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야기

노자 20장

강나루터 2020. 11. 9. 22:48

20

 

 

(1) 원문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美之與惡, 相去若何.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 如嬰兒之未孩, 儽儽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飂兮若無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미지여오, 상거약하. 인지소외, 불가불외,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향태뢰, 여춘등대. 아독박혜기미조, 여영아지미해, 루루혜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료혜약무지.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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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는 공손한 대답, (다듬어진 말), <긍정적 대답>

() : ‘이라는 공손치 못한 대답, (질박한 말) <부정적 대답>

() : 더불다. 더불어 있다. 같이하다. 참여하다. 베풀다.

() : 가다. 떨어지다. 물리치다. 거두어들이다. 피하다. 덜다.

기하(幾何) : 얼마. 얼마나.

약하(若何), 하약(何若) : 어느 정도

() : 거칠다. 허황하다. 어리석다. 모자라다.

() : 다하다. 끝나다. 중앙. 핵심

희희(熙熙) : 밝게 웃는 모양. 밝고 밝다.

() : 누리다. 드리다. 제사지내다.

태뢰(太牢) : 큰 우리, 큰 희생물(, , 돼지). 큰 소를 잡다.

() : 배를 대다. 정박하다. 머무르다. 머무는 곳.

() : 조짐, 점쾌.

() : 어린아이가 웃다.

루루(儽儽) : 나른한 모습. 고달픈 모습. 지친 모습

() : 끼치다. 잃다. 버리다. 버려지다. 부족하다.

돈돈(沌沌) : 물이 크게 도는 모양. 어둡다. 만물 생성의 원인이 아직 나누어지지 않 은 상태. 혼돈스러운 모양

소소(昭昭) : 세상 물정에 밝음. 밝다.

혼혼(昏昏) : 세상 물정에 어두움. 어둡다.

찰찰(察察) : 눈치를 살핌. 살피다. 눈치가 빠름

민민(悶悶) : 눈치를 살피지 못함. 눈치가 없음. 번민하는 모양.

() : 담박하다. 넉넉하다. 맑다. 움직이다. 조용하다. 물이 출렁이는 모양.

() : 높이 부는 바람. 바람소리. 서풍, 헛되다.

() : ~. ~. 쓰임. 쓸모

() : 완고하다. 무디다. 둔하다. 고집스럽다.

() : 비루하다. 다랍다(언행이 순수하지 못하거나 조금 인색하다. 때나 찌꺼기 따위가 있어 조금 지저분하다.) 인색하다. 어리석다. 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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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왜냐하면 근심은 구분 짓는 일에서 생기는데 학문은 바로 구분 짓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분 짓는 일은 시()와 비()를 가리는 것이고, 시와 비는 긍정과 부정의 차이를 분명히 해서 중간을 없애는 것이다.) (실재세계인) (, 긍정)와 아(, 부정)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이며, (가치세계인) 좋다와 싫다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이겠는가. (실제로는 이 두 세계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학문은) (세속인)들이 두려워하는 바를 두려워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학문이) 허황하게도 아직 (진리의) (핵심)에 이르지 못했는데도 (진리인 것으로 인정되어) 사람(세속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학문을 지닌) 뭇 사람들은 밝게 웃으며 큰 소를 잡아 제사지낸 것 같고 봄철에 누대에 오르는 것 같은데, 나만 홀로 (밝게 웃을 일이 일어날) 조짐조차 없는 곳에 머무르는구나. 이것은 마치 갓난아이가 아직 웃지 못하는 것 같고, 지쳐 있는데도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 못 사람(학자)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 홀로 (여유가)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마음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혼돈스럽구나! 세속의 사람(구분의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학자와 일반인)(세상의 물정에) 밝은데, 나 홀로 어둡구나. 세속의 사람은 눈치가 빠르지만(세련되어 있지만), 나 홀로 눈치가 없구나.(세련되지 못하구나.) 담박하기 바다와 같고, 바람소리가 멎지 않는 것 같다. 못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만 홀로 (쓸모없이) 둔하며 어리석은 것 같다. 나 홀로 (똑똑하게 남보다 앞서려는) 다른 사람과 달리 (먹는 것을 해결해주는) 식모만 귀하게 여긴다.

 

 

(3) 해설

 

