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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이 노니는 곳, 금선정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서 북쪽으로 소백산의 주봉 비로봉 가는 길로 읍을 막 벗어나 1.5Km 쯤에 있는 장생이마을 가운데로 금계(錦溪)의 깊은 여울목에 절벽이 드리워져 있고, 그 위에 우뚝 솟은 사각 정자가 있다. 바로 금선정이다. 금선정이라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이곳이 신선들이 노닐만한 절경이라 여겼을 것이다. 신선들이 노니는 곳이라면 다음 몇 가지를 연상할 수 있다. 우선 절벽이나 험난한 산속 동굴처럼 세속과 단절된 장소이다. 다음은 노송(老松)이다. 늙은 소나무에게는 세월의 여러 겹을 바싹 마른 등껍질에 새기고 기댈 곳 없어 보이는 허공인데도 편안하게 기대어 있는 의연함이 있다. 계곡이 더 깊어 보이는 것은 기실 양 옆으로 노송 숲이 울창하게 드리워진 까닭도 있다. 그래선지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정자에는 속된 기운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의연함이 있어 경외와 동경을 가질만한 풍격이 배어 있다. 여기에다가 이곳이 『정감록』에서 말한 몸을 보존할 수 있는 땅, 곧 십승지(十勝地)의 으뜸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풍기 금계촌 북쪽 소백산 아래에 있는 두 강 사이’를 말한다. 동일한 지역임에 틀림없는데 ‘금계’의 한자가 다르다. 황준량(黃俊良)의 호를 보아서는 ‘錦溪(금계 : 비단계곡)’인데, 『정감록』 등의 비기(秘記)에는 ‘金鷄(금계 : 황금 닭)’로 쓰고 있다. 서로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 금선정 역시 금양정사처럼 금계 황준량과 관계가 깊다. 소백산 자락에서 비롯한 금계의 비단결처럼 흐르는 물살과 군데군데서 깊어지는 여울, 그 물속에 검거나 희게 오랜 세월을 서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 양 옆에 간혹 드리워진 절벽, 사시사철 의연하게 서 있는 수백 년 묵은 노송 숲의 경계가 비단처럼 고상하고 아름답게 여겨 즐겨 찾았고, 마침내 이 계곡의 이름 금계를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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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의 물줄기가 한차례 깊어진 여울목 위에 널찍한 바위가 있어 황준량이 ‘금선대(錦仙臺)’라 이름 지었고, 훗날 1756년(영조 32) 군수로 부임한 송징계(宋徵啓)가 정자 아래 바위벽에 ‘금선대’ 세 글자를 커다랗게 새겨 두었다. 정자는 바로 그 위에 있다. 금계의 주인이 가고, 즐겨 찾던 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후에야 1781년(정조 5)에 군수 이한일(李漢一)이 부임해 있던 당시, 황준량의 후손이 정자를 세우고 금선정(錦仙亭)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1785년(정조 9) 이대영(李大永) 군수 때, 목사 조윤형(曹允亨)의 글씨로 금선정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현판(懸板)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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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정(錦仙亭) |
1785년(정조 9) 목사 조윤형(曹允亨)이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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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기 선비들이 즐겨찾던 금선계곡 |
소백산의 정기는 영봉인 비로봉과 연화봉에서 비롯되어 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와 풍기의 삼가동·욱금동(郁錦洞)·금계동에 이르게 되는데, 아름다운 골짜기가 바로 금선계곡(錦仙溪谷)으로 옛날에는 북천(北川)이라고도 불렀다. 이 물줄기는 토성, 즉 지금의 풍기 동부 5동 마을 앞에서 소백산 희방골·죽령·도솔봉에서 비롯되어 풍기 고을 남문 밖으로 흐르는 남천(南川), 즉 지금의 남원천(南院川)과 합쳐져 영주로 흐른다. 욱금동은 금계 황준량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대를 이어 살았던 마을이었으나, 1984년 저수지 금계호를 만들면서 수몰되어 풍기·봉현 등으로 옮겨간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금선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에는 아직도 황씨 문중 사람들이 살고 있고, 금양정사와 금선정도 이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 금양정사와 옛날 욱양서원(郁陽書院)이었던 곳에 남아 있는 욱양단소(郁陽壇所)에서 매년 3월 조상에게 제사를 올린다. 숙종 때 풍기 군수를 지낸 홍경렴(洪景濂)은 금선정 위의 산자락에 지어진 금양정사 중건 당시 기문을 지어 그 감회를 서술한 바 있는데, 여기에 황준량이 금계(錦溪)를 아호로 삼은 까닭에 대한 내용이 있다. 산수가 아름다운 풍기 고을에 반드시 영재(英才)가 있음은 산천의 정기를 받았기 때문이다. 