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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 옹비와 후궁 / 국립 고궁박물관

강나루터 2015. 11. 7. 08:20

 

경복궁 내의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오백년 역사를 지켜온 조선의 왕비와 후궁’
조선 왕실이 장구한 역사를 이어 오는 데 한 축을 담당했던
왕실 여성들의 역할과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



 
후궁들이 사용한 인장



惠慶宮 洪氏가 짓고 쓴 한시


인목왕후가 쓴 한시



순종, 순명효황후 혼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




순종비 순정효황후가 입었던 황색 원삼



영친왕비가 입었던 홍색 원삼


의친왕비가 입었던 녹색 원삼





영빈 이씨 묘 출토 백자 부장품




영친왕비 옷과 당혜唐鞋




영친왕비의 화장도구 보관함





왕세손의 책봉 절차를 기록한 책




원빈 홍씨의 묘 출토 화장용기




육상궁毓祥宮 명문 은제 주전자 및 술동이 (소. 코끼리 모양) 
육상궁에서‘육상毓祥’이란‘상서로움을 기른다’는 뜻.
육상궁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





순정효황후의 친잠親蠶 의례 기념 사진




순정효황후 방한용 모자




수빈 박씨를 '수비綏妃'로 봉하는 인장




왕실 혼례 때 동뢰연同牢宴에 사용한 깔개




왕실 혼례 때 동뢰연同牢宴에 사용한 동자상




경종비 선의왕후 세자빈 책봉 죽책, 옥인, 교명




간택된 왕비나 세자빈의 별궁 행렬 그림


인터넷에서 내용을 보충하면....
.   .
국왕의 정식 부인이 아닌 까닭에 종묘에 신주를 모실 수 없었던 후궁들 가운데
영조의 어머니 숙빈淑嬪 최씨(1670~1718년)처럼 그 아들이 즉위 또는
추존追尊을 통해 왕이 된 경우에는 별도의 사당을 세워 종묘와 같이
영구적으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기품을 더하는 의복과 장신구
  왕실 여성의 복식은 아름다움뿐 아니라 품위와 권위를 드러내고,
왕실의 엄격한 법도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평상시 궁중에서 왕실 여성은 소례복小禮服인 당의唐衣와 스란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머리의 형태를 고정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꽂는 여러 가지 형태의 비녀,
저고리 고름 또는 허리끈에 차는 노리개와 주머니 등으로 아름다움과 기품을 더하였다.
 



왕실 여성의 여가 활동과 불교 신앙생활
  왕실 여성은 독서와 자수 등으로 여가를 보내는 가운데 궁궐 밖에 있는
친인척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신앙 생활도 왕실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는데,
특히 불교는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정신적 위안처였다.

 

왕비와 후궁의 경제 생활
  왕비와 후궁은 공식적인 진상進上과 공상供上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는 한편
별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왕실의 사유재산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내수사內需司는 왕비와 대비의 주된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으며,
용동궁龍洞宮, 어의동궁於義洞宮 등의 왕실 궁방을 통해서도 재산을 관리하였다.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들
  왕실 여성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 수도 있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왕위 계승 과정에서 빚어진 권력 투쟁에 휘말려 남편과 부모를 잃기도 하고
자신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거나 사사되기도 했다.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 김씨(1584~1632)와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1667~1701),
그리고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1735~1815)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파란만장하고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왕실 여성들이다.
이들의 비극적인 삶은 각각
『계축일기』, 『인현왕후전』, 『한중록』등 대표적인 궁중문학 작품들에 투영되어 있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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