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세상

[스크랩] 전주 아석재의 묵향

강나루터 2017. 5. 24. 06:37

 

 

 

 

 전주 교동의 남천교 너머 완산칠봉으로 해가 시나브로 넘어가고 있다. 남천교 위에 세워진 청연루(晴烟樓). 이는 완산팔경 가운데 하나가 ‘한벽청연(寒碧晴煙, 승암산 기슭 한벽당과 전주천을 휘감고 피어오르는 푸른 안개)’에서 비롯‘, 한벽’과‘청연’을 댓구로 사용, 현 송하진 전주시장이 쓴 글씨다. 다리 위쪽으로 한벽당이 있으니, 그 아래쪽에다 청연루를 지은 것이다.
 바로 그 인근에 전주시 강암서예관과 전주시장의 부친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년)선생이 살았던 ‘아석재(我石齋)’가 있다.
 중국 송나라의 주희가 지은 시 ‘琴書四十年 幾作山中客 一日茅棟成 居然我泉石’의 마지막 구에서 ‘아(我)’자와 ‘석(石)’ 자 두 글자 따서 아석재(我石齋)으로 작명했다. 이는 ‘물과 돌이 있는 데서 유연하게 살리라’라는 뜻을 담고 잇다. 현재 강암고택 아석재(我石齋)에는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아석재(我石齋)’라는 소전 손재형 선생의 현판 2점이 마루 위에 걸려 있다.
 전주강암서예학술재단(이사장 송하철)이 13일 오후 7시 30분 한옥마을 ‘강암고택’ 아석재 한옥체험관에서 제1회 한옥마을 체험 행사를 갖는다.
 아석재는 1935년에 신축, 80여 년이 지난 건물로, 강암선생께서 1965년에 이거한 후 한 번도 개축한 바 없었지만 붕괴의 위험이 상존해 개축, 지난 4월말 준공을 한 후 민박체험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날 행사를 진행한다.
 시태봉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전 완산고 교장)의 사회로 진행, 임실 필봉농악의 사물놀이(단장 최만, 김한, 윤준호, 윤슬기, 성영옥) 공연을 비롯, 서예가 김두경씨의 퍼포먼스 ‘아석재의 묵향’, 이양자(호남살풀이춤 이수자)씨의 가야금산조, 장인숙 널마루무용단장의 ‘향연’ , 기성희(광주시립국악단 단원)의 판소리 ‘칠월의 축제’(동헌경사 대목, 고수 최만), 이양자씨의 춤 ‘백모란 피고지고’ 등으로 계속된다.
 송하철 이사장은 “강암 송성용선생은 호남이 않은 한국 서예계의 거목으로, 서예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며 “아석재의 개축 준공을 맞아 강암선생께서 남긴 서예정신과 선비정신을 기리고자 우리의 전통 가락을 중심으로 조촐한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강암 송성용선생은 김제출생 유학자 유재 송기면(裕齋 宋基冕)의 3남으로, 초기엔 구양순 미원장 동기창 등의 서체를 즐겨 쓰고, 이후 황산곡 유석암 하소기 추사 등의 서예 5체(전,예,해,행,초)를 두루 섭렵, 오늘의 강암서체를 확립했다. 특히 구체신용(舊體新用)사상에 따라 고법(古法)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 조형미를 갖춘 서예세계를 구축한 가운데, 특히 자신의 삶과도 닮은 대나무 그림은 독보적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고 연묵회창설(1967년) 지도 및 연구발표회(연 30회)와 함께 8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유도회 전라북도본부 위원장, 예술의전당 자문위원. 한국유교학회 이사. 간재사상연구회장 등을 염임했다.
그는 1993년 강암서예학술재단을 설립하고, 1995년 강암서예관 건립을 위해 서화 등 소장품1,162점과 토지 등을 전주시에 기부한 바 있으며, 강암송성용서집, 강암천자문서, 강암묵적(2). 강암묵적(3), 강암송성용 시문.행장 등을 발간했다.
 현재 아석재 한옥체험관은 4실 12명(대형 1실 5인실, 중형 1실 3인실 소형 2실 각 2인실)이 수용 가능하며,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285-7442, 284-7095. / 이종근기자


 

출처 : 이종근의 한국문화 스토리
글쓴이 : 종근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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