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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新택리지]소백산에 깃든 선비의 숨결, 사람을 살리는 땅, 영주

강나루터 2011. 8. 23. 06:54

소백산에 깃든 선비의 숨결, 사람을 살리는 땅, 영주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소백산국립공원, 천년고찰의 신비함을 지닌 부석사, 성리학의 산실인 소수서원…. 영주는 발길 닿는 곳 마다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쉬는 ‘선비의 고장’이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향 초상 등 국보 7점, 보물 22점 등 110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예로부터 정감록 10승지중 제1승지로 꼽혔고 ‘사람을 살리는 땅’이란 예찬을 들어왔다. 위도상으로는 36.5도 안팎에 위치해 조선 중종 때 인삼 재배를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풍기인삼과 자연섬유인 풍기인견이 특히 유명하다. 시가지 곳곳에서는 담장이 허물어지고 공원이 들어서는 등 ‘사람의 체온을 가진 고장’으로 가꾸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소백산에서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소백산국립공원에는 늦봄에서 초여름이면 철쭉이 ‘바다’를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영주시청 제공)


중앙고속도로 풍기IC로 빠진 뒤 우회전해서 조금 가니 바로 풍기읍내다. 풍기인삼시장과 인삼 판매·홍보장 등이 곳곳에 몰려 있어 인삼의 고장임을 실감케 한다. 풍기는 주세붕 선생이 1541년 산삼 종자를 채취하여 처음으로 인삼 재배를 시작한 곳이다. 삼국사기에 서기 734년 당 현제에게 산삼 200근을 선물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신라시대 때 벌써 소백산 일대에 산삼이 많이 자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풍기인삼은 유기물이 풍부한 소백산록에서 자라 인삼향이 강하고 유효사포닌 함량이 높다.

옛 정취 가득한 죽령 아래 인삼향 솔솔

풍기읍내에서 단양 방면 5번 국도를 따라 죽령으로 가다보면 도로 양쪽 조금 벗어난 곳에 각각 옥녀봉자연휴양림과 풍기온천이 있다.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을 잇는 고개가 죽령(해발 696m)이다. 죽령은 삼국시대 격전장이었다. 고구려 온달 장군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지금은 산허리를 돌아 오르며 도로가 나 있지만 옛날에는 도로 아래 계곡을 따라 올랐다. 지금의 희방사역에서 죽령주막에 이르는 2.5㎞ 구간의 ‘죽령옛길’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수십년 동안 숲 덩굴에 묻혀 있다가 1999년 복원됐다. 울창한 숲 속 곳곳에 주막터 등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명승(제30호)이다. 길이 호젓하고 운치 있어 영주시민들이 트래킹코스로 즐겨 찾는다.


죽령옛길과거 풍기읍에서 죽령으로 오르던 ‘죽령옛길’은 주막터 등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호젓하고 운치 있는 길이다.

 

뭇 생명 품어 안은 소백, 별빛도 찾아 들다.

국도를 타고 죽령으로 오르자 얼마 안가 검문소가 나온다. 희방사 입구다. 소백산 연화봉으로 오르는 코스다. 소백산은 해발 13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연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지만 날카로운 기운 보다 부드럽고 순후함이 느껴진다. 넓은 고산 초원지대는 왜솜다리 등 야생화 천국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군락지는 천연기념물(244호)이다. 연평균 청명 일수가 70~80일로 어느 곳 보다 많다. 소백산에 천문대가 있는 이유다. 조선시대 풍수가 남사고는 소백산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고 했다고 전한다. 고려 때부터 많은 왕태(王胎)가 안치됐던 곳이기도 하다. 정감록의 십승지지설(十勝之地說)에 따라 이주해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정감록촌’도 금계리 소백산 자락에 있다. 이곳에는 이북에서 전란을 피해온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인견(목재 펄프에서 추출한 실로 짠 순수 천연섬유)이 풍기 특산품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가 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이북에서 직물공장을 하던 월남민들이 풍기로 이주하면서 인견 제조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소백산은 백두대간의 중간에 솟아올라 기품 있는 선비의 풍모처럼 맑고 수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영주의 문화재들은 소백산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 불교적 색채 짙은 봉우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소백산 자락에 묻혀 있다. 희방사, 비로사, 초암사, 성혈사 등 신라 천년의 고찰들이 소백산 골골이 자리하고 있다. 유교문화재 역시 대부분 소백산 자락을 배경으로 들어서 있다. 소백산 초암사 앞 계곡은 ‘죽계구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울창한 숲, 하얀 바위와 어우러진 맑은 계곡물을 따라 내려가니 순흥면 소수서원에 이른다. 이 계곡물길이 죽계구곡으로 약 5리에 이른다. 어느 지점에서든 주저앉아 발 담그고 쉴 수 있는 ‘산 좋고, 물 맑고, 하늘 높은 곳’이다.

