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20강
비단옷을 입으면 겉옷을 걸치는 이유
문채가 드러나는 것을 감춘다.
제33장. 無聲無臭章(무성무취장)
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시왈 의금상경 오기문지저야
故 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
고 군자지도 암연이일장 소인지도 적연이일망
君子之道 淡而不厭 簡而文
군자지도 담이불염 간이문
溫而理 知遠之近 知風之自 知微之顯 可與入德矣
온이리 지원지근 지풍지자 지미지현 가여입덕의
詩云 潛雖伏矣 亦孔之昭
시운 잠수복의 역공지소
故 君子 內省不疚 無惡於志 君子之所不可及者 其唯人之所不見乎
고 군자 내성불구 무오어지 군자지소불가급자 기유인지소불견호
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故 君子 不動而敬 不言而信
시운 상재이실 상불괴우옥루 고 군자 부동이경 불언이신
詩曰 奏假(格)無言 時靡有爭 是故 君子 不賞而民勸 不怒而民威於鈇鉞
시왈 주격(격)무언 시미유쟁 시고 군자 불상이민권 불노이민위어부월
詩曰 不顯惟德 百辟其刑之 是故 君子 篤恭而天下平
시왈 불현유덕 백벽기형지 시고 군자 독공이천하평
詩云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시운 여회명덕 불대성이색
子曰 聲色之於以化民 末也
자왈 성색지어이화민 말야
詩云 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시운 덕유여모 모유유륜 상천지재 무성무취 지의
제33장. 無聲無臭章(무성무취장)
시詩에 가로되, "화려한 비단옷을 입었네. 그 위에 망사 덧옷을 드리웠네." 이 노래가사는 그 문체가 너무 과도하게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언뜻 보면 어두운 듯하지만 날이 갈수록 찬연하게 빛나며, 소인의 도는 언뜻 보면 찬란한 듯하지만 날이 갈수록 빛이 사라진다. 군자의 도는 맛이 담박하지만 싫증나지 않으며, 간결하지만 치열한 질서가 있으며, 온화한 빛이 흐리게 감돌지만 그 내면에 정연한 조리가 있다. 아무리 먼 것도 가까운 데서 시작함을 알고,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그것이야말로 잘 드러나는 것임을 안다고 나아가 덕을 닦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詩는 말한다. "물고기 물에 잠겨 깊게 꼭꼭 숨어있네. 그렇지만 물이 맑아 너무도 밝게 잘 보여라!" 이와같이 내면을 숨길 길이 없으므로 군자는 안으로 살펴보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그 마음의 지향하는 바가 미움 살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범인들이 미치지 못하는 군자의 훌륭한 점은 오로지 타인들이 보지 못하는 그 깊은 내면에 있는 것이로다! 시詩는 말한다. "그대 방에 홀로 있을 때라도 하느님께 비는 제단 있는 저 구석에서 남이 안 본다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는 말지어다." 그러므로 군자는 움직이어 자기를 뽐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공경하고,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도 사람들이 믿음을 준다. 시詩에 가로되, "열조烈祖께 제사음악을 연주하니 하느님께서 내려오시지만, 제사지내는 이와 하느님, 모두 말이 없어라." 그러므로 군자는 백성들에게 구태여 상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은 서로 기뻐하며 권면하고, 군자는 진노를 보이지 않아도 백성들은 망나니의 큰 도끼를 두려워하는 것보다도 더 그의 위세를 존중한다. 시詩에 가로되, "아아! 크게 빛나는 선왕의 덕이시여! 뭇 제후들이 그 덕을 본받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공경함을 더욱더욱 돈독히 하면 천하가 평화스럽게 되는 법이다." 시詩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문왕에게 이르셨도다. 나는 명덕을 가진 자를 사랑하노라. 나는 큰소리치고 얼굴빛에 감정을 노출시키는 그런 자를 귀하게 여기지를 않노라."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소리와 얼굴빛은 백성을 교화시킴에는 말엽적인 것이다." 또 시詩에 가로되, "덕이란 가볍기가 탈과 같아서 진실로 실행키가 어렵다." 그렇지만 "털"이라고 말해도 그것은 실오라기만큼의 무게라도 있어 비교될 수 있지 아니 한가? 문왕을 찬양하는 노래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라!" 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표현이야말로 더 이상 비교할 바 없이 지극하다 할 것이다.
