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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을미년 새해의 다짐

강나루터 2015. 1. 19. 11:09

 제야(除野)의 종소리와 함께 묵은해인 갑오년은 가고, '양의 해'라는 을미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한 해가 새로 시작되는 이즈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새해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일몰의 명소를 찾아가 장엄하게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면서 숙연한 마음으로 지난 한 해의 일을 반성해 보기도 하고, 일출의 명소를 찾아가 찬란하게 뜨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엄숙한 마음으로 새해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거창하게 세운 한 해의 계획을 한 해 동안 꾸준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 처음 며칠 동안은 계획대로 잘 실천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며칠도 못 가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것이다. 작심삼일로 끝난 다음에는 자신의 빈약한 의지력을 탓하며서 자괴감에 빠진다. 이것은 비단 오늘날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더 의지력이 강했던 옛 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새해의 첫 새벽닭이 이미 울었다. 그러니 나의 나이가 이제 열여덟 살이 된 것이다. 나는 열다섯 살 이전에는 참으로 세월 가는 것이 아깝다는 것을 몰랐다. 열다섯 살 이후에야 세월 가는 것이 아깝다는 것을 알고는,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걱정하였다. 이에 매년 설날 아침마다 반드시 베개를 어루만지면서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나이가 올해 몇인가? 평소의 행실을 돌아보매 어느 한 가지도 나이에 걸맞은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부끄러워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탄식한 지가 이미 몇 해나 되었다. 그러니 의당 배움도 그에 따라서 점점 더 진보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나 자신을 점검해 보건대, 최초에 탄식을 발한 때와 더불어 큰 차이가 없다. 그 당시에도 오히려 나이에 걸맞게 행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는바, 지금은 더욱더 부끄럽다는 것을 알겠다. 이에 부끄러움이 극에 달하여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진땀이 흐른다.
이렇게 된 것은 대개 착한 단서가 이미 발하였으나 이를 능히 확충시키지 못하고, 예전에 물든 습관이 또 그에 따라 속박한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또 독실하고 견고한 뜻이 없으며, 그럭저럭 구차스럽게 하려는 뜻이 있으므로, 이와 같이 한 걸음을 나가면 열 걸음을 물러나서, 끝내는 실제로 얻은 것이 없게 된 것이다.
지금 이후로는 나 자신을 크게 책려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은 채, 오로지 나 자신만의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본원을 깨끗하게 하고 외물의 유혹을 끊으며, 구태를 말끔히 없애 치우고 새로 얻기를 힘쓰되, 잠시 동안이라도 끊어짐이 없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조금씩이나마 차츰차츰 진보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鷄旣鳴矣。吾年非十有八乎。十五以前。固不知其可惜。十五以後則已知之而又憂矣。每歲曉。必撫枕自歎曰。吾年今幾何矣。回顧平生。無一事可稱其年者。豈不可愧乎。如是者亦已有年。宜乎學隨而漸進焉。乃今自點?。與最初發歎時無甚遠。當時猶愧其不稱年。今則尤可知也。於是愧極而懼。面赤而背汗矣。盖由善端之發。不能擴充。而舊染之習。又從而梏亡之。且無篤實堅固之志。而有因循苟且之意。故如是進寸退尺。終無實得焉。誓自今以往。大加策勵。不顧傍人是非。徒辦自己工夫。滌本原而絶外誘。掃舊習而務新得。使無晷刻之間斷。庶幾銖寸之累積焉。

- 임성주(任聖周, 1711~1788), 「무신정월삭효자탄문(戊申正月朔曉自歎文)」, 『녹문집(鹿門集)』
 

 

 이 글은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임성주(任聖周)가 18세 되던 해인 무신년 정월 초하루에, 자신이 지난해에 세웠던 새해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 대해 탄식하면서 지은 글이다. 임성주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중사(仲思), 호는 녹문(鹿門),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충청도 청풍(淸風) 출생으로 이재(李縡)의 문인이며, 공주(公州)의 녹문(鹿門)에 은거하여 평생 동안 학문에 몰두하였던 인물이다.

