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Mongol)과 우리문화 ♣
몽골국(몽골어: Монгол Улс)은 동아시아(또는 중앙아시아)의 내륙 국가이지요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울란바토르'이고, 정치 체제는 의회 공화국입니다
1,564,116㎢의 넓은 영토를 가진 몽골은 카자흐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내륙국이나
인구는 약 300만명으로 매우 적은 나라이지요
13세기 원 태조인 칭기즈칸이 대영 제국 다음으로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던 몽골 제국을
건국했으며 동서양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
그리고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몽골 제국의 제5대 칸인 쿠빌라이 칸이 국호를 원나라로 개칭하고
남송을 정벌하여 중국 전역을 지배했어요
그리고 칭기즈칸 때부터 확장된 몽골 제국의 최대 영토를 이룩해냈지요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몰락해 몽골 초원지대로 물러난 형태인 북원이 1688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복속하여 외몽골로 불렸지요
1911년 제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1921년 제2차 혁명을 일으켜 현재의 형태로 독립한 나라이지요
현재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접하여 있어요
몽골(Mongol)은 원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이였으나
징기스칸이 지닌 특별한 카리스마(Charisma)로 인해
오늘날엔 전체 몽골인과 몽골어를 지칭하는 표현이 되었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卑下)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민족간의 갈등과 경쟁은 결국 상대 민족을 비하 시키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으로 볼수 있어요
따라서 아직도 한자로는 몽고(蒙古)라고 표기 할수밖에 없긴 하지만
엄연히 몽골리아의 공식 국가명칭이 MONGOLIA 이고 민족이나 민족어를 지칭할 때 MONGOL 이라고
표기함으로 우리는 몽골국 또는 몽골인, 몽골어 등으로 지칭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요
13C초 징기스칸에 의해 이룩된 몽고제국은 지금까지 성립된 제국들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했지요
당시 몽고제국은 러시아와 유럽을 정복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그들의 문화와 그곳에 분포하고 있는 몽골민족에게 영향을 주고 있어요
특히 우리민족은 몽골인들과 생김새와 민속, 언어, 종교 등 한문화의 기저에
공통된 문화의 기반을 가지고 있지요
몽골의 종교를 보면 우리 고유의 샤머니즘과 비슷하지요
칭기즈칸 시절 무당이 전쟁에 관여하며 막강한 세력을 발휘했던 몽골의 샤머니즘 이었지요
16세기까지 몽골의 가장 중요한 대표적 종교 였어요
또 '나담' 이라는 놀이가 있지요
나담은 원래 ‘놀다’ 라는 뜻의 몽골어에서 유래하였고 씨름, 활쏘기, 말타기를 겨루는 마을 놀이로
징기스칸 이전부터 몽골의 여름 축제였는데 매년 7월 11, 12, 13일에 걸쳐 국가적인 축제로
고구려 시조 주몽 설화에 나오는 활쏘기 말타기를 하고 있어요
말타기 활쏘기 씨름으로 자웅을 겨루는 나담은 우리의 민속놀이와 비슷하며
여기서 우승한 사람은 영웅으로 대우 받고 있지요
또 '차강사르'라는 민속명절이 있는데
하얀 뜻의 ‘차강’과 달을 뜻하는 ‘사르’를 합한 하얀달이란 뜻의 차강사르는 몽골의 구정이지요
몽골은 농경 사회가 아니라 음력의 개념이 없어요
매년 라마불교의 종정이 명절을 정하는데 집안 어른들께 인사 가고 손님을 맞이하여 회포를 푸는 것이
몽골 가정의 '차강사르' 풍습이지요
또 초원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몽골유목민에게 음악은
그들에게 있어서 낭만과 생활을 표현하며 멀리 나가 있는 가축을 부르는데에도 사용되지요
말머리 형상이 달린 전통 악기 ‘마두금’
뱃속 깊은 곳의 소리를 끝어내는 창법 ‘흐므’
마두금이 있는 곳에 노래와 사랑이 있다는 그들이지요
