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하는데 그거 왜 그런지 아나?” 박지원, <소완정기> | |
왜 우리는 공기를 인식하지 못하는가?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년-1805년)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 외교관, 소설가
우울증?
도입부
“이낙서(李洛瑞)가 책을 쌓아둔 그의 서재에 ‘소완(素玩)’이라는 편액을 걸고 나에게 이를 기념하는 문장을 청하였다.”
-서재를 만들면 이를 기념하여 스승에게 문장을 구하는 것이 당시 문화.
-소완정기(素玩亭記) 제목의 의미는?
素服 소복 white 종이 -> 책
素質 소질 본바탕
내용1
내가 힐문하기를, “무릇 물고기가 물속에서 놀지만 눈에 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인가? 보이는 것이 모두 물이라서 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지금 낙서 자네의 책이 마룻대까지 가득하고 시렁에도 꽉 차서 앞뒤 좌우가 책 아닌 것이 없으니, 물고기가 물에 노는 거나 마찬가지일세. 아무리 동생(董生)에게서 학문에 전념하는 자세를 본받고 ...장차 스스로 깨달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래서야 되겠는가?”하였다.
-지나친 책 수집 비판.
-박람강기博覽强記 비판
-당시 서울 지식인들의 분위기
낙서가 놀라며, “그렇다면 장차 어찌해야겠습니까?”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자네는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가? 앞을 바라보면 뒤를 놓치고, 왼편을 돌아보면 바른편을 빠뜨리게 되지. 왜냐하면 ... 제 눈과 공간이 너무 가까운 때문일세. 차라리 제 몸을 방 밖에 두고 들창에 구멍을 내고 엿보는 것이 나으니, 그렇게 하면 오로지 한쪽 눈만으로도 온 방 물건을 다 취해 볼 수 있네.” 했더니, 낙서가 감사해 하면서, “이는 선생님께서 저를 약(約)으로써 인도하신 것이군요.” 하였다.
1. 約: 要約, 요점, 핵심 (이서구의 영민함)
2. 거리감: 대상과 인식의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예) 나무와 숲
-비판적 성찰이 없는 인식, 몰주체적 독서법을 비판한다. Cf. 이미지의 탄생
-연암의 실제 독서량과 독서법 반영
내용2
내가 또 말하기를, “자네가 이미 약(約)의 도(道)를 알았으니, 나는 또 자네에게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관조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는가. 저 해라는 것은 가장 왕성한 양기(陽氣)일세. 온 누리를 감싸주고 온갖 생물을 길러주며, 습한 곳이라도 볕을 쪼이면 마르게 되고 어두운 곳이라도 빛을 받으면 밝아지네.
그렇지만 해가 나무를 태우거나 쇠를 녹여내지 못하는 것은 왜인가? 광선이 두루 퍼지고 정기(精氣 양기)가 흩어지기 때문일세. 만약 만리를 두루 비추는 빛을 거두어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갈 정도의 광선이 되도록 모으고 유리구슬로 받아서 그 빛을 콩알만 한 크기로 만들면, 처음에는 불길이 자라면서 반짝반짝 빛나다가 갑자기 불꽃이 일며 활활 타오르는 것은 왜인가? 광선이 한 군데로 집중되어 흩어지지 않고 정기가 모여서 하나가 된 때문일세.” 하니, 낙서가 감사해 하면서, “이는 선생님께서 저를 깨달음〔悟〕으로써 깨우쳐 주신 것이군요.” 하였다.
저차원적 독서: 눈으로 보기 以目視之
고차원적 독서: 마음으로 비추기 以心照之
집중 -> 깨달음
깨달음悟: 저자와 독자의 마음이 만나서 회통
내용3: 세상이 모두 텍스트다.
내가 또 말하기를,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들은 모두가 이 책들의 정기(精氣)이니, 제 눈과 너무 가까운 공간에서 제 몸과 물건이 서로를 가린 채 관찰하고 방 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본래 아니지.
-책과 텍스트
-책이 아니라 세상을 읽어라!
그러므로 포희씨(包犧氏)가 문(文)을 관찰할 적에 ‘위로는 하늘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땅을 관찰했다.’ ... 지금 자네는 들창에 구멍을 뚫어 오로지 한쪽 눈만으로도 다 보며, 유리구슬로 빛을 받아 마음에 깨달음을 얻었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해도 방의 들창이 비어 있지 않으면 밝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리알이 투명하게 비어 있지 않으면 정기를 모아들이지 못하지. 무릇 뜻을 분명히 밝히는 방법은 본래 마음을 비우고 외물(外物)을 받아들이며 담담하여 사심이 없는 데 있는 것이니, 이것이 아마도 소완(素玩)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였더니,
마음가짐:
마음을 열어놓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라!
마무리
낙서가 말하기를, “제가 장차 벽에 붙여 두고자 하니 선생님은 그 말씀을 글로 써 주십시오.” 하기에, 마침내 그를 위해 써 주었다.
책을 읽는 것과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동일하다.
約: 핵심파악
悟: 집중, 마음으로 독서
空: 선입관 없이 마음을 비워놓는다.
번역과 원문
완산(完山 전주(全州) 이낙서(李洛瑞 이서구(李書九))가 책을 쌓아둔 그의 서재에 ‘소완(素玩)’이라는 편액을 걸고 나에게 기(記)를 청하였다. 내가 힐문하기를,
“무릇 물고기가 물속에서 놀지만 눈에 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인가? 보이는 것이 모두 물이라서 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지금 낙서 자네의 책이 마룻대까지 가득하고 시렁에도 꽉 차서 앞뒤 좌우가 책 아닌 것이 없으니, 물고기가 물에 노는 거나 마찬가지일세. 아무리 동생(董生)에게서 학문에 전념하는 자세를 본받고 장군(張君)에게서 기억력을 빌리고 동방삭(東方朔)에게서 암송하는 능력을 빌린다 해도, 장차 스스로 깨달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래서야 되겠는가?”
