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래거상(後來居上) - 나중에 온 사람이 윗자리를 차지하다
[뒤 후(彳/6) 올 래(人/6) 살 거(尸/5) 윗 상(一/2)]
사람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후진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앞으로 올 사람이 오늘의 선배들보다 더 훌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도 능히 나올 수 있다. 그럴 땐 靑出於藍(청출어람)이라며 스승이 더 흐뭇해하기도 한다. 속담성어 後生角高(후생각고)와 같은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나중에 생긴 것이 먼저 것보다 훨씬 나을 때 비유하는 말로 잘 알려졌다. 뒤에 오는 자(後來)가 윗자리를 차지한다(居上)는 이 말도 나중에 발탁된 사람이 훌륭하게 되어 윗자리에 앉게 되는 것을 이른다.
중국 前漢(전한)때의 汲黯(급암, 黯은 어두울 암)은 武帝(무제)가 태자였을 때 가르친 유능한 선비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황제 앞에서도 바른 말을 서슴지 않았으므로 모두들 꺼렸다. 직언을 좋아하는 왕은 없는 법이라 결국 무제의 미움을 사서 급암은 東海(동해)태수로 좌천됐다. 하지만 급암이 그곳서도 잘 다스려 명망을 얻었기 때문에 다시 측근으로 복귀하게 됐다.
급암이 조정에 와서 보니 황제에게 아부하는 자들이나 이전에 수하에 있던 사람까지 모두 자신보다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다. 바른말하는 성격은 변하지 않아 어느 날 황제에게 나아가 인사정책을 비판했다. ‘폐하께서 신하를 등용하는 방법은 장작을 쌓아 올리는 방식과 같으니 뒤의 것이 위에 놓이나이다(陛下用群臣如積薪耳 後來者居上/ 폐하용군신여적신이 후래자거상).’ 薪은 섶 신. ‘史記(사기)’의 汲鄭列傳(급정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제는 이런 급암을 어떻게 대우했을까. 속이 좁아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참지 못한다고 괘씸하게 여겼지만 사후에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아들과 동생들까지 벼슬을 내렸다. 급암이 지적한 것과 같이 처음엔 인사가 잘못된 것을 불평하던 말에서 나중엔 뒤떨어졌던 것이 앞서거나 후진들이 낡은 세대를 추월하는 것에 비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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