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미인을 얻는다
고구려 문자명왕의 아들로 후일 안장왕이 된 흥안이
백제에게 빼앗긴 지금의 고양지방인 계백현을 되찾기 위해 미복을 하고 정탐을 나갔다가
그곳 저잣거리에서 미녀 한주를 만나고 준수한 흥안의 외모에 끌려 서로 눈빛으로 호감을 나누고
후일을 기약하며 흥안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본국으로 돌아가 군사를 이끌고 빼앗긴 계백현을 수복할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ㆍ그러나 막상 고구려로 돌아갔지만 마땅한 묘책이 없어 세월이 흐르는 사이
부왕인 문자명왕이 서거하고 흥안이 권좌에 올랐는데 오매불망 잊지 못한 한주낭자 생각에 문무백관을 모아 놓고
고양땅 수복계획을 천명했는데 고구려군의 희생을 최소화 하기 위해 특공대를 잠입시켜 적지휘부를 타격하고
그와 연계하여 국경에 포진한 주력군을 투입 섬멸전을 펼치기로 하고 특공임무를 수행할 지휘관을 물색했는데
소수의 군사로 적진에 침투했을때 목숨을 잃을 위험이 커 아무도 나서지 않았는데 을밀장군이 정예군사 20명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자청했다ㆍ왕이 그 충정과 의기가 너무 가상하여 이르길 " 경이 이 중차대한 대업을 완수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 고 말하자 을밀장군이 답하길 " 전하 상은 사양하겠습니다. 대신 소신이 빼앗긴 땅을 수복하는데
큰 공을 세우면 안학공주를 배필로 삼게 해주소서" 라고 청하고 왕이 흔쾌히 허락 을밀은 적진으로 잠행하여
그곳 태수의 생일날에 맞춰 풍물패로 위장 창검을 풍물속에 감추고 생일축하 풍물놀이를 허던중 주흥이 무르익었을 때
창검을 꺼내어 호위군사들을 척살하고 불을 피워 본진에 알리고 대군이 진격하여 계백현 주둔 백제군사를 궤멸시카고
빼앗긴 땅을 수복함은 물론 오매불망 그리던 한주아가씨도 만나 고구려로 데려가 귀히 대우했고 약속한
을밀장군과 안학공주도 배필로 맺어 주었다는데 을밀장군과 안학공주가 대동강변을 거닐다 그곳에 있는 작은 정자에 앉아
사랑을 나눈다는 소문을 듣고 왕이 정자의 규모와 품격을 아주 멋스럽게 꾸미고 을밀장군의 이름을 따서 정자이름을
을밀대로 명명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설이 있으나 역사의 중요성에 비추어 사초에 기록할만한 중요사안이 아닌 탓에
그 진위는 알수 없으나 을밀장군이 실존했던 인물이고 계백현도 수복후에 왕을 만난 고장 이라는 의미의 왕봉현으로
고쳤다는 기록에 미루어 사실에 가깝다는 사가들의 역사적 평가는 타당한듯하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자청한 을밀장군의 용기가 공주를 배필로 삼을수 있었다는 귀결에서 용기로 무장한
값진 희생없이는 미인을 얻을수 없다는 역사속의 일화를 예로 들었는데 사랑을 위하여 왕관을 버린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사랑도 인류역사가 존속하는 한 순애의 백미로 남아있을것이나 돈으로 사고 파는 오늘날의 사랑은
하도 추하고 저급하여 아득한 옛날 그 아름다운 순애보를 돌아보는것 마저 염치없고 부끄러우니 편리와 풍요는 빛나건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전설이 되고만 세태가 너무 서글프게 느껴지는 오늘 .
사랑을 가격표 매긴 공산품 처럼 거래하는 賤民的 인 사랑 그걸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혀도 될런지?.
차라리 매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런지? 천하고 냄새나는 서글픈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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