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야기

미륵존 여래불

강나루터 2021. 12. 10. 20:25

미래의 수행 "미륵존여래불"|

 

 

밤 길

오는길이 무서울때, 평소 입에 붙은 미륵존여래불을 부르다,

그 무서움이 바쳐지는것 보다, 구원을 요청하는것이 더 빠르지 않은가

해서, 바꿔 관세음보살을 염송했었다.

그러다 지금은 무서움을 부르는 그 마음을 해탈시켜 법계를 움직이는게 더 근본적이다 싶어 미륵존여래불 외며 마음을 바친다.

 

미륵존여래불 수행은 고 백성욱 박사님이 창안한 수행법으로

일어나는 생각생각 마음마음들을 마치, 돋보기로 햇볕을 모아 불에 태워버리듯

그렇게 해탈시키는 수행법이다. 지금은 금강경을 수지하며, 수제자들이 이어가고 있는데 은근히 알려져가는 반면 한번 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이어가고 있어 기반이 탄탄해 지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되어 나 혼자 한 수행이지만 화두들던 습이 있어 쉽게 적응해 갔다.

 

법화경 사경등의 기도를 해 오고 있던 중, 올라오는 마음을 제어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마음이 제어가 아닌 "제거"가 되는 순간들을 느끼며 신기함과 고마움을 느낀 수행법이다.

 

나는 절에 가면 20대로 보이고, 사회에 나오면 30대로 보인다.

기도를 하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상이 녹아가는데 상이 녹으니 장막이 걷혀

기운으로 통하는 길이 점점 넓어지는데 그래서 가는곳, 함께 있는 사람들에 따라

내 기운이 섞여져 그렇단 생각이 든다. 점점 기운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건 "한 생각" 이다.

이타심이든, 이기심이든..

순간순간 드는 생각에 내 미래가 그려졌다 지워졌다...다음생의 인연들이 모였다 흩어졌다 한다.

기도가 해탈이 되는것이 아니라 그저 인과공덕으로 쌓여져 가는 순간이다.

상 이있는 기도는 그렇다.

 

관음기도, 나한기도, 지장기도ㅡ

기도에 따라 사람의 상호가 변해간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에 심은 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생에 심은 그림이 아니다.

화두도, 심지어 화두도, 그림이 그려졌다.

화두를 놓아버리는 순간, 그것이 터억~!하고 울려 떨어지고

그 자리에서 허공이 들어섰다.

...

 

하지만 미륵존 여래불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리 염송을 해도..그대로 그대로 비어있다.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것이 도인이 그려놓은 법계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작 여섯 말마디를 만들어 낸것을 고생스러웠다 할 리가 없다.

백박사님 같은 도인이..

 

아상이 녹으면 경전에 다른 주 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육식으로 단단히 결집 되어 있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씩 다 바치다 보면

신기하게도 탈색이 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 자리엔 어떤 것도 달리 들어서지 않는다.

요술을 부려 모양을 바꾸던 업식의 마구니가 그 근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확실히 빚을 청산해 갈 수 있다.

육식이 지어 놓은 인과의 빚을 백색광명으로 탈색시킬 수 있다.

 

그렇게 아상이 녹아가면

관음기도는 관음께 청하는 기도가 되지 않고, 내가 관음이 되겠다는 기도가 된다.

법화경이 누군가를 위해 설하는 법문이 되지 않고, 나를 듣게 하기 위해 설해지는 법문이 된다.

그래서일까 경이 경이라는 생각보단 당연히 사람으로 익혀야 할 것으로 느껴진다..

 

미륵존여래불로 상을 탈색시킨 그 자리엔

본성일지도 모르는 단정함만이 남는다.

그러한 작은 자리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마치 큰 물결처럼 모든것을 모아 미래를 향하게 해준다.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는 힘은

과거의 모든 짐을 해탈시켰기 때문이다.

나를 잡는 것들이 없기때문에 자유로이 갈 수 있다.

 

간단 명료하지만 신기하고 묘한 수행법이다.

우리가 지금 외는 진언과 많은 명호들도 이렇게 생겨났겠단 생각도 든다..

 

누가 내게 수행법을 구한다 하면

"미륵존여래불"께 마음 바치는 이 수행법을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