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이야기

[스크랩] 들깨 예찬/신화자

강나루터 2016. 10. 24. 05:06

 

 

들깨 예찬

 

신 화 자

 

들깨 꽃 진자리에 들깨 알 가득 들어있습니다. 방마다 씨알이 여물고 있습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떠들썩합니다. 줄기며 이파리 꽃 열매꼬투리에서 들깨는 특별한 냄새를 풍깁니다. 향기 나는 풀 허브 중에서도 뚜렷하게 자신의 냄새를 가진 식물을 꼽으라면 나는 우선 들깨를 꼽으렵니다.

 

늦은 봄 들깨 모를 붓지요. 들깨는 씨를 뿌렸다가 모종을 하기 때문입니다. 들깨농사는 게으른 농부처럼 할 일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할 일입니다. 늦은 듯 심으면 오히려 서둘러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가 실하기 때문입니다.

 

들깨농사는 마른 땅 거칠고 거름기 없는 곳에 아무렇게나 꽂아 두어도 잘 살아납니다. 왕 가뭄에 모종을 했어도 두어 번 등을 두드려 주기만 하면 된답니다. 들깨는 워낙 생존 의욕이 강해서 새 뿌리가 잘 내립니다. 반드시 자리를 떠 옮겨 심어야 하지요.

 

국화가 줄기를 꺾어 꽂아 주어야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들깨는 모종을 해야 깨알이 실하답니다. 들깨모종은 묵은 뿌리가 뽑혀 잘릴 때 새 뿌리가 돋으면서 삶의 자극으로 삼습니다. 누구나 어려서 홍역을 앓듯 뿌리 몸살을 한 차례 겪어야 튼튼하게 잘 자랍니다. 한 동안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살아가는 힘을 키우지요.

 

들깻잎으로 쌈을 쌉니다. 밥을 넣고 고기를 넣어 쌈을 쌉니다. 복을 담고 사랑을 담아서 쌈을 쌉니다. 서로 어울리고 섞여 한 입 가득 고소한 향기가 넘쳐납니다.

 

들깨 밭에 바람이 불면 들깻잎이 서로 몸을 부딪쳐 향기로운 바람을 만들지요. 향기로운 가을바람입니다. 들깨 밭에서는 들깨 향기가 식욕을 돋웁니다. 잔칫집처럼 화려한 냄새입니다. 들깨 밭 깻송이 향기에 취해서 덜 여문 깻송이를 땁니다. 튀김가루 밀가루 찹쌀가루, 되는대로 적당히 버무려 김 올린 찜 냄비에서 찌고 가을볕에 말립니다. 튀김 냄비 속에서 하얗고 뽀얗게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날 향기로운 꽃이 됩니다.

들깻잎 노릇노

릇 가을이 여물 때, 씨알이 잘 여문 들깨를 베어 눕힙니다. 잘 마른 들깨 짚을 두드려 깨알을 털어냅니다. 깨알이 가을 햇살 위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날은 온 몸에 들깨향이 듬뿍 묻습니다. 가을 들판에서 묻어 온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들깨를 씻어 햇볕에 말립니다. 기름집에서 일하는 이들은 날마다 깨가 쏟아지게 고소한 일만 있을 것 같습니다. 볶은 깨알들이 기름틀 속에 들어가서 기름을 쏟아 냅니다. 빗방울이 모여 시내물이 되는 것처럼 작은 깨알이 모여 기름병을 채웁니다. 언제나 기름집 근처에선 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노랗게 짙은 빛깔 향기 짙은 들기름에서는 꿀보다 젖보다 진한 향내가 납니다.

 

들기름 넣고 지지고 볶아서 맛을 냅니다. 살아가는 맛을 냅니다. 피시식, 피식! 탁!탁!탁! 들깨 짚이 아궁이 속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향을 사르는 듯 타는 냄새 그 향기로운 냄새를 아시는지요. 농촌에서 가을은 거둘 게 많고 거둠의 뒷정리 끝은 곡식을 털어 내고 남은 짚가리들입니다. 아궁이에 땔감으로 들깨 짚만큼 좋은 게 또 있었을까요? 불땀이 좋지요. 게다가 향을 사르는 듯 향기로운 냄새가 행복에 겨울 정도입니다. 빨갛게 익어 사그라지는 불꽃을 보았나요. 불꽃은 삭아서 뽀얀 재가 되었지요.

 

들깻묵 썩어 거름되는 냄새를 아시나요. 진하고 독한 냄새일수록 좋은 거름이 되는 이치를 자연은 배우라 합니다. 들깻묵 거름이 그 냄새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면 생명을 키워내는 힘이 되는 걸 자연은 배우라고 합니다. 썩어서 다시 향기로 태어나는 들깨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들깨 밭에 바람이 붑니다. 향긋한 가을바람입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떠들썩합니다. 들기름에 지지고 볶으면 살아가는 맛이 나지요.

 

 

 

 

출처 : 강원수필문학회
글쓴이 : 蘭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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