[ 도올 김용옥 중용 인간의 맛 중에서 ]
33. The Book of Odes says:
She covered her brocade gown
With a plain robe.
She did not want to show off her finery.
Therefore the Superior Man acts in a way such that he conceals himself,
yet every day gains in luminosity.
The inferior man shows himself and every day loses luminosity.
The Way of the Superior Man is tasteless, yet you never get sick of it.
Simple, yet refined, warm-hearted yet principled.
He knows the closeness of the distant, knows the origin of customs.
He knows the manifestation of the subtle and can enter into virtue.
The Book of Odes says:
Though the fish dive to the bottom
They can be seen.
Hence the Superior Man, finding no perversity within himself,
has no evil in his intentions.
Those things that the Superior Man is unable to attain to are exactly the things
that others cannot perceive.
The Book of Odes says:
While in your own room,
You should not be ashamed if it were
Opened to the world.
Therefore the Superior Man does not move, and yet is respected.
He does not speak, and yet is believed.
The Book of Odes says:
Make your offerings without words,
And there will never be any disagreement.
Therefore the Superior Man receives no awards, yet the people promote him.
He is not angry, yet they are more in awe of him than they are of lethal weapons.
The Book of Odes says:
Only if you don't show it
Can you develop virtue.
All the princes are constrained by this.
Therefore the Superior Man, through his generosity and courtesy,
pacifies the realm.
The Book of Odes says:
I cherish shining virtue
Not big noises and flashy colors.
Confucius said:
"In terms of transforming people, sounds and appearances don't amount to much."
The Book of Odes says:
Virtue is as light as a hair.
Yet even a hair possesses the great principles.
In the functions of Supreme Heaven, there are no sounds or smells.
It is "perfect."
[ 글로벌 중용 중에서 ]
第三十三章 (제33장)
『詩曰 衣錦尙絅이라하니 惡其文之著也라 故로 君子之道는 闇然而日章하고 小人之道는 的然而日亡하나니 君子之道는 淡而不厭하며 簡而文하며 溫而理니 知遠之近하며 知風之自하며 知微之顯이면 可與入德矣리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 하였으니, 그 문채가 너무 드러남을 싫어해서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의 도(道)는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고, 소인(小人)의 도(道)는 선명하되 날로 없어지는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는 담박하되 싫지 않으며, 간략하되 문채나며, 온화하되 조리가 있으니, 멂이 가까운 데로부터 시작함을 알며, 바람이 부터 일어남을 알며, 은미함이 드러남을 안다면, 더불어 덕(德)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前章엔 言聖人之德이 極其盛矣요 此는 復自下學立心之始言之하고 而下文에 又推之하여 以至其極也라 詩는 國風衛碩人, 鄭之丰에 皆作衣錦褧衣하니 褧은 絅同하니 선衣也라 尙은 加也라 『古之學者는 爲己주:고지학자위기』라 故로 其立心如此라 尙絅故로 闇然하고 衣錦故로 有日章之實이라 淡簡溫은 絅之襲於外也요 不厭而文且理焉은 錦之美在中也라 小人은 反是하니 則暴於外而無實以繼之라 是以로 的然而日亡也라 遠之近은 見於彼者由於此也요 風之自는 著乎外者本乎內也요 微之顯은 有諸內者形諸外也라 有爲己之心하고 而又知此三者면 則知所謹而可入德矣라 故로 下文에 引詩하여 言謹獨之事하시니라』