금계 황준량은 이 고을 서부(西部)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자질이 출중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였고, 자라서 퇴계 이황 선생 문하에서 도학을 닦아 빛나는 문장, 높은 도덕으로 이황의 인정을 받았으며 후학들이 우러러 본받고자 했다. 고을 북쪽 욱금(郁錦) 계곡은 소백산의 첫 동학(洞壑)으로, 선생의 마을에서 가까워 선생은 시내이름으로 아호를 삼았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면서 경치 또한 빼어났으니 황준량이 금계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지방관을 역임하여 선정을 베풀면서도 이곳의 자연을 그리워하였으니 실로 천석고황(泉石膏肓)이라 할만하다. 금양정사가 황준량의 수양과 교육의 장으로 계획되었다면, 금선정은 소요자적의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었던 만큼, 황준량의 인물됨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립공원 소백산의 작은 개울들이 심산유곡을 흘러 내려와 저수지 금계호에서 한차례 머물렀다가 다시 금계로 흘러드는 동안 물은 더욱 맑아지고, 온갖 나무와 풀꽃들이 이루어 놓은 숲을 지나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기슭을 돌아서 마침내 금계동에 이른다. 계곡의 물은 놓이는 자리에 따라 크고 작은 반석 위에 머물며 맑은 못을 이루기도 하고, 기암괴석이 우뚝 솟은 절벽을 만나면 폭포수로 변하면서 물길마다 절경을 이룬다. 금선정의 아름다움은 금계의 맑은 물살과 그 물속에 또는 물 밖으로 반쯤 몸을 드러낸 크고 작은 돌들, 그 옆으로 깎아지른 절벽, 그 절벽 앞으로 나지막한 폭포, 그리고 여울목 위로 널찍한 바위 금선대,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정자 금선정이 한데 어우러진다. 바윗돌과 물살이 어울려 금계를 이루고, 금선대가 어울렸으며, 나중에 사람이 정자를 얹으니 자연과 사람의 일치를 이르는 정경융합의 조화로운 풍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에 그 경치를 보려면 그 풍경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만 한다. 얼핏 마을 밖이나 계곡에 가로놓인 다리에서는 깊숙한 개울만 보일 뿐 정자의 모습이나 금선대는 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놓인 모양만 봐도 속되지 않다. 이곳을 즐겨 찾던 이들은 풍기의 선비들이다. 풍기 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도 이곳을 거닐며 감상한 흔적을 시로 남기고 있다. 신선될 재주 없어 삼신산을 못 찾고 구름 바라보며 시냇물로 입을 헹구네 좋구나 풍류 찾아 떠도는 손아 금계에 때때로 와서 세상근심 씻는다네 옛날부터 사람이 신선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쉽사리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간혹은 속세의 시공을 벗어나 세상살이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기에, 제 삶터에서 조금은 멀리 그리 가깝지는 않게 선경(仙境)을 두어보려는 것이다. 인간살이의 여러 가지 구속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 잠시라도 먼지 세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소요자적하고 싶은 쉼터가 신선 세상이나 다를 바 없음을 퇴계 이황은 잘 알고 있었으며, 가까이에 있는 금계를 마음의 신선 세상으로 여겨 즐겨 찾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계 한 켠의 금선정은 거리상으로나 그 놓인 위치로 보나 속세간의 선경으로 적당하다. 오늘날은 초여름 산보삼아 가보면, 금선정 정자에선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수담(手談)을 즐기고, 그 아래 금선대에서는 젊은이들이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저 아래 금계의 꽤 넓고 깊은 여울에서는 개구쟁이들이 물장구도 치는 옆에서 젊잖게 물에 발을 담그고 양 옆의 노송에 시선을 주는 불혹의 부부도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 길옆에서는 간혹 승용차나 트럭도 길에 세워 놓고, 엔진의 열기를 식히기도 한다. 자연의 덕은 그 혜택을 골고루 베푸는 것,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의 기계열을 솔바람에 식히며 잠시 우리 삶의 쳇바퀴를 멈추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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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출 인물 | |
황준량(黃俊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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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 황준량 이야기 | |