하자, 낙서가 놀라며,
“그렇다면 장차 어찌해야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자네는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가? 앞을 바라보면 뒤를 놓치고, 왼편을 돌아보면 바른편을 빠뜨리게 되지. 왜냐하면 방 한가운데 앉아 있어 제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고, 제 눈과 공간이 너무 가까운 때문일세. 차라리 제 몸을 방 밖에 두고 들창에 구멍을 내고 엿보는 것이 나으니, 그렇게 하면 오로지 한쪽 눈만으로도 온 방 물건을 다 취해 볼 수 있네.”
했더니, 낙서가 감사해 하면서,
“이는 선생님께서 저를 약(約)으로써 인도하신 것이군요.”
하였다. 내가 또 말하기를,
“자네가 이미 약(約)의 도(道)를 알았으니, 나는 또 자네에게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관조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는가. 저 해라는 것은 가장 왕성한 양기(陽氣)일세. 온 누리를 감싸주고 온갖 생물을 길러주며, 습한 곳이라도 볕을 쪼이면 마르게 되고 어두운 곳이라도 빛을 받으면 밝아지네. 그렇지만 해가 나무를 태우거나 쇠를 녹여내지 못하는 것은 왜인가? 광선이 두루 퍼지고 정기(精氣 양기)가 흩어지기 때문일세. 만약 만리를 두루 비추는 빛을 거두어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갈 정도의 광선이 되도록 모으고 유리구슬로 받아서 그 정광(精光 양광(陽光))을 콩알만 한 크기로 만들면, 처음에는 불길이 자라면서 반짝반짝 빛나다가 갑자기 불꽃이 일며 활활 타오르는 것은 왜인가? 광선이 한 군데로 집중되어 흩어지지 않고 정기가 모여서 하나가 된 때문일세.”
하니, 낙서가 감사해 하면서,
“이는 선생님께서 저를 깨달음〔悟〕으로써 깨우쳐 주신 것이군요.”
하였다. 내가 또 말하기를,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들은 모두가 이 책들의 정기(精氣)이니, 제 눈과 너무 가까운 공간에서 제 몸과 물건이 서로를 가린 채 관찰하고 방 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본래 아니지. 그러므로 포희씨(包犧氏)가 문(文)을 관찰할 적에 ‘위로는 하늘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땅을 관찰했다.’고 하였고, 공자(孔子)는 포희씨가 문을 관찰한 것을 찬미하고 나서 덧붙여 말하기를, ‘가만히 있을 때는 그 말〔辭〕을 완미(玩味)한다.’ 했으니, 무릇 완미한다는 것은 어찌 눈으로만 보고 살피는 것이겠는가. 입으로 맛보면 그 맛을 알 것이요, 귀로 들으면 그 소리를 알 것이요, 마음으로 이해하면 그 핵심을 터득할 것이다.
지금 자네는 들창에 구멍을 뚫어 오로지 한쪽 눈만으로도 다 보며, 유리구슬로 빛을 받아 마음에 깨달음을 얻었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해도 방의 들창이 비어 있지 않으면 밝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리알이 투명하게 비어 있지 않으면 정기를 모아들이지 못하지. 무릇 뜻을 분명히 밝히는 방법은 본래 마음을 비우고 외물(外物)을 받아들이며 담담하여 사심이 없는 데 있는 것이니, 이것이 아마도 소완(素玩)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였더니, 낙서가 말하기를,
“제가 장차 벽에 붙여 두고자 하니 선생님은 그 말씀을 글로 써 주십시오.”
하기에, 마침내 그를 위해 써 주었다.
完山李洛瑞。扁其貯書之室曰素玩。而請記於余。余詰之曰。夫魚游水中。目不見水者。何也。所見者皆水。則猶無水也。今洛瑞之書盈棟而充架。前後左右無非書也。猶魚之游水。雖效專於董生。助記於張君。借誦於東方。將無以自得矣。其可乎。洛瑞驚曰。然則將奈何。余曰。子未見夫索物者乎。瞻前則失後。顧左則遺右。何則。坐在室中。身與物相掩。眼與空相逼。故爾莫若身處室外。穴牖而窺之。一目之專。盡擧室中之物矣。洛瑞謝曰。是夫子挈我以約也。余又曰。子旣已知約之道矣。又吾敎子。以不以目視之。以心照之可乎。夫日者。太陽也。衣被四海。化育萬物。濕照之而成燥。闇受之而生明。然而不能爇木而鎔金者。何也。光遍而精散故爾。若夫收萬里之遍照。聚片隙之容光。承玻璃之圓珠。規精光以如豆。初亭毒而晶晶。倐騰焰而熊熊者。何也。光專而不散。精聚而爲一故爾。洛瑞謝曰。是夫子警我以悟也。余又曰。夫散在天地之間者。皆此書之精。則固非逼礙之觀。而所可求之於一室之中也。故包犧氏之觀文也。曰仰而觀乎天。俯而察乎地。孔子大其觀。文而係之曰。㞐則玩其辭。夫玩者。豈目視而審之哉。口以味之。則得其旨矣。耳而聽之。則得其音矣。心以會之。則得其精矣。今子穴牖而專之於目。承珠而悟之於心矣。雖然。室牖非虛。則不能受明。晶珠非虛。則不能聚精。夫明志之道。固在於虛而受物。澹而無私。此其所以素玩也歟。洛瑞曰。吾將付諸壁。子其書之。遂爲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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