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세상

[스크랩] 초서간찰읽기 13. 해가 장차 끝나려 하니

강나루터 2016. 10. 1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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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서간찰읽기 13. 해가 장차 끝나려 하니

 

 

     권돈인(權敦仁)이 세의(歲儀)를 받고 보낸 서간(書簡)

 

 

 


 

<전문 해석>

 

 皮封 : 慈山 政座 / 謹謝上

① 歲行將盡 遠想益切 卽

  伏承

惠書 謹審殘沍 

視政起居萬重 慰良深 

  年底邑務 無別關惱否

②敦仁 以此癃廢 又冒重

  任 僨敗之懼 只自靡措

  耳 諸種

奇(寄)惠 多荷記存 不勝珍

  謝 

③ 餘姑不備 謝上 
④ 丁未臘月十九日  權敦仁 拜 

피봉(皮封) : 수신 : 慈山 政座 발신 : 謹謝上

① 해가 장차 끝나려 하니 멀리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합니다. 보내주신 서찰(書札)을 받고서 남은 섣달 추위에 정사(政事)를 보시는 생활이 여러 가지로 보중(保重)하심을 알았으니, 참으로 깊은 위안이 됩니다. 연말에 고을의 업무는 달리 고민거리가 없으신지요? 


② 저는 이렇게 나른하여 몹쓸 몸으로 또 중임을 무릅썼으니, 일을 망칠까 하는 두려움에 그저 스스로 몸 둘 데 없을 뿐입니다. 보내주신 여러 물건들은, 저를 기억하고 생각해주시는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 깊이 감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③ 나머지는 잠시 예를 갖추지 못하고, 답장 올립니다. 
④ 정미년(1847) 납월(臘月) 19일에 권돈인(權敦仁) 드림 



<풀이>

 

   1847년(헌종 13) 12월 19일에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자산 부사(慈山府使)로 있으면서 연말을 맞아 선물을 보낸 데 대해, 권돈인(權敦仁)이 고마움을 표시한 내용을 담은 서간(書簡)이다. 발신자는 당시 56세였고, 수신자는 당시 65세로 영의정(領議政)에 제수되었다. 

 

   한해가 끝나려는 즈음에 멀리서 그리움이 절실한데 서찰을 받고 얼마 남지 않은 추위에 정사(政事)보시는 형편을 물었다. 자신은 병이 심한데 또 중임을 맡아 넘어질까 두렵지만 조치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여러 가지 보내준 물건은 감사히 잘 받았다고 하였다. 

 

   응와(凝窩)는 1846년, 선생의 나이 55세 되던 해 7월에 자산 부사(慈山府使)를 배명(拜命)하고 부임하는데, 조카 진상(震相)이 따라갔다. 가는 길에 황주(黃州)의 월파루(月波樓)에 오르고, 평양(平壤)에 이르러 연광정(練光亭)부벽루(浮碧樓)를 두루 돌아보고, 기자묘(箕子廟)를 배알하고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였던 유지(遺址)를 찾아보고, 8월에 자산부(慈山府)에 도착하였다. 

 


<용어 및 지명>

 

잔호(殘沍) : 남은 섣달의 추위. 

 

시정(視政) : 정무(政務)를 살펴 봄. 한유(韓愈)〈쟁신론(爭臣論)〉“정치의 득실을 보기를 마치 월나라 사람이 진나라 사람의 살찌고 파리함을 보듯이 하여 조금도 마음에 기쁨과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視政之得失 若越人視秦人之肥瘠 忽焉不加喜戚於其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자산(慈山) : 평안도에 속한 지명. 

 

 

 


<참고인물>

 

 

권돈인(權敦仁, 1783~1859)

 

   선비화가로 자는 경의(景羲), 호는 이재(彛齋), 과지초당로인 (瓜地草堂老人)이라 하였다. 벼슬은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1845년에는 영의정에 올랐으며, 서예에 능하여 ‘노건(老健)한 바는 자하(紫霞)보다 낫다’ 는 평까지 받았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와 가까이 지냈고, 그림에 대한 안목이 당대에 널리 인정받았다. 

 

 

   《세한도(歲寒圖)》《논어(論語)》‘날이 차가워진 후에야 비로소 소나무 잣나무가 마지막으로 잎이 지는 것임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어떤 역경에 처해도 변함없는 선비의 지조에 비유된다. 그러나 권돈인의 세한도는 화폭 안에 밝힌 대로《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를 그린 것이다. 따라서 송백(松柏)이 아닌 송죽매(松竹梅)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소재는 결국 선비의 지조를 토로하는 사의(寫意)를 중시한 것으로 그 간략한 구성에서는 산수화의 의미보다 오히려 서법(書法)에서 보는 필의(筆意)와 개성을 먼저 찾게 된다. 

 

 

   김정희《세한도》갈필(渴筆)의 차갑고 싸늘한 멋이 풍기는 반면에, 권돈인의 경우는 윤묵(潤墨)의 점들이 강한 악센트를 주고 있다. 그것은 김정희와 다른 권돈인의 온후한 성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재 권돈인 필 세한도


 
추사 김정희, <세한도>, 1844(58세)
종이에 수묵, 23.3 x108.3㎝, 개인소장

 

 

 

 

 

  ①해가 장차 끝나려 하니 멀리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합니다.   

  보내주신 서찰(書札)을 받고서 남은 섣달 추위에 정사(政事)를 보시는 생활이

여러 가지로 보중(保重)하심을 알았으니, 참으로 깊은 위안이 됩니다.