『 앞 장(章)에서는 성인(聖人)의 덕(德)이 그 성(盛)함을 다함을 말씀하였고, 여기서는 다시 하학(下學)[초학(初學)]이 마음을 세우는 시초로부터 말씀하였으며, 아래 글에 또 이것을 미루어 그 지극함을 다하였다. 시(詩)는 국풍(國風)의 〈위풍(衛風) 석인편(碩人篇)〉과 〈정풍(鄭風) 봉편(丰篇)〉이니, 여기에 모두 의금경의(衣錦褧衣)로 되어 있는바, 경(褧)은 경(絅)과 같으니, 홑옷이요, 상(尙)은 더함이다. 옛날의 학자(學者)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學問)을 하였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새움이 이와 같았다. 홑옷을 덧입었기 때문에 은은하고, 비단옷을 입었기 때문에 날로 드러나는 실제가 있는 것이다. 담박하고 간략하고 온화함은 홑옷을 밖에 껴입은 것이요, 싫지 않고 문채나며 또 조리가 있음은 비단의 아름다움이 속에 있는 것이다. 소인(小人)은 이와 반대이니, 밖에 드러나되 실제로써 계속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선명하되 날로 없어지는 것이다. 원지근(遠之近)은 저기에 나타남이 여기에 말미암는 것이요, 풍지자(風之自)는 밖에 드러남이 안에 근본하는 것이요, 미지현(微之顯)은 안에 간직한 것이 밖에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학문(學問)을 하려는 마음이 있고, 또 이 세 가지를 알면 삼갈 바를 알아 덕(德)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근독(謹獨)[신독(愼獨)]의 일을 말씀하셨다.』
『詩云 潛雖伏矣나 亦孔之昭라하니 故로 君子는 內省不疚하여 無惡於志하나니 君子之所不可及者는 其唯人之所不見乎인저』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잠긴 것이 비록 엎드려 있으나 또한 심히 밝다.”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안으로 살펴보아 하자(瑕疵)가 없어서 마음에 미움[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니, 군자(君子)의 미칠 수 없는 점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바에 있는 것이다.』
『詩는 小雅正月之篇이라 承上文하여 言莫見乎隱, 莫顯乎微也라 疚는 病也라 無惡於志는 猶言無愧於心이니 此는 君子謹獨之事也라』
『 시(詩)는 〈소아(小雅) 정월편(正月篇)〉이다. 위 글을 이어 숨은 것보다 드러남이 없고, 은미한 것보다 나타남이 없음을 말씀하였다. 구(疚)는 병(病)[하자(瑕疵)]이다. 마음에 미움이 없다는 것은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과 같다. 이는 군자(君子)가 신독(愼獨)하는 일이다.』
『詩云 相在爾室한대 尙不愧于屋漏라하니 故로 君子는 不動而敬하며 不言而信이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네가 <홀로> 방안에 있음을 보니, 여기서도 방 귀퉁이에 부끄럽지 않다.”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동(動)하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게 한다.』
『詩는 大雅抑之篇이라 相은 視也라 屋漏는 室西北隅也라 承上文하여 又言 君子之戒謹恐懼가 無時不然하여 不待言動而後敬信하니 則其爲己之功이 益加密矣라 故로 下文에 引詩하여 幷言其效하시니라』
『 시(詩)는 〈대아(大雅) 억편(抑篇)〉이다. 상(相)은 봄이다. 옥루(屋漏)는 방의 서북쪽 귀퉁이이다. 위 글을 이어, 또 군자(君子)의 경계하고 두려워함이 때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어, 말과 행동을 기다리지 않고도 공경하고 믿게 함을 말씀하였으니, 자신을 위하는 공부가 더더욱 치밀하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 《시경(詩經)》을 인용하고, 아울러 그 효험을 말씀하셨다.』
