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강나루터 2023. 10. 24. 01:16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4|조회수889목록댓글 0글자크기 작게글자크기 크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말로, 장자가 추구한 무위자연의 이상향을 뜻한 말이다.

無 : 없을 무(灬/8)
何 : 어찌 하(亻/5)
有 : 있을 유(月/2)
之 : 어조사 지(丿/3)
鄕 : 고향 향(阝/10)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응제왕(應帝王), 지북유(知北遊) 등 여러 곳에 나오는 말이다.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말로, 이른바 무위자연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가 없고 시비가 없으며 지식도, 마음도, 하는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소요유(逍遙遊)와 응제왕(應帝王)편에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은 광막한 들(廣莫之野), 끝없이 넓은 들(壙垠之野)로 표현되어 있다. 누가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장자(莊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였다.

“물러가라. 너는 야비한 인간이로구나. 이 얼마나 불쾌한 질문이냐. 난 지금 조물주와 벗이 되려 하고 있다. 싫증이 나면 다시 아득히 높이 나는 새를 타고 이 세계 밖으로 나아가 아무것도 없는 곳(無何有之鄕)에서 노닐며 끝없이 넓은 들판에서 살려 한다. 그런데 너는 어찌 천하를 다스리는 일 따위로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가.”

지북유편(知北遊篇)에서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었을 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 시험 삼아 당신과 함께 유위(有爲)가 없는 무하유(無何有)의 경지에서 소요(逍遙)하고 너와 나의 대립을 떠나 만물과 하나가 되는 도(道)에 대해 말해 보겠네. 그리고 시험삼아 당신과 함께 무위(無爲)의 입장에서 담담하고 조용하게, 고요하고 깨끗하게 만물과 조화를 이룬 채 유유자적(悠悠自適)해 보겠소. 그렇게 하면 우리 마음은 다른 사물로 가지 않을 것이므로 마음이 가서 닿을 바도 알지 못할 것이고, 갔다가 와도 사물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므로 그 멈출 곳을 알지 못할 것이오. 그래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세계에 풀어 놓으면 아무리 큰 지혜로 엿보아도 그 끝이 다함을 알지 못할 것이오.”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Utopia)도 결국은 어느 곳에도 없는 땅이라는 말이다. 장자(莊子)가 말하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도 언어 상으로는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안식처이다.

다시 말해 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은 아무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니 장자가 추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향을 뜻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선경(仙境), 그리고 도원경(桃源境)은 상상의 세계일뿐이지 실제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옛날 많은 몽상가나 모험가들은 세상 어딘 가에는 반드시 이상향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15세기에 시작된 유럽인들의 대륙 발견도 원래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따른 황금의 전설에서 유발된 것이었다.

당시 스페인의 모험가들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강 기슭에 엘도라도(Eldorado)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엘도라도는 스페인어로 황금이라는 뜻, 즉 황금향(黃金鄕)을 말한다. 콜롬부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사실은 엘도라도에 이끌려 모험에 나선 결과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엘도라도는 남미의 안데스산맥 북쪽, 콜롬비아의 한 복판인 보고타 고원에 사는 티브치족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이 부족의 추장은 종교적 의식으로 온 몸에 금가루를 바르고 호수에 들어가 희생물을 바친 뒤 호수 물로 금가루를 씻는 행사를 거행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유럽인들에게 전해져 황금향(黃金鄕)의 환상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16세기초 잉카(Inca) 제국의 정복자 피사로(Pizarro)는 엘도라도를 찾아 안데스(Andes) 산맥 너머로 탐험대를 보냈으나 그들은 배를 타고 내려 간 큰 강에 아마존(Amazon)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얻은 것도 없이 돌아왔다.

또 영국의 모험가 롤리(Raleigh) 경(卿)도 두 번이나 엘도라도 탐험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 어느 곳에도 엘도라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동양이고 서양이고 이상향은 없는 것인데 꿈을 좇는 몽상가들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유토피아를 찾아 부질없는 고행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는 본래 이상향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어 Ou(없다)와 Topos(곳)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없다는 뜻의 유토피아는 16세기 영국의 토머스 모어(More)의 작품에 묘사된 이상향으로서의 공상의 섬 이름인데 그 뒤 이상향과 유토피아는 같은 뜻으로 일반화된 것일 뿐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일진광풍(一陣狂風)에 큰 재앙을 격는것을 보면서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더니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첨단 과학문명도, 막강한 군사력도, 넘치는 경제력도 대자연의 조화에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것을 자연이 주는 재앙은 깨닫게 한다.

