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스크랩] 귀신은 飮食(음식)을 어떻게 먹는가?

강나루터 2016. 1. 25. 19:35

 

 

 

 

귀신은 飮食(음식)을 어떻게 먹는가?

 

조선 숙종 때의 설화이다.
도학자인 허미수 대감의 제사를 후손들이 지내는데,
하루는 산적이 없어 할 수 없이 그냥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그러자 허미수 대감은 잠시 제상을 둘러 보고는

응감을 하지 않고 곧 바로 돌아갔다.
경기도 연천군 왕중면 한탄강 줄기에 있는 한 나루를 건너려는데
마침 대감 댁 하인이 깨끗한 돌 위에다 육산적을 놓고

정성껏 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감의 영혼은 現身(현신)하여 그 사연을 물으니

하인은 숨김없이 이렇게 아뢰는 것이다.
“대감님의 제사상에 올릴 산적을 사러 시장에 갔는데

마침 옛 벗을 만나 술을 나누다가 그만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한 참만에 깨어보니 이미 3경이라 산적 없이 제사를 모셨을 것이고,
그대로 돌아가자니 혹독한 벌을 받을 것은 뻔한 이치지요.
그런데 벌보다도 대감님께서 산적 없이 응감 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죄송하여 소인이 이렇게 잘못을 뉘우치고 육산적을 깨끗이 구어

깨끗한 돌을 정성껏 씻어 제상을 삼고 용서를 비는

제사를 지내는 참입니다.”
그 말을 들은 허미수 대감의 혼령은 잘먹고 간다고 치하하면서,
“너는 곧 집으로 돌아가서 나의 후손들에게 이것을 보이고
내 말을 전하면 벌을 면할 것이니라.” 하면서

소매 자락 속에서 제상에 놓았던 배 한 개를 주며 표적으로 삼으라고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후손들에게 이렇게 전하거라.
살아서는 진지요,

죽어서는 제삿밥이라 하여

밥에는 웬 바위가 그렇게 많이 들어 있고,
국에는 구렁이가 득실거리고, 생전에 내가 좋아하던 산적 하나 없어
이렇게 그냥 돌아 가다 너에게 대접을 잘 받고 간다고 전하라.”

하인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아뢰자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과실 중에 배 하나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밥을 헤쳐보니 여기 저기 돌이 들어 있었고,
국에는 머리카락이 대 여섯 개가 빠져 있었다.

       -혼정설화- 

 

이상의 설화를 보면 귀신 또한 인간과 같이

음식을 가려먹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무속에서 귀신을 다루는데 제일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음식을 잘 차려 대접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제사로서 인간을 대접하듯 신 또한 음식을

잘 차려 대접하면 나쁠 일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데

도대체 귀신은 무엇을 먹었다는 것인가?
실제로 조상굿을 한 번 올리면 먼 친척 귀까지 한꺼번에

몰려와서 음식을 흠향하는데,

주변의 굶주린 객귀까지 한 몫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제를 올린 다음에는 꼭 한 쪽 귀퉁이에

음식을 덜어 이런 객귀를 대접하는 것이 상례이다. 

 

무녀가 제사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시장에 나가면

동자나 동녀신은 사탕이나 과자를 사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만일 제사상에 이들이 좋아하는 단 음식이 빠지면

몹시 서운해 하여 심부름을 일절 하지 않아
모처럼 올린 제가 잘 진행되지 않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신 또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이 먹는 것은 물질을 먹는 것이 아닌 물질 속에 배여 있는

기를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고 난 음식은 수련이 된 사람이 먹으면

기운이 달라진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공 수련을 하는 자에게는 제사 음식에는

기의 손실이 있어 일반 음식만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귀신이 아닌 선신은 대개가 음식을 흠향한 후에

음식을 대접한 사람에게 필요한 기운을 꽂아 두는 일이 잦은 즉

선신의 제사 음식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귀신은 흡기 능력이 짧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흠향하지는 못하여
제사상 하나만 차려도 수십, 수백 명의 귀신을 대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귀신은 한 번 먹으면 오래도록 배고픈것을 모르고

지내기 때문에 인간 세상처럼 식량난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시 굶주려 떠도는 귀신도 있는데
이것이 소위 餓鬼(아귀)라는 것이다.
보통 귀신은 한번 대접하면 오랫동안 배고픔을 모르는데,
아귀는 며칠만 지나도 또 다시 굶주림을 호소한다.
이는 생전에 굶어 죽은 기억이 사무치게 남아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귀는 사람 눈에 띄지 않으므로 시장에 가서

아무 것이나 주워 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귀신이 내키는 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무녀를 따라 나온 동자신이 사탕을 사 달라고

조를 필요도 없이 직접 주워 먹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가가호호마다 조상신이나 터주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사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 세조때 병조판서를 지낸 南怡(남이)의 소년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길에서 놀다가 한 여자 아이가 청색 보자기가 덮인
작은 목판을 이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위에 분으로 화장을 한 女鬼(여귀)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괴이하다 여겨 뒤를 따라가 보니 어느 재상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났다.
남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재상의 딸이 갑자기 혼절하여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남이는, “내가 들어가 보면

낭자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하였다. 

그 집에서는 믿기지는 않았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이를 낭자의 방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남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낭자의 가슴을 누르고 있던
귀신이 남이를 보자 몸을 부르르 떨며 황급히 달아났다.
잠시 후 낭자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이를 본 남이는 안심하고 방에서 나오자

낭자는 다시 혼절하여 쓰러졌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낭자는 다시 살아났다.
남이는 그 집 사람에게 물었다.
“아까 가져온 목판에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까?”
 “목판에 홍시를 담아 왔는데 아가씨가 먼저 먹더니
갑자기 숨이 막혀 쓰러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이는 주인에게 분을 바른 귀신이 목판에 붙어
따라와서는 낭자의 가슴을 눌러 혼절케 하였다는 얘기를 하고,
요망한 것을 쫓는 약을 써서 치료하게 하니,

낭자는 이내 건강을 회복하였다.
이 낭자는 좌의정 권람의 넷째 딸이었고,
남이는 이 일로 인하여 권람의 넷째 사위가 되었다.
-오백년 기담-

 

출처 : 炅祿 作名哲學院(경록 작명철학원)
글쓴이 : 華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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