연말에 고을의 업무는 달리 고민거리가 없으신지요?  

 


 

 

 

 

② 
 저는 이렇게 나른하여 몹쓸 몸으로 또 중임을 무릅썼으니,

일을 망칠까 하는 두려움에 그저 스스로 몸 둘 데 없을 뿐입니다.

보내주신 여러 물건들은, 저를 기억하고 생각해주시는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

깊이 감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느른할 륭,느른할 융 단어장 추가
 
1. 느른하다(맥이 풀리거나 고단하여 몹시 기운이 없다) 2. 위독하다(--) 3. 늙다 

 

 4. 곱사등이(등이 굽고 큰 혹 같은 것이 불쑥 나온 사람)

 

 

쓰러질 미,갈 마 단어장 추가
1. 쓰러지다 2. 쓰러뜨리다 3. 멸하다(--) 4. 말다, 금지하다(--) 5. 호사하다 6. 다하다 7. 물가 a. 갈다 (마)

 

 

 

 

③ 나머지는 잠시 예를 갖추지 못하고, 답장 올립니다.

 

 

 

 

 

 


④ 정미년(1847) 납월(臘月) 19일에 권돈인(權敦仁) 드림

 


 

 

 

<난해한 초서>

 

 

  關-5행  

왕탁(王鐸)   황정견(黃庭堅)  모택동(毛澤東)


 措-7행 

초서운회(草書韻會)     왕헌지(王獻之)     손과정(孫過庭) 

 

 

 

글/ 무불거사 관리자
업데이트
2015.12.18 05:00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

 

 

초가와 함께 소나무 및 잣나무 대여섯 그루를 갈필로 소략히 그린 겨울 풍경이다.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 있음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는

공자의 명언을 주제로 삼았다.  


추사 김정희, <세한도>, 1844(58세)
종이에 수묵, 23.3 x108.3㎝, 개인소장


<세한도>의 그림 부분


위창 오세창이 ‘국보’라고 까지 극찬한 추사 생애 최고 걸작, 세한도는 그의 생 후반,

뼛속까지 시렸던 8년의 제주 유배생활 중에 탄생했다.

소나무는 세상과 격리된 고통 속에서도 선비의 기상을 잃지 않으려는 추사의 자존감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한도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추사의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 李尙迪, 1804∼1865)이다.

이상적은 시문에 뛰어났던 통역관이다.

그림 속 푸른 소나무는 염량세태가 판치는 세상에 살면서도

사제(師弟)의 정을 잃지 않은 이상적의 의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에서 귀양살이하면서 자신에게 책을 보내준 이상적을 위해 그려준 것이다.

1844년 추사의 나이 만 58세에 제주에 유배 온 지 5년이 되었을 때 그렸다. 

한학에 밝은 이들이라면 세한도 왼편에 빼곡히 적힌 제발(題跋; 서화 등의 앞뒤에 그 유래나 찬사, 비평 등을 적은 것)을

눈여겨 봤을 수도 있겠다.

세한도 그림 부분의 절반 길이나 될 정도로 꽤 긴, 추사가 쓴 제발의 내용은 이렇다.  

 

 

`잘살 때나 궁할 때나 변함없는 그대`
 
“일반 세상 사람들은 권력이 있을 때는 가까이하다가

권세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른 척하는 것이 보통인데,

내가 지금 절해고도에서 귀양살이하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우선(藕船; 이상적의 호)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나를 생각하며

이런 귀중한 것을 만리타국에서 사서 부치니, 그 마음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가?

 

공자는 ‘추운 철이 된 뒤에야 송백(松栢)이 푸르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였으니 잘 살 때나 궁할 때나 변함없는 그대의 정의야말로

바로 ‘세한송백(歲寒 松柏)’의 절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상적은 어떻게 스승을 감읍시킨 것일까.

역관 이상적은 추사가 제주로 유배가고 연경에서 구한 귀한 책 등을 보냈다.

그 정성에 감복한 추사가 그림으로 보답을 한 것이었다. 
 
추사에게 책은 남다른 것이다.

추사는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다.

문인화에는 서권기(書卷氣; 책에서 나오는 기운), 문자향(文字香; 글자에서 나오는 향기)이 흘러야 한다는 것에 다름이 없다.

치열한 문인 정신의 표현이자, 사무치는 고독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 독서였던 것이다.  
 
추사가 세한도를 그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귀양살이 4년째인 1843년 이상적이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과 운경(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를 북경에서 구해 제주로 보내준 것이었다.
 
계복과 운경은 모두 추사가 청년 시절 사절단의 일행으로 중국을 갔을 때

그 명성을 듣고 학문적으로 존경했던 중국의 문인들이다.

이듬해(1844년) 이상적은 또 하우경(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徑世文編)’이라는 책을 보내주었다.

이 책은 자그마치 총 120권, 79책에 달하는 것으로, 양으로도 방대했다.
 
그 고마움을 추사는 제발 앞부분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것도 아니고, 천만리 먼 곳으로부터 사와야 하며,

그것도 여러 해가 걸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쉽게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뿌리 우 단어장 추가
1. 연뿌리(--), 연근() 2. 서로 맞다

 

 

 

blog.daum.net/seahs99/13758443   

다음 블로그 <박카스가 엮어가는 교실 안팍의 이야기>에서 발췌 ......

 

출처 : 그날에 솟아 오른 해
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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