붉은 충절이 서린 선비정신의 산실.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강학당과 장서각 등 건물 마다 역사의 깊이가 서려있고 충·효·예·학이 살아 숨 쉬는 선비정신의 산실이다. 죽계천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白雲洞)’은 퇴계의 글씨라고 전해온다. 그 아래 붉은 색의 ‘경(敬)’ 자는 주세붕 선생이 직접 써서 새긴 것이라 한다. ‘경(敬)’ 자와 관련해서는 세조 3년 단종복위 거사 실패로 이 고을 사람들이 ‘정축지변’의 참화를 당한 뒤 이곳에서 밤마다 수장된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 넋을 달래주기 위해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당시 참화를 당한 사람들의 피가 죽계를 따라 10여리를 흘러가 멎은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주세붕 선생이 기존의 절을 허물고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을 창건하면서 불상을 소(沼)에 던져버려 밤마다 괴변이 일어나자 불상을 위로하기 위해 ‘경(敬)’ 자를 새겼다는 전설도 있다.


시가중심가로 서천이 흐르는 영주는 경북의 북단에 있으며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는 좁은 편이다. (영주시청 제공)


소수서원 옆으로는 소수박물관과 선비촌, 선비문화수련원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2004년 문을 연 선비촌은 숙박을 하며 조선시대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인 두암고택 등 이 지역의 유명 고가옥을 본떠 지은 기와집 15채와 초가집 13채, 저자거리, 퇴계가 신분을 따지지 않고 유생들과 함께 학문을 가르친 대장장이 배순의 대장간 등 조선시대 촌락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인근에 단종 복위운동 당시 무참하게 도륙당한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을 비롯한 순절의사들을 제사지내는 곳인 ‘금성대군 신단’과 수양대군이 금성대군을 격리시켰던 ‘위리안치지’, ‘순흥읍내리벽화고분’ 등 유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완벽한 아름다움 부석사, 일출·일몰을 함께 보는 감동까지

소수서원 앞 도로를 따라 봉화 쪽으로 20분쯤 달리니 부석사가 나온다.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완벽함.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사찰이다.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사뿐히 고개 쳐든 지붕의 추녀 곡선과 그 추녀와 기둥의 조화는 절묘하기 그지없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안양루에서 무량수전으로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약간 비켜 선 곳에 석등(국보 제17호)이 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다. 부석사는 소백산을 정원으로 들여놓은 듯한 풍광 또한 일품이다. 동편 원융국사비에서는 일출을, 무량수전 앞에서는 소백산맥 위로 지는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소백산예술촌과 330여만㎡에 이르는 대규모 산양삼밭이 있어 하루 밤 머물며 이 고장의 전통과 낭만을 즐기거나 산양삼을 캐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져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곳.

영주시내에서 서남쪽으로 자동차로 20~30분쯤 가면 물 위에 뜬 연꽃 모양을 한 마을이 나타난다.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이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강과 숲, 은백색 백사장 등 아름다운 자연과 고색창연한 고가(古家)가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소백산에서 발원해 영주시내를 지나온 서천과 태백산에서 발원해 봉화를 거쳐 온 내성천이 마을 뒤에서 합류, 마을을 350도 휘돌아나간다. 영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양반촌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120여 가구 500여명이 살았으나 지금은 50여채의 고가만 남아 보존되고 있고 주민은 40여명이 살고 있다. 해우당, 만죽재 등 고가옥에서는 옛 선비들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진다. 이 마을에는 가게도 없고 민박도 하지 않는다. 마을보존회에서 마을이 상업화돼 기풍이 어지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같은 방침을 정했다. 막바지 공사중인 전통문화체험장이 준공되고 인터넷 홈페이지 등이 만들어지면 이를 통해 머물고 가는 관광객을 체계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외나무다리 건너기, 상여 매기 등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열린다.

