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道峰山
도봉산 山行의 여러 즐거움중 빠트릴 수 없는 것중의 하나가
溪谷의 이끼낀 바위에 陰刻된 옛 聖賢들의 글씨를 보면서
가난한 世態에서도 自然을 벗삼아 餘裕滿滿한 삶을 누렸던
智慧를 느끼는거다고..
02
高山仰止
道峰書院 건너편 溪谷에 '高山仰止(고산앙지)'라
새겨진 바위가 반쯤 물에 잠겨 있다.
朝鮮 仁祖 때(1640年) 金壽恒이 새긴 글씨로,
'고산앙지'라는 말은
시경(詩經)의 소아보전(小雅甫田)편에 나오는 글로
높은 山처럼 우러러 思慕한다는 뜻이다.
03
問師洞
문사동 계곡 바위에 문사동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문사동(問師洞)의 문사(問師)는 스승에게 묻는다는 뜻으로,
門下生들이 出他하신 스승을 이곳에서 맞이하며 기다리던 곳.
04
道峰洞門
道峰 賣票所를 지나자마자 길 왼쪽에
'道峰洞門'(도봉동문)이라 새겨진 바위가 나타난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글씨를 새겨놓은 이 바위는
이곳이 도봉산과 도봉서원의 들머리임을 알려준다..
* 광풍제월(光風霽月)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이란 뜻으로
마음결이 明快하고 執着이 없으며
가슴속이 淡泊 率直한 狀態를 말함이고..
05
岩穴
바위에 구멍을 뚫어 이곳으로 물소리가 反響되는 소리를 듣는다고..
06
선인봉 만장대 자운봉 신선대
산은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높은 봉우리를 올라간다는 것은 산행의 초보단계요
산행의 고수가 될 수록 산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자연현상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구름의 변화를 내가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자연속의 산과 나 가 혼연일체가 되어
산속에 있는 모든 자연현상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산을 즐겨 찾는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도봉산에 다시 오르면 성현들이 했던 것처럼
나도 바위 구멍을 통하여 울리는 물소리를
다시 찬찬히 들어 보아야 겠다.
07
霽月光風更別傳 聊將絃誦答潺湲(제월광풍갱별전 요장현송답잔원)
비가 개고 달이 떠올라 시원한 바람이 다시금 이어받았고
거문고를 치며 노래하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和答하네...
08
舞雩臺(무우대) * 雩 : 기우제 우,
비가 오기를 祈願하던 곳으로
沐浴하고 舞雩대에서 바람 쏘이며 詩를 朗誦(낭송)한다.
09
도봉산 稜線(능선) 뒤로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이 보인다.
////////// plus+ . . . . .
사마천(司馬遷)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 유 승 우(강남대 석좌교수, 전 이천시장)
나는 최근 사마천의 사기(史記, 정범진 역)를 일독하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사기(史記)의 내용을 보면 12본기(本紀), 10표(表), 8서(書), 30세가(世家), 70열전(列傳) 등 5개 부분에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방대한 내용을 일별하면서 사마천이 구명하고자하는 역사정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각 편 말미마다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에 춘추필법의 정신으로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내리고 있다. 오늘의 현실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몇 가지 교훈적인 사실을 음미(吟味)
하고자 한다.
성군(聖君) 요·순·우(堯·舜·禹)의 대권 계승 : 요(堯)임금이 만년에 이르러 “누가 내 정사를 계승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대신 방제(放齊)가 아드님 단주(丹朱)를 천거하였다. 그러나 요(堯)임금은 아들이
덕이 없고 싸움을 좋아하여 쓸수 없다며 덕망이 높은 순(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순(舜)은 아버지가 장님으로 도덕을 모르고 어머니는 남을 헐뜯으며, 동생은 교만하였지만 그는 효성을
다해 화목하게 지내고 그들을 교화한 점 등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요 임금의 결심 배경은 ‘순(舜)에게 제위를 넘겨주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고 아들 단주(丹朱)
만 손해를 보지만, 단주에게 제위를 넘겨주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익을 얻는다
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순(舜) 역시 요(堯)를 본받아 아들 상균(商均) 대신 우(禹)에게 제위를 넘겨주었다. 우 임금 역시 아내를
맞이한 지 나흘 만에 집을 떠났으며 아들 계(啓)가 태어나도 돌보지 못했다.
이로써 우임금의 대표 브랜드인 ‘치수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고사(故事)는 오늘날 족벌독재체제로
치닫는 북한이나 필리핀의 경우,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도 남을 듯하다.
폭군(暴君) 걸·주·유왕(桀·紂·幽王)의 최후 : 하대(夏代)의 걸(桀), 은대(殷代)의 주(紂), 주대(周代)의
유왕(幽王)은 모두 폭정으로 쫓겨난 임금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충신을 죽이고 간신과 부인의 농간에
빠져 정사를 망친 장본인들이다. 마침내 걸(桀)은 탕(湯)임금에게, 주(紂)는 무왕(武王)에게,
유왕(幽王)은 평왕(平王)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며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특히 주(紂)는 달기(?己)를, 유왕(幽王)은 포사(褒?)라는 여인을 총애하여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
이라도 들어주며 멸망의 길로 빠졌다.
후세의 지도자들이 끝맺음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찌 이를 참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상적 지도자 공자(孔子) : 공자(孔子)에 대한 사마천의 존경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노자(老子)나 맹자(孟子)등은 열전에 포함시키면서도 공자만큼은 세가(世家)반열에 넣어서 특별히
우대하고 있다. ‘태사공은 말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詩經에 ‘높은 산은 우러러보고 큰 길은 따라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고산앙지, 경행행지)’라고 했다.
내 비록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마음은 항상 그를 동경하고 있다.……(중략).
역대로 천하에는 군왕에서 현인에 이르기 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생존 당시에는 영화로웠으나
일단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공자는 포의(布衣)로 평생을 보냈지만 10여 세대를 지나 왔어도 여전히 학자들이 그를 추앙한다.
천자, 왕후로부터 육예(六藝)를 담론하는 모든 사람들에 이르기 까지 공자의 말씀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그는 참으로 최고의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공자는 정치에 대해 묻는 사람에 따라 그 적성을 고려하여 각각 다르게 말했다.
-.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고 말했다.
-. 섭공(葉公)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정치란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먼데 있는 사람을
찾아오게 하는데 있습니다.(近者說, 遠者來:근자열 원자래)”라고 말했다.
-. 계강자(季康子)도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데 있다.
당신이 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습니까.
(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정자정야 자솔이정 숙감부정)”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대로 사기는 장대한 역사 서사시(敍事詩)이다.
이 중에서도 나는 지도자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정치적 요소만 발췌하여 정리해 보았다.
생각건대, 사마천은 공자를 가장 숭모하는 멘토(mentor : 善導者)로 모시면서 인간은 장구한 역사 속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현세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지혜의 경전(經傳)며,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위정자들이
반드시 참고 해야 할 정치 지침서(指針書)라 하겠다.
~ < 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