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413호(경주 독락당)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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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의 '경주남산 완전정복' 행사시에 옥산서원과 독락당은 여러 번 방문하였으며, 독락당은 항상 외부에서만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경주 고택 체험 프로그램으로 독락당에서 숙박이 가능하여 제9차 행사시에는 이 곳에서 1박을 하였습니다. 사전에 부탁을 드리면 숙박 다음 날, 아침에 종손분으로부터 독락당 내부를 안내 받을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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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 입구의 비각(회재 선생의 아들인 이전인 기적비) |
▲ 독락당 입구 전경 |
독락당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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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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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 입구인 삼문을 들어서며 바라 본 모습 |
▲ 입구 우측에 위치한 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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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홀로의 경주남산 행사시 독락당 별채(큰방/작은방) 숙박 |
▲ 별채를 지나면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에 긴 행랑채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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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이 경청재이며, 큰방이 1실 있습니다. 나홀로의 경주남산 행사시 여성분들이 숙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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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청재를 지나면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으며, 우측에 역락재(작은 방/숙박 가능)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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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 전경. 이 곳에 종손분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
▲ 안채 입구 방향 모습 |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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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은 사랑채의 이름으로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합니다. |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 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들어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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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에서 바라 본 독락당. 계정 및 박물관은 우측으로... |
▲ 독락당 마당/전면 건물은 안채 우측 건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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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 건물 앞에는 옥산정사(玉山精舍) 현판이, 안쪽에는 독락당(獨樂堂)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그러나 원래는 맨 오른쪽 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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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 현판은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글씨이며, 옥산정사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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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 대청 좌우로 편액들이 가득히 걸려 있습니다. |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라 할 수 있다. 독락당 뒤쪽의 시내에 있는 정자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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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정으로 가면서 바라 본 독락당 뒷편 모습 |
▲ 독락당 뒷편의 약쑥밭 |
양진채(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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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차례 방문했어도 외부에서만 바라 보았었는데, 이번에는 내부에서 바라 본 양진채(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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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은 박물관이, 우측에는 계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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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독락당 전체 보수를 많이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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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자형의 계정 건물 안쪽은 퇴계 선생이 썼다는 양진암(養眞庵) 현판이, 냇가 쪽은 석봉이 썼다는 계정(溪亭) 현판이 걸려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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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정에서 바라 본 밖의 모습. 양진채에서 숙박이 가능하며, 계정까지 사용할 수 있어서 항상 예약 최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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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정 좌우에서 바라 본 외부 전경(2012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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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냇가에서 바라 본 독락당 외부 전경. 독락당(좌측 사진)과 계정(우측 사진) 모습입니다. 2008년 1월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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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9월 전경. 옥천에서 바라본 계정. 2008년 1월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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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에서 바라 본 독락당의 정자인 계정(溪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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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정 좌측/안채 뒷편에 위치한 건물은 회재유물관 신축 이전에 유물 수장고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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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으로 회재유물관(박물관)을 들어 갑니다. |
▲ 회재유물관 입구 우측 건물 |
회재유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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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에 건립된 회재유물관 모습 |
▲ 회재유물관 정면/안채 뒷편에 위치한 조각자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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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면에 위치한 향나무(회재 아들이 1534년 심었다고...) |
▲ 종손님의 안내로 회재유물관 내부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
회재유물관 내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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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이 전시된 내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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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 숙박자 중에서 원하면 오전 9시부터 50여분간 설명을 해 주신다고 합니다. 나홀로는 1시간 30분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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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을 제외하고 개인 소장으로는 이 곳에 보물 가짓수가 제일 많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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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재유물관 내부 유물 전시 모습 |
이언적 수고본 일괄(보물 5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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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장구보유(보물 586-2호/사진 좌측), 중용구경연의(보물 586-3호/사진 우측) |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이며 정치가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명종 2년(1547)에서 명종 8년(1553) 사이에 직접 쓴 저술이다. 1547년 조작된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제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책을 썼으나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세우는데 선구적 인물로,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원이다. 지정된 유물들은『속대학혹문』1책,『대학장구보유』1책,『봉선잡의』1책,『중용구경연의』9책,『진수팔규』1책 등 모두 13책이다. 특히『중용구경연의』는 정조가 친필로 쓴 ‘제선정회재속대학혹문권수’를 붙이고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높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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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수팔규(보물 586-4호/사진 좌측), 봉선잡의(보물 586-5호/사진 우측) |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보물 52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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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동명적(보물 526-1호) |
이 책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신공제(1469∼1536) 선생이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글씨가 돌에 새겨 있는 것을 탁본하여 상하 2책으로 묶은 것이다. 상권에는 조선시대 문종과 성종의 어필을 앞에 따로 놓고 다음에 신라시대 최치원, 김생, 영업의 3인과 고려시대 탄연, 이암, 신덕린 등의 3인을 합한 6인의 글씨를 모아 놓았다.
