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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꾸지람의 정도(正度

강나루터 2015. 1. 19. 10:41

"편협한 사의(私意)로 남을 꾸짖으면 꾸지람을 들은 자가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어 피할 길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너그럽고 공정하게 남을 꾸짖으면 꾸지람을 들은 자가 화를 내는 경우가 적다. 이는 상대에게 주선(周旋)할 길이 있고 변통할 방도가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사람이라야 만민을 교화할 수 있다.
 

너그럽고 공정한 사람은 대기(大氣)의 운행 원리를 따르고, 백성을 통어하는 원리를 밝게 알고, 사람들을 대하는 원리에 통달하여,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간결하고도 쉬운 방법으로 인도한다. 혹 잘못을 하더라도 자각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니, 어찌 비난하고 헐뜯으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겠는가.

 

혹 사리를 모르는 행동을 하더라도 고유한 본성을 따라 인도하니, 어찌 잘난 척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겠는가.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달하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면 사람을 기다리면서 정기를 모아둔다. 온화하게 속박을 풀어 주고, 항상 사람에게 여지가 있게 하니, 세상에 지극히 교화하기 어려운 자가 아니라면 어찌 불선(不善)을 즐거워할 사람이 있겠는가.

반면 편협한 사람은 남을 꾸짖을 때에 상대가 자신의 편협한 사심을 따르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낸다. 사람을 쓰고 사람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도 모두 그러하다. 은밀한 일을 말하기 좋아하면서 항상 남들이 알까 봐 두려워하고, 때때로 오기(忤氣)를 건드려서 사람의 분노를 격발한다. 겉으로는 아첨하는 태도를 짓지만 몰래 남을 해치는 습성을 감추고 있으니, 이런 습성에 젖으면 남에게 꾸지람을 받기에도 바쁠 텐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꾸짖을 수 있겠는가.
 

대개 남을 꾸짖는 데는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요, 피아(彼我)를 달리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운행 원리를 거스르면 꾸짖어서 따르게 하고, 국가와 사회의 안녕을 해치면 꾸짖어서 돕게 하고, 인도(人道)를 닦지 않으면 꾸짖어서 익히고 행하게 해야 한다. 이는 천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행하는 도리요, 나 혼자 행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로써 요구하되 선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사람을 꾸짖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고, 상대에게 아집을 버리고 내 의견을 따르라고 요구하면서 일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람을 꾸짖는 도리가 아니다. 만약 남을 꾸짖어서 감복시킬 수 있다면 사람 쓰는 방법을 반 이상은 터득한 것이다."

[원문]
以偏狹私意責人, 則人多慍怒, 以其驅納窮谷, 無路回避也; 以恢洪公正責人, 則人鮮慍怒, 以其周旋有路, 變通有術也. 是以公正人, 可以敎化萬姓. 上順大氣運化, 次明統民運化, 下達交接運化, 示以不可違越, 導以簡易方便. 或有差誤之端, 代其自覺而曉牖之, 何嘗有非毁之心? 或有罔昧之事, 因其固有而先後之, 何嘗有矜伐底意? 力不及處, 用人以傳達; 期未臻時, 需人而聚精, 和解人之縛束, 常留人之餘韻, 如非天下最難化, 豈有人間樂不善. 若夫偏私人, 責於人也, 順其偏私則喜, 違於偏私則怒, 至於用人敎人, 莫不皆然. 喜談隱密事, 常畏人知, 時發觸忤氣, 常激人忿, 作之爲諂柔之態, 藏之爲暗毒之習. 以此染着, 不暇受責於人, 何以責之於人? 蓋責人之道, 宜有一定準的, 不可彼我異同耳. 違逆運化, 責之使承順; 戕害治安, 責之使裨益; 不修人道, 責之使習行, 是乃天下人所同行之道, 非我一人所獨行之事. 責以人生當行, 而不開向善之路, 是不識責人之術; 責以捨爾從我, 而不遵一定之準, 此非責人之道. 苟於責人, 果得感服, 用人之方, 斯過半矣.

 

출전 : 『최한기崔漢綺』「인정人政」'책인責人

 

 세상에 꾸지람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려서는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에게, 학생이 되면 선생님에게, 사회에 나오면 직장 상사 등에게 크고 작은 꾸지람을 듣게 되고, 이를 통해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간다. 반대로 살면서 꾸지람을 하지 않기도 어렵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위가 높아질수록 집이나 직장에서 꾸지람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책무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꾸지람은 우리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지만, 꾸지람을 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꾸짖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녀의 옳지 않은 버릇이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꾸지람이 역효과를 초래하는 때가 있다. 편파적인 꾸지람이나 본인의 기분에 따라 별것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이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가 되도록 심하게 꾸짖는 경우도 그러하다. 흥분하거나 화가 난 상태에서 한 꾸지람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되고, 부모 자식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거나 악화시킨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다.

퇴근 시간 만원 버스에서 젊은이들을 꾸짖는 노인이 있었다. 미어터질 듯한 버스에 올라타기가 바쁘게 경로석을 비워 두지 않았다고 화를 내던 그 노인은, 왜 모두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느냐, 왜 조는 척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 승객을 마구 꾸짖기 시작했다. 노여움을 띤 목소리에 승객들 모두 숨을 죽인 채 사람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쪽을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진작 자리를 양보했으면 좋았을 터이지만, 그쯤에서는 일어서기도, 앉아 있기도 어려웠을 그 여성이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공적인 집단인 직장에도 꾸지람은 존재한다. 업무와 관련된 실수를 하거나 조직에 손해를 입힌 경우에 받게 되는 질책이나 문책, 징계가 그것이다. 연공과 직위에 따라 상하관계가 정해지는 조직 사회에서의 꾸지람은 보다 체계적이고 공식적이다. 그것은 조직의 관리시스템에 따라 행해지며,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한 형평성이 전제가 되므로 직장에서 공적으로 행해지는 꾸지람을 구성원들은 불평 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때로는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의 꾸지람도 공정하지 않을 때가 있다. 관리자의 성향이나 지위, 관련된 인물에 따라 달라지는 꾸지람은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업무상의 실책일지라도 적정선을 넘거나 인격적인 모욕이 느껴지는 꾸지람이라면 타당성을 잃는다. 기업이나 기관의 관리자가 폭력적인 꾸지람을 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조직까지 위태롭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는 꾸지람이 공정하고 타당한 명분과 절차에 따라, 상식적인 선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망각해서 생긴 일들이다.

누군가를 꾸짖는 것은 그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그러나 남을 꾸짖으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본인의 감정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계산해서도 안 되며, 지위와 힘을 내세워서는 더욱 안 된다. 결국, 꾸짖는 사람이 공명정대하고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말이니, 다른 사람을 꾸짖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남을 꾸짖어서 감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 쓰는 방법도 알 것이다.’라는 최한기의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지는 까닭이다.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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