금계 황준량(1517~1563)은 조선 중기의 명신이다. 본관은 평해(平海), 안동 출신으로 농암 이현보의 손서(孫壻)요, 벽오(碧梧) 이문량(李文樑, 1498~1581)의 사위이다. 퇴계 이황의 대표적 제자이다.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태어난 황준량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상해 ‘기동(奇童)’으로 불렸다. 21세에 생원이 되고, 24세에 문과 을과 이인(二人)으로 급제했다. 24세 문과 급제는 회재 이언적, 동갑인 소고 박승임 등이 있는데 당시로 보면 매우 빠른 시기에 해당하는 성취였다. 그는 급제 후 성균 박사·공조 좌랑·호조 좌랑·병조 좌랑 등을 거쳤지만 모함을 받고 신령 현감으로 나간 이후 단양 군수·성주 목사에 이르렀다. 그의 20여 년에 걸친 관료 생활은 중앙 무대에서보다 지방의 목민관으로서 그 성과와 명성이 더 높았다. 성주 목사 재임 시에는 목민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퇴계 학파의 맏형으로 그리고 중심 학자로서 연구와 책자 편찬에 큰 공을 세웠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의 기본서로 애독되었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10책 간행이다. 금계는 공직자로서 행정능력이 탁월하고 청백리의 모범이었다. 신령 현감 시절, 백성들의 굶주림을 자신의 일같이 여겨 보살피며, 전임 현감이 관의 재정을 많이 축낸 것을 절약과 긴축으로 메웠다고 한다. 또 단양 군수로 부임하였을 때, 거의 파산 상태의 고을을 다시 일으키고자 임금에게 진폐소를 올렸는데 4,800여 자의 명문장으로 임금을 감동시켰다. 그가 죽었을 때는 20여 년의 벼슬에도 불구하고, 염습을 쓸 만한 천이 없었고, 널에 채울 옷가지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교육자로서 황준량은 지방관으로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진흥하였다. 성주 목사 재임 때 전임자가 세운 영봉서원을 증축하고, 문묘를 증수하는가 하면 교관을 두어 지방의 제자들을 가려서 가르치고, 매달 강회를 열어 성적에 따라 상벌을 베풀었다. 스승보다 먼저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를 기려 이황은 제문을 지어 애도했고, 행장을 찬해 그의 생애를 정리했으며, 그가 남긴 글을 교열해 문집으로 엮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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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 전적 | |
황준량의 문집이다. 당초 문집은 4권 분량으로 집안에 남아 있었다. 이를 단양 군수 손여성과 아우 황수량이 유집을 수습하여 이황에게 편찬을 부탁해 단양군에서 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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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천의 이름을 딴 금계리 |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는 조선시대 풍기군 서부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교동과 장선동을 병합하고 금계천의 이름을 따서 금계동이라 하고, 영주군 풍기면에 편입하였다. 금계리는 동으로 교촌리, 서로는 백동, 남으로는 서부리, 북으로는 욱금리와 인접해 있다. 금계리는 1·2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1리는 안마·쇠바리·잿밭·공원 밑·임실, 2리는 장생이마을로 되어 있다. 쇠바리는 장선마을 남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뒷산 모양이 소의 발처럼 생겼다 하여 마을 이름이 쇠바리가 되었다. 잿밭은 이 동리의 산기슭에 잣나무가 많았기에 잿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와 낮은 고개에 있는 밭이라는 뜻으로 잿밭이라 불리었다는 설이 있다. 백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계촌은 쇠바리 남쪽 마을이다. 『정감록』의 10승지 마을로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지세의 모양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 해서 금계촌 혹은 복계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임실은 금계 서쪽에 있는데 이곳에 집을 짓고 아이를 낳으면 명장이나 대인을 낳는다는 전설이 깃든 동네이다. 용천동은 용이 샘에서 나왔다는 전설도 있고, 용천사의 절 이름을 따서 용천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마을 뒷산의 지형이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세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곳 용천사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 시절 이곳에 들러 영정각을 수리하기도 했다. 장생이는 그 지형이 긴 배 모양 같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이 마을에 오랫동안 착한 사람이 많이 나서 번성하라는 뜻에서 장선으로 고쳐 불렀다. 구향교는 임실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풍기향교가 있던 곳이다. 금계리에는 금계 황준량이 소요하던 곳에 세운 금선정과 금양정사, 욱양단소 등이 남아 있다. |
출처 : 수산
글쓴이 : 군계일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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