하권에는 이강, 승려 혜근, 성석린, 박초, 권근, 이첨, 정도전, 정총, 민자복, 신색 등 12인의 글씨가 실려 있다. 이 책은 탁본이라 하더라도 고대의 서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비문에 나타나지 않은 필적을 많이 수집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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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조오잠, 사산오대(보물 526-2호) - 벽에 걸려있는 유물 |
‘원조오잠’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27세 때 지은 「외천잠(畏天箴)」, 「양심잠(養心箴)」, 「경신잠(敬身箴)」, 「개과잠(改過箴)」, 「독지잠(篤志箴)」을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평소 잊지 못하여 오던 중 이언적의 아들 이전인(李全仁, 호(號)는 잠계(潛溪), 1516~1568)의 요청에 의하여 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언적은 1530년 이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좌천되자 관직을 그만 두고 귀향한 뒤, 이듬해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獨樂堂) 등의 옥산정사를 짓고 주위의 승경(勝景)을 명명하였다(소위 ‘사산오대’). 이들 글씨는 그중 자옥산(紫玉山)ㆍ용추(龍湫)ㆍ귀영대(歸詠臺)ㆍ징심대(澄心臺)ㆍ세심대(洗心臺)ㆍ탁영대(濯纓臺)ㆍ관어대(觀魚臺) 7곳의 명칭을 대자(大字)로 써서 축장(軸粧)한 것들로, 회재의 아들 이전인(李全仁)이 ‘원조오잠’의 글씨를 받을 때 이 대자 편액서도 함께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보물 5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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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덕계유 사마방목(보물 524-1호) |
이 방목은 조선 중종 8년(1513)에 실시한 사마시의 합격자 명단이다. 사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로 구분되는데, 생원시 합격자 가운데 조선 전기의 대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것은 바로 그가 지니고 있던 것으로 책장머리에 ‘여성이씨’, ‘회재복고’의 두 도장이 찍혀있다. 구성을 보면 합격한 사람들의 자와 본관, 주소, 부의 이름을 적어놓았으며, 을해자 활자본이다. 이 사마방목은 조선시대 과거제도 및 주요 인물들의 전기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며, 또한 예종 원년(1469)에 실시한 사마방목을 성종 7년(1476)에 갑인자로 찍어낸 것에 이어 2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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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보물 524-2호) |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1539년), 여어편류(儷語編類, 1542년),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1543), 황화집(皇華集, 1546), 구인록(求仁錄, 1550), 잠명(箴銘, 1547년경), 관서추정일기(關西趨庭日記, 1549-1553),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 1571), 퇴계선생수찰(退溪先生手札), 서애서독(西厓書牘), 한강서독(寒岡書牘), 제현서독(諸賢書牘), 수간(手簡) 등의 전적을 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 일괄 로 보물 524-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여주이씨 옥산문중 고문서(보물 14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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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소문(보물 1473-30호/사진 좌측, 보물 1473-31호/사진 우측) |
여주이씨 옥산문중에는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을 비롯하여 이 가문의 세대별 고문서가 잘 보전되어 있다. 이들 문서는 16~20세기 초까지 그 어느 문중보다 수량이 많고 종류가 다양하며 내용도 풍부하여 귀중한 자료이다. 지정대상은 시기를 선조 이전의 문서로 한정하여 교서(敎書) 1점, 유지(有旨) 7점, 교지·첩(敎旨·牒) 20점, 급첩(給牒) 1점, 상소초(上疏草) 2점, 첩(帖) 1점, 입안(立案) 12점, 소지류(所志類) 7점, 분재기류(分財記類) 14점, 노비문기(奴婢文記) 18점, 토지문기(土地文記) 14점, 간찰(簡札) 1점 등 총 98건이다. 내용은 이언적의 관력(官歷)과 관련된 부분으로 특히 이언적의 학문적 위상을 고려하여 작성된 有旨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의 좌우부빈객을 역임할 당시 맺었던 친분으로 보낸 답장의 글인 인종수찰(仁宗手札)이 있다. 특히 납속(納贖)을 통해 신분적인 제약에서 벗어나는 허통급첩(許通給牒)은 신분사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높으며, 노비문기 가운데 입안 절차를 밟아 입안을 받은 일괄문서가 16건이나 된다. 이들 옥산문중 고문서는 조선시대 신분사 및 사회·경제사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족도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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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적이 작성한 조부 처가 족도세계와 어머니 손씨 족도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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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적이 작성한 본가 족도세계와 양주 석씨 족도세계 |
독락당의 중국 주엽나무(천연기념물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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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락당의 중국 주엽나무 전경 |
중국 주엽나무는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이다. 조각자나무 또는 쥐엄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독락당의 중국 주엽나무는 나이가 약 47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둘레 4.90m(62cm높이)이다. 이 나무는 옥산서원의 독락당 울타리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주변은 감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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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밑둥 중앙 부분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우레탄으로 치료를 한 것 같습니다. |
나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우나 밑부분과 2개의 가지만 살아있고 대부분 썩어 나무의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이 나무는 조선 중종 27년(1532) 회재 이언적이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독락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할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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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주엽나무(문화재청 사진) |
삼국사기(보물 5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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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문화재청 사진) |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경 김부식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정치적인 흥망과 변천을 중심으로 편찬한 역사서이다. 인종의 명에 따라 김부식의 주도하에 11명이 참여하여 편찬되었다. 이 책이 만들어진 12세기 전반의 상황은 고려 건국 후 200여년이 흘렀고 문벌귀족문화가 절정기에 이르렀으며, 유교와 불교가 서로 어우러져 고려 왕조가 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기 역사의 확인 작업으로 전 시대의 역사정리가 필요하였다. 조정에서는 거란을 물리친 후 자신감에 차 있었고 여진의 위협에 대한 강렬한 국가의식이 고조되어 있었다. 또 한편 문벌귀족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했는데, 분열과 갈등을 국가가 망할 수 있는 원인으로 강조함으로써 현실비판의 뜻과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 알리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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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에서 바라 본 독락당 원경 |
경주 독락당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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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의 A 부분 우측의 기와집이 독락당입니다.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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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 상단의 A 부분이 독락당이며, 하단의 시작 부분이 옥산서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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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 상단의 A 부분이 독락당입니다. 경주시/포항시/영천시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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