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정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 산88번지에 위치하여 있고 고운선생께서 기울 어져가는 국운을 한탄하며 노닐던 곳으로 정자의 판액에 고운선생의 시 한수가 남아 있다. < 暮年歸訛松亭下 一抹伽倻望裡靑 : 늙은 몸 소나무정자 아래 돌아 누웠으니 바라다 뵈 는 것이 푸른 가야산 뿐이로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봉양서원(鳳陽書院) 거리뷰  | 본 문창사 사우는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1리 에 위치하며 문창후 고운선생의 영 정을 모시고 경주최씨 고령출신 종친들의 성금으로 창건하여 매년 춘추로 향사하는 곳이며, 경내에 봉양서원이 있어 이곳 유림들이 모여 향사를 지낸다. 
문창공영당(文昌公影堂)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766-4번지(도평로 38길 51)에 위치한 이곳은 문창후 고운선생 의 영당이 있으며 조선 영조 31년(1755) 을해에 계림사로 창건되었으나 비행장의 부지로 편 입되게 됨으로 하여 이곳으로 이건되어 왔다. 매년 동지일을 맞아 향사하는 곳으로 동고조 팔촌이 넘는 구촌 즉 족친이 모인다는 뜻으로 구회라 하였으며 매년 음 9월 9일에 인근 수동, 대명, 칠계지동에 거주하는 후손들이 모여 숭조경친과 애족돈목을 기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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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영각(大谷影閣) | 대곡영각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54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난 1971년에 창건 하였 으며 매년 음 3월 10일에 고운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하고 있다. 
청용대(靑龍臺) | 경남 창원시 진해구 가주동 87-1번지(가주로35)에 위치한 청용대는 송죽이 울창한 산기 슭에 전답을 끼고 비스듬히 서있는 자연암석에 고운선생의 친필이라 하는「청용대」의 석 자가 초서로 각자되어 있으며 바로 그 옆으로 치원서라 하여 역시 돌 위에 새겨져 있음으로 하여 선생의 친필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암석 옆으로 「문창후최선생청용대비」가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이곳도 해변이라 전하며 기암괴석으로 풍치 또한 절경이었으리라 짐작하게 하며 선생께서 유상하신 곳으로 모자람이 없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88호 (지정일 1997년 12월 31일)

| 임경대(臨鏡臺)  | 동국여지승람 22권 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72번지 고적편에 「임경대는 홍 최공대 라고 도 하는데 황산역 서쪽 절벽위에 있으며 최치원이 놀고 즐기던 곳으로 고운선생의 시가 있다」라고하였다. 그리고 고려때 최자(1188~1260)가 지은 보한집 권상(114p)에 「김해부 의 황산강이 흘러 6,7리쯤 내려가서 푸른 낭떠러지가 불끈 솟아 산봉우리를 앞에 두고 강을 낀 연촌 10여호가 모두 대울타리에 띳집으로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있는 것 같다. 당나라 시어 사 최치원이 일찍이 돌을 모아 이 대를 짓고 임경이라 하였으며 석벽에 시를 새겼다.」 세월이 오래되어 대가 무너지고 석벽에 새긴 글씨가 없어짐에 뒷사람이 그 글을 황산 루에 옮겼다. 현재는 경부선 철도와 치수장 건설로 변형되어 옛 터를 찾을 길이 없다. 
학사대(學士臺) | 경북 김천시 황금2동 (학사대2길 18)에 위치하며 김천역에서 남으로 약 2km 지점에 있다. 김천향토사 제2장 풍토 전설「학사대에 고운선생이 이곳에 와서 인근 선비들과 교우 강학하던 곳으로 황금동 윗마을 산위의 넓은 곳을 학사대라 한다.」 밀집된 인가 속에 지금까지 빈 공터만 남아 있는데 이곳 애들과 부녀자까지도 학사대 를 모르는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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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영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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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학자인 고운 최치원(857~?) 선생의 초상화이다. 최치원은 통일신라 경문왕 9년(869)당나라에 유학 가서 그곳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활약하였는데, 879년 황소 의 난을 진압하고자 쓴『토황소격문』은 특히 유명하다. 초상화는 중국풍의 문인상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가로 105㎝, 세로 74㎝의 크기이다. 선생의 초상화는 여러 곳 에보존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승려의 모습인데 반하여,이 그림은 각이 진 사방모를 쓰고 평상복을 입고서 편 안한 자세로 부채를 손에 쥐고 앉아 있는 모습이어서 특별하다.양 옆에는 석류가 담긴 청자 그릇을 받쳐든 동자 와 파초선을 든 동녀가 서 있다. 화폭의 왼쪽 상단에는 ‘신라최선생고운지진영’이라는 제목을 써 놓았다. 얼굴의 묘사와 옷주름의 처리기법과 바닥에 깔린 돗자리의 형태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와서 원본을 본 떠 그 린 것으로 보인다. 비록 다시 옮겨 그린 것이긴 하나, 우리나라의 일반 초상화가 화면 속에 주인공 한 사람만을 그리고 있는데 비해, 이 초상화는 동자가 등장하는 등, 화면구성이 특이하다는 점에서 초상화의 연구에 크게 주 목할 만한 작품이다. 최치원의 초상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리산 쌍계사 본과 가야산 해인사 본에 의해서이다. 이 상은 해인사 본 이며 원래 해인사 나한상 가운데 섞여 있었던 것을, 구한말 왜적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최씨 문중으로 옮겨 놓 은 것으로, 작품이 지닌 역사적 가치는 매우 높게 평가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경북 청도군 각남면 일곡리 (구곡길12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