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스크랩] 굳센 소나무

강나루터 2017. 9. 7. 02:50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논어' 자한(子罕)편에 '세한(歲寒:날씨가 추워짐)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소나무를 선비의 처신과 비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조선 말 동부승지를 역임했던 항일 문신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는 1907년 일본군이 도보로 연행하려 하자 "선비를 죽일 수는 있지만 욕보일 수는 없다(士可殺不可辱)"고 호통치며 가마를 타고 나가 그 길로 살해 당했다.

이남규는 '송포기(松圃記)'에서 "저 소나무는 홀로 우뚝 치솟아서 차라리 꺾일지언정 굽어지지는 않으며, 눈과 서리도 옮길 수 없고, 비와 바람도 흔들지 못한다. 사철을 꿰뚫고 천추의 세월에도 그 가지와 잎을 바꾸지 않는 것은 뜻한 바(有心)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도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다'고 한 것이다"고 썼다.

같은 충청도 예산 출신이지만 남인이었던 이남규와 달리 노론이었던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헌종 6년(1840)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와 관련해 제주 대정현(大靜縣)에 유배된다. 그러자 친구도 다 끊어졌는데 역관 출신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중국의 귀한 책을 자주 보내주자 고마운 마음에 그린 것이 '세한도(歲寒圖)'다. 그 발문에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해외의 초췌하고 마른 사람에게 보냈다'면서 역시 공자의 이 구절을 인용했다.

성삼문의 시처럼 소나무는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하지만 아무 환경에서나 사는 잡초 같은 나무가 아니다. 옮겨 심기가 가장 어려운 나무로서 자신이 자란 토질과 다르거나 심지어 가지의 방향만 달라도 죽기 일쑤다. 그렇게 까다롭지만 일단 정착하면 추운 겨울을 버티기에 선비들이 더욱 사랑한 것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노래한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강인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어려운 한 해가 다 가는 시점에서, 또 더욱 어려우리라는 내년의 문턱에서 겨울 소나무를 바라본다.


 

입력 : 2008.12.29 22:02 / 수정 : 2008.12.29 22:59
출처 : 나무이야기,꽃이야기
글쓴이 : 이팝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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