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은 2001년 3월 불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수행은 정견(正見)을 바탕으로 선오후수(先悟後修)라 말했다. 불성(佛性) 체험에 역점을 두고 정진하여 불성에 안주(安住)하라는 것이다. 또한 스님은 어느 문(門)도 버리지 않고 아집, 법집을 떠나 다양한 교법을 서로 걸림없이 회통하는 원통불교(圓通佛敎)를 선양하고, 엄정한 계율의 준수와 염불선으로 해탈을 증득하여 위법망구(爲法忘軀)하는 전법도생만이 불법을 중흥시키고 인류를 극락으로 맞이하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불교신문
오늘 태안사를 찾아오신 우리 불자들이나 무종교인이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행복을 추구합니다. 허나 우리 인간성이 어떠한 것에 얽매어 있으면 참된 행복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공산 사회까지도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서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자유는 자기 자신을 얽어매는 속박에서 벗어날 때 큰 행복과 대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참다운 자유, 참다운 행복을 얻고자 하는 가장 확실한 길 이것이 불교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은 기복신앙으로 끝나버립니다. 또 팔정도와 육바라밀은 무엇인가? 대승불교는 무엇인가? 등 불교교리만을 이해하고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또 염불도 하고 참선도 하면서 실제적인 수행을 해보려고 애쓰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꾸준히 하는 분이 드뭅니다. 참다운 불법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자기 성품에 맞는 수행법을 택해서 꾸준히 닦아가야 합니다. 그때 삶의 기쁨도 느끼고 참된 행복과 참된 자유를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여기 수행하는 방법을 세가지로 말씀해 놓은 법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심상(尋常)공부입니다. 심상공부는 우리 몸의 행동, 언어생활, 그리고 마음 속의 생각까지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전체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부처님과 더불어 하는 생활 이것이 심상공부, 불자의 생활태도입니다.
둘째는 별시(別時)공부입니다. 자기의 성품이 부처이지만 우리 중생은 여기저기 환경에 끌려 다닙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참성품, 우리 마음 가장 깊은 불심(佛心)까지는 못들어가고 맙니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 놓고 아침저녁으로도 공부하고 또 삼일 내지 일주일 이렇게 날짜를 정해 놓고 절에 가서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는 이것을 별시공부라고 합니다.
셋째는 임종(臨終)공부입니다. 우리 중생은 박복해서 심상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별시공부도 미처 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시간에 쫓기고 생활에 쫓기면서 살다보면 어느새 임종에 가까운 노년에 접어들게 됩니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 뿐입니다.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임종때가 다가오면 무서운 것이 앞에 나타납니다. 소위 말하는 저승사자가 와서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나쁜 세계로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비록 살아생전 심상공부도 못하고 별시공부도 못했다 하더라도 임종에 이르러서 오직 일념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 좋은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일념전심(一念傳心)! 마음으로 오직 부처님만을 생각하는 일념으로 사무칠 그 마음 가지고 극락세계에 태어납니다. 노년에 이르러서하는 공부 이것이 임종공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젊어서도 공부를 못했는데 늙음에 이르러 지수화풍 사대가 무너져가는 단말마의 고통이 엄습해오는데 일념으로 공부해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많고 고통이 많아서 고해(苦海)·괴로움의 바다라고 했습니다. 또 불타는 집과 같다고 해서 화택(火宅)이라고도 했습니다. 우리 생명은 지금 이 순간도 순간순간 연소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바다와 불타는 집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성불의 길입니다. 성불에 이르는 세 가지 수행법 가운데 별시수행은 누구나 마음을 내면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출가수도생활을 할 수는 없더라도 하루나 며칠씩이라도 수행을 해나가면 마음이 맑아져 와서 본바탕 불심에 가까워집니다. 그 때 심상공부도 조금씩 자리가 잡혀가게 됩니다.
세상일도 중요하지만 나고 죽는 생사문제가 가장 큰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일을 위해서 작은 일을 조금 쉬고 일정기간 오로지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을 가져서 마음의 자유와 참다운 행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불교신문 1272호(1989년10월25일자) 6면에 실린 청화스님 태안사 금륜회 법회 법문.
◼ 청화스님은…
묵언과 일종식, 장좌불와의 삶…
“자비 화신, 보시바라밀의 귀감”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을 역임했다. 60여년간 대흥사,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벽송사, 백운산 사성암, 혜운사, 태안사 등의 토굴에서 묵언과 일종식 및 장좌불와 수행에 전념했다. 60세가 넘어 토굴생활을 끝낸 스님은 1985년부터 10여년간 폐찰이 되어가던 태안사를 중창했다. 그동안 해외와 한국 등지를 다니며 불법(佛法)을 전했다.
많은 스님과 불자들은 청화스님에 대해 ‘자비행(慈悲行)’이 끝이 없는 어른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스님이 광주 추강사에 주석하던 시절의 일화이다. 대중들이 먹을 쌀이 2~3일치 밖에 남지 않아, 방안을 찾기 위해 대중들이 공사(公事)를 하던 어느날 객스님 한분이 찾아왔다. 청화스님은 주저함이 없이 쌀독에 남아 있는 쌀을 객스님 걸망에 담아주었다.
또 한번은 두륜산 진불암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날 갑자기 절을 찾아온 낯선 스님을 위해 손수 40리 거리인 해남까지 내려가 제물을 준비해 와 제사의식 가운데 절차가 제일 복잡하다고 하는 구병시식을 베풀어 주었을 정도이다. 이처럼 보통 정성으로는 하기 힘든 자비행을 실천했던 스님이 청화스님이다. 때문에 “청화스님은 자비의 화신이고 보시바라밀의 산 귀감이다”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님은 교학에도 두루 밝았다. 스님이 직접 저술하거나 역주한 경전이나 저서도 여러권 남겼다. <정통선의 향훈> <원통불법의 요체> <마음의 고향> <진리의 길> <가장 행복한 공부> 등은 손수 지었고, <약사경> <정토삼부경> <육조단경>은 번역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이밖에도 은사 금타스님의 저술을 모아 <금강심론>을 펴내는 등 부처님 가르침을 많은 불자들이 쉽고 바르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청화스님은 참선, 염불선, 교학을 기반으로 대중들에게 자비심을 근간으로 불법을 폈다. 스님은 포교에도 남다른 원력을 지니고 있었다. 직접 창건한 도량만 해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서울 광륜사, 미국 금강선원 등 10여개에 이른다. 스님은 도량을 열면 ‘가장 청정한 도량’ ‘가장 엄정한 계율’ ‘초인적인 용맹정진’ 등 세 가지의 도량신조(道場信條)를 강조했다.
스님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오고가는 것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 / 차세타세간 거래불상관(此世他世間 去來不相關) 몽은대천계 보은한세간(蒙恩大千界 報恩恨細澗)”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2003년 11월12일 주석중이던 전남 곡성 성륜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법호는 무주(無住)이며 법납 56세. 세수 81세.
정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3633호/2020년11월28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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