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노(魯)나라 정공(定公) 때 형법을 책임진 사구(司寇)가 돼 국정에 참여하게 되자 7일 만에 소정묘(少正卯)를 처벌했다. ‘순자(荀子)’를 비롯한 여러 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에 제자들도 깜짝 놀라 공자에게 물었다.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소문난 사람[聞人]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정사를 맡으시고서 맨 먼저 그를 주살한 것은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제자들을 앉으라고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 까닭을 말해주겠다. 사람에게 악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도둑질[盜竊]은 그중에 포함되지 않는다. 첫째는 마음이 두루 통달해 있으면서도 음험한 것, 둘째는 행실이 편벽되면서도 고집스러운 것, 셋째는 말에 거짓이 있으면서도 그럴싸하게 말을 잘하는 것, 넷째는 알고 있는 것이 추잡스러우면서도 박식한 것, 다섯째는 그릇된 일을 일삼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는 것이다. 무릇 어떤 사람이 이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만 갖고 있어도 군자의 처형을 면할 수 없을 것인데 소정묘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사는 곳에는 따르는 자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었고 그의 말은 사악함을 꾸며 여러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으며 그의 실력은 올바른 사람을 반대하면서 홀로 설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자는 소인들의 영웅[桀雄]이라 할 수 있으니 처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른바 꼭 죽여야 할 사람은 낮에는 강도 짓을 하고 밤에는 담을 뚫고 들어가는 그런 도둑이 아니다. 바로 나라를 뒤엎을 그런 자가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바로 군자들로 하여금 의혹을 품게 하는 자이며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미혹에 빠지게 하는 자이다.”
소정묘 같은 자를 공자는 향원(鄕原)이자 영인(佞人)이라고 불렀는데 둘 다 말재간으로 나라를 어렵게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