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국망봉과 배점지명의 유래

강나루터 2011. 2. 13. 21:10

순흥읍내에서 초암사(草庵寺)로 가는길 3.5㎞되는 곳에 세그루의 수령 600년 가량되는 느티나무가 서있다. 이곳을 이름하여 세상사람들이 삼괴정(三槐亭)이라한다. 이나무의 남쪽 도로변에 최근 이전한 적은 정려각(旌閭閣)이 있다. 원래 이것이 배점 국민학교 운동장 서편에 있던 것을 학생들의 운동에 지장이 있다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정려각에 매년 춘추로 동신(洞神)으로 모시는 충신이며 효자인 배순(裵純)이란 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 배순이란 분은 지금으로부터 한 500년전에 어디에서 온지 모르는 분이 이곳에 와서 대장간을 차려 놓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양심적으로 수요자에게 공급하였으며 행실이 착하고 특히 어버이에게 효도가 지극 하였으며 조상을 모시는 정성도 지극하였다. 그 일례를 들면 가을에 타작을 할 때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곡식은 다른 마당에서 정결하게 타작을 해서 보관했다. 당시는 아마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창건하는 때이라 모든 철물을 이분이 정성껏 공급함으로 상인이나 유림사회(儒林社會)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서 퇴계선생(退溪先生)께서 이사람을 불러보시고 칭찬했었다. 퇴계선생이 돌아가심에 쇳곳으로 상(像)을 만들어 놓고 삼년복(三年服)을 입었으며 선조대왕이 붕어(崩御)하시자 매삭망(每朔望)에 정성들여 장만한 음식을 들고 뒷산에 올라 북쪽 궁성(宮城)을 향해 곡제사(哭祭祀)를 3년동안 지냈다. 그 슬픈소리가 궁안에 까지 들리어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고하며 그가 음식을 들고 산에 오를 때 밟은 바위에 아직도 나막신 자욱이 남아있으며 궁성을 바라보며 곡(哭)했다는 산은 뒷사람들이 국망봉이라 한다. 또 배순의 점방이 있던 곳이라 하여 관명(官名)은 평장동이나 모두들 배점(裵店)이라고 동명(洞名)을 부른다. 78살을 살고 죽을 때 맑은날에 큰비가 오고 그의 앞뜰에는 갈가마귀떼가 모여 들어 슬피울며 천하의 효자요, 충신이 운명하는 것을 슬퍼했다고하며 또 일설에는 그의 처가 어느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기집을 보니 집이 모두 화염(火焰)에 쌓여 타고 있는데 그의 남편이 화염에 쌓여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황망히 집에 와보니 집은 아무일도 없었으며 사랑방에 가보니 부군이 평상시대로 누워있었는데 운명(殞命)했더라는 것이었다. 서울에 가면 세종로 을지로등 옛 위인의 이름을 따서 거리이름을 지어 그분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이것과 견주어볼 때 소백산골에 500년전 유림의사회 속에서 근본도 모르는 사.농.공.상의 계급사회안에 공인비치로서 양반도 유생도 아닌 이분이 퇴계와 같은 도덕군자(道德君子)의 칭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행실이 얼마나 돈독(敦篤)했다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후에 그분의 덕을 기리기 위해 그분이 살던 마을의 이름을 배점(裵店)이라 하며 또 그분이 궁성을 바라보며 당시의 임금님의 명복을 빌었다고 하여 국망봉(國望峰)이라 했으니 이분의 덕이야 오백추(五百秋)에 길이 남고 있음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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