 고치도록 노력할게요."

 

 요즘 너무 부드러워진 이보살,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어쩜 자신의 세계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 기쁨때문인지도???

 

 요즘은 대화가 통하는 이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나의 기쁨이기도 하다.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기쁨을 어디에 비교하랴?

 

 "언니...하산하면 서울 삼청동에 있는 ㅇㅇㅇ 요리집에 가서 제 이름 대고 식사하세요.

 언니가 먹고 싶은 것 어떤 것이든지요...제가 돈은 지불할게요."

 

 호우... 그 비싼 요리집에???

 은근하게 자신의 재력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사회의 유명인사들과의 인맥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명가의 여인이니...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전혀 세련되지도 않은

 흰머리가 꽤 많은데도 염색도 하지 않고 질끈 동여맨 이여자의 모습을 보고

 누가 명가의 여인이며 명문대 출신의 여자로 보겠는가.

 그것도 큰 사업을 해서 막대한 부를 이룬 여자로???

 하지만 이여자의 강한 기질로 봐서는 그런 사업을 했었음직해 보였다.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도 좋으냐니 상관없다 했다.

 이여자의 수행기는 또 다른 기회에 써야겠다.

 

 

 

 


 

 

출처 : 혜 향 (慧香)
글쓴이 : 수한 (水漢)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