영주시는 영주의 서쪽 지역인 풍기읍 수철리 희방사역과 동쪽 지역인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서 각각 시작해 시내 서천에서 합류, 이 곳 무섬마을에 이르는 Y자 형태의 자전거문화탐방로(전체 길이 44㎞)를 만들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시작해 죽계구곡, 삼가리, 정감록촌, 풍기온천, 희방사역, 죽령,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40.7㎞ 구간의 소백산자락길 문화생태탐방로도 조성중이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단양을 지나 풍기IC로 빠지면 된다. 서울에서 2시간~2시간30분 걸린다. 부산에서는 경부고속도로 대구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 영주IC 또는 풍기IC로 나가면 된다. 광주에서는 88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 타면 된다. 부산에서는 2시간 30분, 광주에서는 3시간 조금 더 걸린다. 동서울·강남터미널에서 하루 40회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운행된다.

 <연락처>
 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639-6062
 소백산국립공원 054-638-6196
 소수서원 안내소 054-639-6259
 부석사 안내소 054-639-6498
 선비촌 안내소 054-637-8586

 <풍기인삼축제>
해마다 10월이면 풍기읍 남원천변 일원에서 풍기인삼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10월13일~18일 열린다. 풍기인삼을 테마로 한 다양한 체험행사로 꾸며진다. 인삼 캐기, 깎기, 씨앗 뿌리기, 무게 맞추기, 우량 인삼 선발대회, 인삼 요리 경연대회, 풍기인삼아가씨 선발대회 등이 각종 공연·이벤트와 함께 펼쳐진다. 체험장에서 직접 캔 수삼을 시세 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등 각종 인삼제품을 평상시 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무섬마을, 50여채의 고가가 남은 양반촌 영주 서남쪽에 위치한 무섬마을은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뒤에서 합류해 마을을 휘돌아나가는 고풍스런 전통마을이다. 물 위에 뜬 연꽃 모양처럼 보이는 마을은 강과 숲, 은백색 백사장과 고색창연한 고가(古家)가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영주시청 제공)

부석사, 일출과 일몰 모두 아름다운 사찰 부석사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소백산을 정원으로 들여놓은 듯한 풍광 또한 일품이다. 동편 원융국사비에서는 일출을, 무량수전 앞에서는 소백산맥 위로 지는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영주시청 제공)

소수서원,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강학당과 장서각 등 건물 마다 역사의 깊이가 서려있고 충·효·예·학이 살아 숨 쉬는 선비정신의 산실이다. (영주시청 제공)

소백산 일출, 기품 있는 선비의 풍모 소백산은 해발 13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연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지만 날카로운 기운보다 부드럽고 순후함이 느껴진다. 기품 있는 선비의 풍모처럼 맑고 수려한 모습이다. 연이어지는 초원의 능선 사이로 떠오르는 해는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영주시청 제공)

소백산 설경, 한국의 알프스 대설원의 부드러움과 장쾌함으로 인해 겨울의 소백산은 ‘한국의 알프스’로도 불린다.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 불교적 색채가 짙은 봉우리 이름처럼 소백산 자락에는 희방사, 비로사, 초암사, 성혈사 등 신라 천년의 고찰들이 골골이 자리하고 있다. (영주시청 제공)

은행나무길, 부석사 입구 가을 부석사는 입구의 은행나무에서부터 아름답게 다가온다. 부석사 인근에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소백산예술촌과 330여만㎡에 이르는 대규모 산양삼밭이 있어 하루 밤 머물며 이 고장의 전통과 낭만을 즐기거나 산양삼을 캐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영주시청 제공)

읍내리 벽화고분, 신라시대 채색 벽화고분 고구려와 신라가 접해있던 곳에 남은 신흥 읍내리 벽화고분은 지난 1985년 발견돼 영주시 사적으로 지정됐다. 무덤의 그림들은 삼국시대 회화는 물론 당시의 종교관·내세관, 고구려와의 문화교류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주시청 제공)

금성대군 신단, 사적 제491호 조선시대 단종 복위운동 당시 무참하게 도륙당한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 등 순절 의사들을 제사지내는 곳으로 현재도 봄·가을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영주시청 제공)

출처 : 이슬비의 집
글쓴이 : 이슬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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