노자는 20장에서, 당대에 누구 못지않게 학문을 많이 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장기인 학문을 끊으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학문을 깊이 연구한 그에게 학문의 한계와 문제점이 제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현대 서양 철학자인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그의 대표작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에서 학문의 한계와 문제점을 구체자로 전도된 오류(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사고 속에서 구분 짓는 작업부터 해야 하는데, 이때 구체적인 실재 사태(사실이나 사물)는 분리되어 있지 않은데도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벌써 이러한 한계와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잘못 인식된 사태가 진리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가치문제와 연결되면 쓸데없는 근심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인식을 위한 구별을 하지만,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에서는 차별을 낳는다. 아름다움은 좋은 것이고 추함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할 때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는 무엇이며, 실제로 아름다움과 추함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만약에 이러한 경계가 인위적(人爲的)이고 객관적으로 그런 것이 없는데도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쓸데없는 근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뱀이나 할미꽃보다 공작새나 장미꽃이 아름다운가? 자연의 시각에서 보면 그런 차별은 있을 수 없다. 부귀영화(富貴榮華)와 발전(發展)은 좋은 것이고, 빈천소박(貧賤素朴)과 쇠퇴(衰退)는 나쁜 것인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것이다. 젊음이 있으면 늙음도 있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 자연현상과 우주의 원리에는 미추와 좋고 나쁨이 없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며,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차별을 하면서 잘났다고 뽐내며, 못났다고 위축되는가? 그것은 가진 자들이 뽐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치관을 의심 없이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르도록 하는데 학문이 기여하고 있다고 노자는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기여하는 학문을 하는 학자들(衆人)은 권력자(국가소유자)에 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뽐내고 있다. 일반 사람들도 당연히 그들이 구분해 놓은 가치 서열을 그대로 믿으면서 편승하고 있다. 물론 좋은 것을 소유한 경우에는 유쾌하지만, 소유하지 못했거나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근심이 된다. 노자는 아예 빼앗길 무엇이 있고 없고에 따라 일희일우(一喜一憂)하는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이 잘못은 학문의 한계와 문제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48장에 학문을 하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실천하면 나날이 줄어든다(爲學日益 爲道日損)라고 있다. 학문을 하면 늘어나는 것은 근심이며, 도를 실천하면 줄어드는 것도 근심이다. 학문이 근심과 관계있는 이유는 학문이 시비(是非)를 가리게 되고, 이 시비 가림이 가치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치평가로 이어지면 사람들은 가치가 있는 쪽을 선호하게 되고 가치 없는 쪽을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치 있는 쪽을 소유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세상일은 노력으로 안 되는 운명도 있고, 또한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근심거리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근심거리 중 근원적인 것은 생존과 관련된다. 생존과 관련된 근심거리로는 늙음과 병듬과 죽음이 크다. 그러나 이것은 정도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겪는 문제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제외하면 생존과 관련된 가장 큰 근심거리는 절대빈곤문제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자연이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의 통치자가 세금이나 부역 등으로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백성들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노자는 생각한다. 생존과 관련된 근심거리가 없어진 후에 생긴 근심거리는 남들과 비교하여 생기는 것이다. 즉 상대빈곤문제이다. 즉 주변의 사람들보다 잘 살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데서 생기는 근심거리이다. 이 근심거리야말로 쓸데없는 근심거리인데, 바로 학문이 만들어낸 인위적(人爲的)이고 가식적(假飾的)인 것이라고 노자는 주장하고 있다. 왜 우리들은 주변보다 내가 낫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주변보다 못할까봐 근심걱정(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라고 노자는 묻는다.

주변보다 내가 낫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권력, 지위, 학벌, 명예, 인기, 재산 등을 더 가지기 위해 출세와 성공을 하려고 한다. 그들에게는 이 출세와 성공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노자는 67장에서 이러한 출세와 성공을 천하에 앞서는(天下先) 일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감히 천하에 앞서려고 하지 않음(不敢爲天下先)을 자신의 세 가지 보배 중에 넣었다. 노자는 세상의 근심은 바로 천하에 앞서려고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노자는 생존과 관련된 근심거리인 절대빈곤문제의 해결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 이것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천하를 다스려야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노자 자신은 최소한의 소유(생존의 소유)에 만족하면서 세속의 사람들이 추구하는(잘나고 못나고가 구분되는) 가치평가에 따른 가치관을 지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눈으로 볼 때는 홀로 못나 보일 수 있는 자신을 이 장에서 그리고 있다. 근심의 근원인 출세 성공을 향해 학문하는 일반 사람들의 모습과 대비하면서 말이다.

 

<20장 요약도>

주장

학문을 끊으면

(絶學)

근심이 없다(無憂)

학문을 진행하면

(進學)

근심이 있다(有憂)

근거

시비와 미추와 선악이 없다

(無是非, 無美醜, 無善惡)

시비와 미추와 선악이 있다

(有是非, 有美醜, 有善惡)

비교와 평가가 없어

주어인 대로 만족하게 삶

비교와 평가가 있어

불안과 불만족하게 삶

학문을 끊은 자 (絶學者), (我獨)

학문을 하는 자 (勉學者), (衆人)

모호하다(乘乘)

분명하다(熙熙)

결말이 없다 (沌沌)

결말이 있다(有餘)

어둡고 어둡다 (昏昏)

밝고 밝다 (昭昭)

흐릿하다 (悶悶)

밝게 헤아리다 (察察)

어리석고 변변치 못하다 (頑鄙)

수단이 능하다 (有以)

먹는 것의 해결을 가장 귀하게 여김

(貴食母)

똑똑하게 남보다 앞섬을 귀하게 여김

(貴學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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