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구읍의 시인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곳이 하계리인데, 바로 앞 도로를 건너면 상계리이다.
시인의 집에서 우측으로 약200m 쯤 걷다보면 상계리 골목안에 '옥천 사마소(도 유형문화재 제157호)'가 자리하고 있다.
경주 교리에서 보고, 이번이 두번째인데 1658년송시열이 쓴 『사마안(司馬案)』에 따르면 옥천 지방의 소과(小科) 이상의 급제자는 165인에 이르렀다고하니 적은 인원은 아니다.
사마소란?
조선 시대, 지방의 생원과 진사들이 조직한 사설 기관. 연산군 무렵에 지방 원로들로 구성되었던 지방 자치 기관인 향소(鄕所), 혹은 유향소(留鄕所)에 맞서 조직된 사설 기관으로, 그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많은 폐단을 빚자, 1573(선조 6)년에 유성룡(柳成龍)이 계청(啓請)하여 혁파되었다라고 다음사전에 나와 있다.
이곳은 홑처마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좌측부터 부엌, 온돌방 2칸, 마루 2칸을 두었다.
본래의 건물은 송시열(宋時烈)의 『의창중수기(義倉重修記)』에 따르면 1654년(효종 5) 의창 건물을 헐어서 세웠다고 하며, 1674년(현종 15)과 1893년(고종 30)에 중수하였다.
현판은 ‘沃州司馬所(옥주사마소)’라고 되어 있는데, 옥천군을 옥주(沃州)라고 부른 것은 1313년(고려 충선왕 5)부터 1413년(조선 태종 13)까지 였다.
사마소 뒷쪽 은행나무의 은행은 고스란히 달렸다.
예전 같으면 저게 남아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사마소 앞집 대문앞에 놓인 분재가 지나는 객을 배웅하는 것 같다.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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