『詩曰 奏假(格)無言에 時靡有爭이라하니 是故로 君子는 不賞而民勸하며 不怒而民威於鈇鉞이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신명(神明)의 앞에> 나아가 신명(神明)을 감격(感格)할 때에 말이 없어, 이에 다투는 이가 있지 않다.” 하였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상(賞)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권면하며, 노(怒)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작도와 도끼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詩는 商頌烈祖之篇이라 奏는 進也라 承上文而遂及其效하여 言 進而感格於神明之際에 極其誠敬하여 無有言說而人自化之也라 威는 畏也라 鈇는 ±\斫刀也요 鉞은 斧也라』
『 시(詩)는 〈상송(商頌) 열조편(烈祖篇)〉이다. 주(奏)는 나아감이다. 위 글을 이어 마침내 그 효험을 언급하여, 나아가 신명(神明)을 감격(感格)[감동(感動)]할 즈음에 정성과 공경을 지극히 하여 말함이 없어도 사람들이 스스로 교화(敎化)됨을 말씀한 것이다. 위(威)는 두려워함이다. 부(鈇)는 여물을 써는 작도요, 월(鉞)은 도끼이다.』
『詩曰 不顯惟德을 百辟其刑之라하니 是故로 君子는 篤恭而天下平이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드러나지 않는 덕(德)을 백벽(百辟)『[여러 제후(諸侯)]』들이 법받는다.” 하였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공손함을 돈독히 함에 천하(天下)가 평해지는 것이다.』
『詩는 周頌烈文之篇이라 不顯은 說見二十六章하니 此는 借引以爲幽深玄遠之意라 承上文하여 言 天子有不顯之德하여 而諸侯法之면 則其德愈深而效愈遠矣라 篤은 厚也니 篤恭은 言不顯其敬也라 篤恭而天下平은 乃聖人至德淵微自然之應이니 中庸之極功也라』
『 시(詩)는 〈주송(周頌) 열문편(烈文篇)〉이다. 불현(不顯)은 해설이 26장(章)에 보이니, 여기서는 이것을 빌려 인용해서 그윽하고 깊으며 현원(玄遠)한 뜻으로 삼은 것이다. 위 글을 이어서, 천자(天子)가 드러나지 않는 덕(德)이 있어 제후(諸侯)들이 법받으면 그 덕(德)이 더욱 깊어 효험이 더욱 원대(遠大)함을 말씀하였다. 독(篤)은 두터움이니, 독공(篤恭)은 드러나지 않는 공경을 이른다. 공손함을 돈독히 함에 천하(天下)가 평해짐은, 바로 성인(聖人)의 지극한 덕(德)이 깊고 은미하여 자연히 나타나는 효응(效應)이니, 중용(中庸)의 지극한 공효(功效)이다.』
『詩云 予懷明德의 不大聲以色이라하여늘 子曰 聲色之於以化民에 末也라하시니라 詩云 德å4如毛라하나 毛猶有倫하니 上天之載 無聲無臭아 至矣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나는 밝은 덕(德)의 음성과 얼굴빛을 대단찮게 여김을 생각한다.” 하였는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음성과 얼굴빛은 백성을 교화시킴에 있어 지엽적인 것이다.” 하셨다. 《시경(詩經)》에 ‘덕(德)은 가볍기가 터럭과 같다.’ 하였는데, 터럭도 오히려 비교할 만한 것이 있으니,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는 표현이어야 지극하다 할 것이다.』
『詩는 大雅皇矣之篇이니 引之하여 以明上文所謂不顯之德者 正以其不大聲與色也라 又引孔子之言하여 以爲聲色은 乃化民之末務어늘 今但言不大之而已면 則猶有聲色者存하니 是未足以形容不顯之妙라 不若烝民之詩所言德å4如毛하니 則庶乎可以形容矣로되 而又自以爲謂之毛면 則猶有可比者하니 是亦未盡其妙라 不若文王之詩所言上天之載無聲無臭니 然後에 乃爲不顯之至耳라 蓋聲臭는 有氣無形하여 在物에 最爲微妙어늘 而猶曰無之라 故로 惟此可以形容不顯篤恭之妙니 非此德之外에 『又別有是三等주:우별유시삼등』然後爲至也니라』
『 시(詩)는 〈대아(大雅) 황의편(皇矣篇)〉이니, 이것을 인용하여 위 글의 이른바 불현지덕(不顯之德)은 바로 음성과 얼굴빛을 대단찮게 여김을 밝혔으며, 또다시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음성과 얼굴빛은 백성을 교화함에 있어 지엽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제 다만 대단찮게 여긴다고 말했을 뿐이니, 그렇다면 이것은 오히려 음성과 얼굴빛이 남아 있는 것이어서 불현(不顯)의 묘함을 형용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이는 〈증민편(烝民篇)〉에 말한 ‘덕(德)은 가볍기가 터럭과 같다.’