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스크랩] 제5 공야장(公冶長)편 3장 : 賜也瑚璉

강나루터 2016. 11. 14. 05:13

子貢問曰 賜也 何如 子曰 女器也 曰何器也 瑚璉也

 

자공이 묻자와 가로대 사는 어떠합니까? 공자 가라사대 너는 그릇이니라 하시니,

(자공)가로대 어떤 그릇입니까? (공자) 가라사대 호련이니라.

 

 

<家苑 註 1>

앞서 공자는 군자에 걸맞는 인물로서 공야장, 남용, 자천을 거론하였다. 언어와 외교술과 이재에 능한 자공은 공자가 여기에서 제시하는 군자의 기준에 맞는 제자는 아닌 듯하다. 앞서 위정편 12장에서 공자는 君子不器라고 하고 자공에 대해서 그릇이라고 규정한데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공자가 자공에 대해 그릇 가운데에서 종묘 제사에 쓰이는 보기(寶器)의 하나인 瑚璉이라고 한 것은 자공을 높이 평가한 말이다. 호련은 없어서는 아니 될 귀중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논어의 편집체계상 자공 얘기가 앞 순서에 많이 나오는 것은 공야장편이 자공의 제자에 의해 기록된 것 같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家苑 註 2> 자공(子貢, 기원전 520~기원전 456)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 는 자공(子貢)이며, ()나라 출신이다. 공자보다 31세 적다. 논어에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항상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려고 노력하였고, 공자가 돌아가신 뒤 제자들이 삼년상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 자공은 공자의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삼년간 시묘살이를 더했을 정도로 공자에 대한 존경이 지극하였다.

어렸을 때는 가난하였지만 재물을 모으는 데에 재주가 뛰어나 부()를 많이 축적하여 공자가 제자들과 轍環天下하는 경비를 대부분 다 부담하였다. 가장 많은 시간을 공자와 더불어 지냈기에 공자의 인물됨을 溫良恭儉讓(학이편 제10)으로 표현할 줄 알았다.

자공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출세하였고, 아첨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사교술에 능했다. 또한 말이 유창하면서도 예의범절을 잘 갖추어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에 공자는 자공을 종묘제사에서 귀하게 쓰이는 瑚璉(호련)에 비유하였다(공야장편 제3).

 

사람들이 자공을 공자에 필적할 만하다고 칭찬하자, 자공은 궁궐의 담장에 비유하자면 자기의 담은 어깨 높이 정도라 안이 다 들여다 보이지만 공자의 담은 매우 높아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안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볼 수 없는데 들어간 자가 지극히 적다(譬之宮墻컨대 賜之墻也及肩이라 窺見室家之好이어니와 夫子之牆數仞이라 不得其門而入이면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이니 得其門者 或寡矣/ 자장편 제23)”고 하였다. 여기에서 공자의 인격과 학문의 지고함을 나타내는 萬仞宮墻이라는 말이 나왔다.

朱子

 

器者 有用之成材 夏曰 商曰이오 周曰簠簋이니 皆宗廟盛黍稷之器 而飾以玉하니 器之貴重而華美者也 子貢 見孔子以君子 許子賤이라 以己爲問한대 而孔子 告之以此하시니라 然則子貢 雖未至於不器其亦器之貴者歟인저

 

라는 것은 쓰임새가 있는 완성된 재목이라. 하나라에서는 ()라 이르고, 상나라에서는 ()이라 이르고, 주나라에서는 보궤(簠簋)라 이르니, 다 종묘에서 기장과 곡식을 담는 그릇이고 옥으로써 꾸몄으니, 그릇이 귀중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자공이 공자께서 자천을 군자로써 허여하심을 보고 자기로써 물으니 공자가 이로써 가르쳐 주셨느니라. 그렇다면 자공이 비록 (공자가 위정편에서 말한) 君子不器에는 이르지 못하나 그 또한 그릇으로써 귀하다고 칭찬하셨음이라!

 

제기 보. 바깥은 네모지고 물건을 담는 안은 둥근(外方內圓) 제기

제기 궤. 바깥은 둥글고 안은 네모진(外圓內方) 제기 담을 성

 

출처 : 논어 易解1

출처 : 家苑 이윤숙의 한자와 유학경전 강의(경연학당)
글쓴이 : 法故創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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