  임성주와 같은 큰 학자조차도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 대해, 얼굴이 붉어지면서 진땀이 흐른다고 탄식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외물의 유혹을 끊고 구태를 일소하여, 새해에 수립한 계획을 실천하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임성주와 같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 분도 그랬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네와 같은 범부 범부(凡夫凡婦)들이겠는가.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전 사람들처럼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자신의 덕성(德性)을 높이겠다느니, 자기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겠다느니 하는 등의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대부분 아주 사소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가장 흔한 계획이 금연, 금주, 다이어트, 어학 공부 등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꾸준하게 실천하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금연 계획 하나만 보더라도, 담배 판매량이 1월에는 확연히 줄었다가 2월이면 늘기 시작해서 3월이면 평소대로 회복된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면 금연을 계획한 사람들이 대부분 계획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는 담배 가격이 크게 인상되었기에 금연 계획은 많이 실천되겠지만.

  사람들 가운데에는 특별히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있다. 구한말 때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단식(斷食)으로 목숨을 끊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와 같은 분이 그런 사람이다. 이분은 열네 살 때 자신의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여 잔치하는 것을 보고는 부러운 나머지, 자신도 꼭 과거에 급제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그러면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는 왼쪽 엄지손가락을 구부린 채 펴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였는데, 그 뒤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 동안 엄지손가락을 펴지 않은 채 지냈다고 한다.

  향산(響山)선생과 같이 의지력이 굳센 사람에게는 새해 계획을 실천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정도의 굳센 의지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즉 새해에 세웠던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실패한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자괴감에 빠질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특히 주의할 점이 있는데, 막연하게 목표만을 설정해 놓아서는 실패하기가 쉽다. 새해 계획을 잘 실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강구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느 정도 성공할 가망이 있다.

  내가 아는 지인의 집에서는 새해의 계획을 실천하는 것과 관련된 아주 좋은 풍습이 하나 있다. 신정 때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새해를 맞는다. 아침에 항렬 순서에 따라 세배를 마친 다음, 집안의 제일 어른께서 온 가족에게 카드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그 카드는 반으로 접혀 있으며, 겉면에는 집안의 큰어른이 가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한마디씩 쓰여 있다.

  그 카드를 받은 가족들은 겉면에 쓰여 있는 말을 읽고 이를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러고는 카드 속에다가 자신의 새해 계획을 적는다. 그런 다음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새해 계획을 발표한다. 발표를 마친 다음에는 그 카드를 모두 거두어 보관해 둔다. 1년이 지나 새해 첫날이 되면 그 카드를 다시 꺼내어서, 처음에 계획한 것이 잘 이루어졌나를 점검해 본다.

  십여 년 전에 이와 같은 의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가족들이 모두 쑥스러워하면서 불편하게 여기기도 하였다. 자기 자식이나 부모 앞에서 지난해를 반성하고 새해 계획을 발표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이를 반복해서 하다 보니, 이제는 온 가족이 이에 익숙해져 스스럼없이 지난해를 반성하고 새해의 계획을 발표하곤 한다.
 

 

 이 의식의 좋은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새해 계획을 공개된 장소에서 발표함으로써 그 계획을 실천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게 되어, 가족 간에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가족들도 새해 첫날에 이런 의식을 행해, 보다 더 알찬 새해를 맞이하였으면 한다.


묵은 해를 보내고 또 새해 맞거니, 迎新除舊歲
하늘의 도 날로 힘써 쉬지를 않네. 天道日乾乾
새로운 덕 다시금 또 닦아야 하고, 更合修新德
예전 허물 다시금 또 고쳐야 하네. 端宜改舊愆
미약한 양 고요히 잘 길러야 하고, 微陽須靜養
착한 생각 쇠해지게 해선 안 되네. 善思豈因遷
나이 이미 다 늙었다 한탄치 말라. 莫恨年華晩
아흔 살에 시를 지은 사람 있다네. 作詩九十年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이 49세가 되던 해에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은 「신세음(新歲吟)」이란 시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아흔 살에 시를 지은 사람’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임금 무공(武公)을 말한다. 위 무공은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에게 자신의 잘못된 점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억계(抑戒)」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경계하였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나는 지난해에 금연과 건강관리 두 가지를 계획하였다. 그 가운데 금연도 무너졌고, 건강관리도 실천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탓에, 전보다 더 심하게 몸이 망가지고 말았다. 아마도 운동부족과 음주가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올해는 이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할 생각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을미년 새해가 이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잘 실천하는 다짐을 하고 있을 것이다.그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양의 해' 을미년 새해 첫날에 세웠던 계획을 끝까지 잘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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