고 한 것만 못하니, 이렇게 말하면 거의 형용했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또 스스로 이르기를 “터럭이라고 말하면 오히려 비교할 만한 것이 있으니, 이 또한 그 묘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문왕시(文王詩)〉에 말한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 한 것만 못하니, 이렇게 표현한 뒤에야 불현(不顯)의 덕(德)을 지극히 형용한 것이 된다.” 하였다. 소리와 냄새는 기운만 있고 형체가 없어, 물건에 있어 가장 미묘한 것인데도 오히려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오직 이 말이 불현(不顯), 독공(篤恭)의 묘함을 형용할 수 있는 것이니, 이 덕(德) 이외에 또 별도로 이 세 가지 등급이 있은 뒤에야 지극함이 된다고 말씀한 것은 아니다.』
『右는 第三十三章이라 子思因前章極致之言하여 反求其本하사 復自下學爲己謹獨之事로 推而言之하여 以馴致乎篤恭而天下平之盛하시고 又贊其妙하여 至於無聲無臭而後已焉하시니 蓋擧一篇之要而約言之라 其反復丁寧示人之意가 至深切矣시니 學者其可不盡心乎아』
『 우(右)는 제33장(第三十三章)이다. 자사(子思)께서 앞 장(章)의 극치를 다한 말씀을 인하여 그 근본을 돌이켜 찾아, 다시 하학(下學)이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고 홀로를 삼가는 일로부터 미루어 말씀하여, 공손함을 돈독히 함에 천하가 평해지는 성(盛)함을 순치(馴致)하고, 또 그 묘함을 칭찬하여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음에 이른 뒤에야 그만 두셨으니, 이는 한 편(篇)의 요점을 들어요약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반복(反復)하고 정녕(丁寧)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뜻이 지극히 깊고 간절하니, 배우는 자가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大學.中庸 集註 참조 ]
EBS 기획특강 -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
https://www.youtube.com/watch?v=3yhFW-TlWcA&list=PLII5RgtAZJ62v1DQLSiyMG-qLZ5mYzyxX&index=15
위대한 중용도 "무성무취無聲無臭, 지의至矣"라는 말로 끝난다. 전편이 애기한 모든 주제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지극한 무형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다. 공자예찬도 사라지고 오직 평범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일상적 삶의 무형의 가치만 남는 것이다. 제1장에서 말한 "막현호은莫現呼隱, 막현호미莫顯乎微" 즉 은미한 신독愼獨의 세계로 회귀한 것이다. 개인의 고독! 누구도 형체화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의 덕의 쌓임! 밤새 소리없이 소록소록 쌓이는 백설처럼 인간의 내면에 쌓이는 신독의 덕성이야 말로 중용의 궁극적 주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도올 김용옥 중용 인간의 맛 중에서 -
중용 1~33장, 전체 20강 끝이났습니다..
끝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요.
5월 한달동안 중용을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그리고, 다음 다시 읽어볼 시간을 기대해봅니다.)
도올선생님 강의도 듣고, 전호근교수님 강의도 듣고...
한달만에 중용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지만..
어렵지만은 중용에 담고 있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고...
"중용집주와 중용 인간의 맛"를 한번 읽어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래도 뿌듯함을 느낍니다.
6월달부터는 시경을 시작합니다.
시경 또한 어렵다고 합니다.
함께 읽으면서, 많은 지도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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