초원위에 모여 음악을 즐기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요
몽골 의복으로는 del (델)이라는 것이 있는데
길고 느슨한 소매가 달린 하나로 마름질 된 가운형태의 겉옷이지요
높은 깃을 가지고 있으며 앞 부분이 넓게 포개어 있지요
델은 의복의 역할 뿐만아니라 코트, 담요 그리고 개방된 초원에서 볼일을 볼때
자신을 가리는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지요
그럼 여기서 몽골이 우리나라 고려에 끼친 영향을 찾아보면
몽골의 원나라가 통치하던 시기 전쟁의 영향과 전후 고려가 원나라에 부속되었던 관계의 확립은
양국 간의 인적 교류가 전대에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교류하게끔 만들었지요
고려 충열왕때 원나라의 침략을 받아 약 30년 동안 항전을 벌인 끝에 결국 강화가 성립되고
항전을 주도하던 최씨 무신정권은 붕괴되었지요
이와 함께 왕정이 회복되었지만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었어요
고려의 국왕은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나라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제후국에 걸맞은 속국으로 격하되었지요
또 원나라는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빼앗았으며
자비령 이북의 땅도 차지하여 서경에 동녕부를 설치하였지요
또한 제주도에는 삼별초를 제거한뒤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목마장을 경영하였어요
정치적으로 보았을때 우리나라는 몽고의 부마국이 되었지요
이때 고려에는 몽고풍이 유행하였으며 원나라의 복식(의복,모자,신발)과 음식(만두,떡)이 들어왔어요
몽고풍은 고려에서 유행한 몽고의 풍습으로 변발(辮髮)과 호복(胡服) 장사치 또는 벼슬아치 등의
치로 끝나는 말들이 원나라로 부터 들어 왔지요 (변발은 머리, 호복은 의복)
또 이때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던 '마마' '무수리'수라 등도 모두 몽골에서 유래된 말이지요
의복의 변화는 일시적인 것도 있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풍습도 있어요
당시 여자들이 쓰던 몽수(개두)를 버리고 고고(몽골여인들이 쓰던 긴 모자) 라는 것을 사용했지요
벼슬아치들은 관복대신 호복(몽골인들의 전통복)을 입었어요
특히 결혼식때 얼굴에 찍는 연지,곤지는 몽골의 영향을 받은것인데 아직까지 남아 있지요
머리에 쓰는 족두리 또한 몽골인들이 쓰는 물건이었어요
사람이 죽으면 쓰는 관도 이때 들어 왔으며 앞에만 있는 머리 모양도 이때 들어 왔지요
또한 남성들의 의복인 백포는 소매가 헐렁하고 길이가 짧은 옷인데
몽골의 영향으로 소매가 약간 작아지고 길이가 길어졌지요
이 옷은 조선시대에 와서 두루마기가 되었지요
또 식습관도 많이 달라 졌지요
몽골의 침략 이전의 고려에서는 거의 육식을 하지 않았지요
완전히 육식을 안한것은 아니지만 불교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반 서민들은 물론 귀족이나 왕들도
거의 대부분 육식보다는 채식이나 어류를 섭취했지요
그러나 몽골은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수 없고 그러므로 육식이 주 식생활이었지요
그래서 몽골은 지배기간동안 우리나라에 많은 육류음식을 퍼뜨렸어요
그중 하나가 지금까지 전해오는 바로 "설렁탕"이지요
또 지금 우리가 먹은 "만두와 떡"도 몽골인들이 가져왔다고 하지요
또다른 변화는 소주이지요
소주는 원나라군사가 일본을 정벌하려고 장기간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그들의 술제조 방식대로 만들어 먹은것이 소주의 기원이 되었다 하지요
그래서 그들이 머물렀던 안동도호부와 개성도호부가 있어 지금도 안동소주와 개성소주가 유명하다 하네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소주가 너무나 많은 곡식이 들어가므로 그당시에는 금지되었다고 하네요
그들의 소주 제조방식은 증류소주 이지만 지금의 흔한 소주는 희석식 소주 이지요
그래서 안동소주와 참이슬 소주는 다른거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산적:조동렬(일송) *-
출처 : 아코디언 음악 사랑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