그러고 보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겸허히 자위할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도 결국은 어느 곳에도 없는 땅이라는 말이다.

장자가 말하는 무하유지향도 언어 상으로는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안식처이다.

장자(莊子)가 말하는 무명인(無名人)은 이름과 명예와 세사(世事)에 집착하지 않는 무위(無爲)를 체득한 성인의 이름이다.

이 무명인은 자기가 습득한 최상승의 정신의 경지인 붕(鵬)새를 타고 우주 밖으로 벗어나서 그 무엇도 존재함이 없는 세계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서 노닐며, 텅 비어 끝이 없는 들판(壙漠之野)에 거처한다.

이는 대도(大道)를 타고 광대하게 유람하는 무위(無爲)의 세계에서 소요유(逍遙遊)하는 것을 말한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은 그 무엇도 존재함이 없는 완전한 이상적 세계이다. 그러므로 인식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장애요소가 없으므로 실수가 없다. 이는 무(無)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유위(有爲)가 사라지고 도(道)에 따라 무위자연 하는 것이다. 이는 무차별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차별과 계급과 분열이 모두 사라진다. 이는 무등(無等)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차별이 사라지고 대동단결하는 평등 세상이 된다. 그런 세상이 있을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찾고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이 땅의 불평등과 부조리, 인식의 오류, 인성(人性)의 타락, 남녀차별, 인종차별, 지역차별 등등의 문제를 해결할려는 숭고한 사람들이다.

분열과 지역차별과 계급적 불평등과 인식의 왜곡과 건전한 상식이 실종된 상황에서는 특히 의미를 주는 이상향이다. 정말 그런 곳이 있을까?

유토피아의 세계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무릉도원(武陵桃源), 선경(仙境)이 있을까? 유토피아나 무하유지향의 말이 의미하듯이 그런 곳은 아무 곳에도 없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곳을 동경하며 찾아 나섰으나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성서(聖書)에서는 그런 곳이 장차 천년왕국(千年王國)이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라야 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그런 곳을 누릴 수 있을까? 그 곳은 우리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안식처이다.

우리가 매일 우리의 의식 너머에 있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야 참 안식을 맛볼 수 있다. 기도나 명상이나 선(善)을 하는 자들은 그 곳에 들어가 참 안식의 그 맛을 보려고 수행하는 자들이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 何(어찌 하/꾸짖을 하/멜 하)는 ❶형성문자로 荷(하)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可(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짐을 메고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중에 모양이 변하여 사람인변(亻)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可(가, 하)를 합(合)한 글자로 되었다. 何(하)는 荷(하)의 본디 글자인데 可(가)의 음은 의문을 나타내는 말과 비슷하였으므로 의문의 뜻에 何(하)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메다, 지다의 뜻에는 연잎을 뜻하는 荷(하)를 빌어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何자는 ‘어찌’나 ‘어떠한’과 같은 뜻을 가진 글자이다. 何자는 人(사람 인)자와 可(옳을 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何자의 갑골문을 보면 어깨에 보따리를 멘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보따리를 메고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何자의 본래 의미는 ‘메다’였다. 이렇게 짐을 싸 들고 길을 나서게 된 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何자는 후에 ‘어찌’나 ‘어느’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되묻던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지금은 여기에 艹(풀 초)자가 더해진 荷(멜 하)자가 ‘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何(하)는 성(姓)의 하나로 ①어찌 ②어느 ③어떤, 어떠한 ④언제 ⑤얼마, 약간 ⑥무엇 ⑦왜냐하면 ⑧잠시(暫時) ⑨꾸짖다(=呵) ⑩나무라다 ⑪메다(=荷) ⑫받다, 맡다 ⑬당하다, 해당하다 ⑭걸다, 내어 걸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찌 나(奈), 어찌 내(奈), 어찌 나(那), 어찌 기(豈)이다. 용례로는 아무런 조금도를 하등(何等), 어느 날 또는 무슨 날을 하일(何日), 어찌하여 반드시를 하필(何必), 어느 겨를을 하가(何暇), 어느 때에를 하시(何時), 무슨 까닭을 하고(何故), 이름을 모름을 하물(何物), 어떠함을 하여(何如), 어느 사람이나 어느 것을 하자(何者), 꼭 정하지 아니했거나 모르는 곳을 하처(何處), 이름을 모르거나 작정하지 못한 일이나 물건 따위를 일컫는 말을 하사(何事), 어떠한 뜻이나 무슨 뜻을 하지(何志), 어느 때를 하간(何間), 무슨 관계를 하관(何關), 어느 해를 하년(何年), 어떤 사람을 하인(何人), 무슨 죄를 하죄(何罪), 어찌 특히를 하특(何特), 어느 곳을 하허(何許),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 또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어떠함을 약하(若何), 어찌를 나하(那何), 어찌함이나 어떻게를 내하(奈何), 얼마를 기하(幾何), 어떤 사람이나 어느 누구를 수하(誰何), 어찌 보는 바가 늦느냐는 뜻으로 깨달음이 늦음을 이르는 말을 하견지만(何見之晩), 어찌 명년을 기다리랴의 뜻으로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함을 이르는 말을 하대명년(何待明年), 어찌 꼭 이익만을 말하는가 라는 뜻으로 오직 인의에 입각해서 일을 하면 이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필왈이(何必曰利)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미증유(未曾有),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계란유골(鷄卵有骨),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소중유검(笑中有劍),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鄕(시골 향)은 ❶회의문자로 郷(향), 鄊(향)은 통자(通字), 乡(향)은 간자(簡字), 鄉(향)은 동자(同字)이다. 지금의 자형(字形)은 마을(邑; 읍)과 마을이 서로 마주하여 길이 통(通)하다의 뜻, 마을, (白+匕)의 옛 모양은 음식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이며, 본디 식사(食事)를 한다는 뜻으로는 따로 饗(향)을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鄕자는 ‘시골’이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鄕자는 매우 복잡한 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鄕자를 보면 식기를 두고 양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을 초대해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심지어 음식을 건네주는 모습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鄕자는 이렇게 사람을 초대해 ‘잔치를 한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지만, 후에 정감이 넘치는 마을이란 뜻이 파생되면서 ‘고향’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전에서는 鄕자에 食(밥 식)자를 더한 饗(잔치할 향)자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鄕(향)은 (1)고대(古代) 중국이나 신라(新羅), 고려(高麗)의 부곡(部曲)의 하나 (2)중국의 주대(周代)에 있었던 행정(行政) 상(上)의 한 구역(區域). 곧 1만 2천 500호가 있는 땅을 이름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시골, 마을 ②고향(故鄕), 태어난 곳 ③곳, 장소(場所), 지구(地區) ④행정(行政) 구역(區域)의 이름 ⑤접대(接待) ⑥향음주례(鄕飮酒禮)의 준말 ⑦메아리, 울림, 음향(音響) ⑧추세(趨勢), 경향(傾向) ⑨만약(萬若) ⑩장차(將次), 막 ⑪지난번 ⑫대접하다 ⑬향하다 ⑭치우치다, 편애하다 ⑮누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을 촌(村)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서울 경(京)이다. 용례로는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나 시름을 향수(鄕愁), 고향이나 시골의 마을을 향리(鄕里), 태어난 곳 또는 시골을 향토(鄕土), 고향에서 온 소식이나 편지를 향신(鄕信), 시골에 사는 백성을 향민(鄕民), 같은 고향 사람을 향인(鄕人), 시골의 마을을 향촌(鄕村), 시골의 선비나 유지를 향사(鄕士), 자기가 났거나 사는 시골의 마을 또는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향당(鄕黨), 시골에서 온 손님을 향객(鄕客), 시골의 구석진 곳을 향곡(鄕曲), 고향의 관문 곧 고향의 지경을 향관(鄕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고향(故鄕), 제 고장이 아닌 다른 고장을 타향(他鄕),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향(歸鄕), 시조의 고향을 관향(貫鄕), 나그네로 가 있는 타향을 객향(客鄕), 고향이나 향리에 있음을 재향(在鄕), 같은 고향을 동향(同鄕), 고향을 떠나감을 출향(出鄕), 자기 집이 있는 고향을 가향(家鄕), 고향을 그리고 생각함을 망향(望鄕), 서울에서 시골로 거처를 옮기거나 이사함을 낙향(落鄕), 고향을 그리며 생각함을 사향(思鄕), 고향을 그리며 생각함을 회향(懷鄕), 자기가 사는 고장을 본향(本鄕), 사람이 상상해 낸 이상적이며 완전한 곳을 이상향(理想鄕), 고을의 선비들이 모여 읍양하는 절차를 지키어 술을 마시고 잔치하던 행사를 향음주례(鄕飮酒禮), 타향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나 여행 중의 몸을 이향이객(異鄕異客), 조국이나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지방을 만리타향(萬里他鄕), 어떤 고장에 가면 그곳의 풍속을 따르고 지킴을 입향순속(入鄕循俗),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옴을 이르는 말을 금의환향(錦衣還鄕)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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