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328

죽음에 관한 바른 호칭

*德華滿發* 죽음에 관한 바른 호칭 며칠 전 동창 생 한 분이 돌아가시어 카톡으로 부고(訃告)가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셨다는 말이 아무래도 올바른 것 같지 않습니다. 바른 부고를 보내야 실례도 안 되고, 그 죽음도 한결 품격이 있을 것 같아, 한 번 알아봅니다. 우리말 가운데 죽음에 대한 별칭은 매우 다양합니다. 사망(死亡), 임종(臨終), 별세(別世), 타계(他界), 하직(下直), 서거(逝去), 작고(作故), 선서(仙逝), 기세(棄世), 하세(下世), 귀천(歸天), 영면(永眠), 영서(永逝), 영결(永訣), 운명(殞命), 절명(絶命) 등등, 이 외에도 엄청나게 많지요. 이는 우리 선조들이 오래도록 죽음을 고민하고 살았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합니다. 간혹 신문 기사에서 ‘유명(殞命)을 달리했다.’라는..

역사 이야기 2022.12.15

탕평(蕩平)의 교지(敎旨)

탕평(蕩平)의 교지(敎旨) 경종은 재위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동생인 금(昑)이 즉위하였다. 그가 바로 영조(英祖)이다. 영조가 즉위한 초기에는 소론파(少論派)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왕은 붕당의 폐해를 깊이 느껴 붕당의 대립을 중지하고 융화시키려는 뜻이 있었다. 원년 정월에 빛나는 탕평(蕩平)의 교시를 내려, 마땅히 붕당의 습성을 버리고 공평함에 힘쓰며 불편부당하게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와 왕실을 보전해야 한다고 유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인무옥(壬寅誣獄)의 진상이 폭로되어 왕은 그 수괴 【소론】 인 김일경(金一鏡) 및 목호룡(睦虎龍)을 주살하고 소론 무리들을 귀양 보내고 노론 사람들을 채용하였다. 그렇지만 원래 왕은 당파의 조정과 융화를 주요한 것으로 삼았으므로, 한 당파에 오랫동안 정권을..

역사 이야기 2022.12.08

11/10목 맑음

ㅇㅇㅇ 쉬운 일을 하려고 성천네 집앞에 나무가지를 치우면서 나무 단을 묶으려니 땔 나무로도 적당치 않고 어설푸기가 그지 없다 눈이 많이 내린다음에 잡목을 태우는것이 좋을것 같다 광욱이네 집뒤에 사태에 넘어진 나무 가지들을 조금 정리했다 흙을 한바리 파옮기려니 몸도 아프고 기운이 빠져서 삽질을 할수가 없다 집에와서 점심을먹고 컴퓨터에서 진심마경을 찾아서 읽었다 콩 타작을 하려고 섬돌을 내려 서려는데 트림이 나오더니 속이 펑 뚫리는듯 편안해지고정신이 돌아온다 한의에서 말하는 기가 체한 병이였나 보다 기체에는 주문을 읽어도 좋고 친구와 담소하며 기분전환하는것도 병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식체든 기체든 몸속이 아프고 기가 통하지 않아 금방 죽을것 같이 고통이 심한것이 특징이다 오후에는 기분 좋게 연못 가에 서 뽑은..

역사 이야기 2022.11.11

스크랩] ‘杜門不出’_두문동 72賢을 찾아서 | 경독재

스크랩] ‘杜門不出’_두문동 72賢을 찾아서 | 경독재 강나루 2013. 7. 14. 16:12 수정|삭제|공개 http://blog.daum.net/naru636/1951 잊혀진 충신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성계 역성혁명 반대해 ‘두문동’서 은거하다 탄압 … 철종·고종 때 문헌에 ‘72현’ 언급 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500년 고려의 수도였던 그 개성 땅에 은둔의 현인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고사를 만들어낸 두문동(杜門洞) 72현이다. 주간동아는 역사에 가리어진 은둔의 현인들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편집자 주 조선 왕조가 고려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마련한 숭의전 전경. 우리는 우리 안에 영웅을 만들어낸 경험이 별로 없다. 우리를 세상의..

역사 이야기 2022.08.14

우리 고古지 도

昔暗 조헌섭 2022.06.11 08:01 신고 수정/삭제 답글 블방 쌤님 보훈의 달 6월 중순이 고개를 내미네요. 김정호가 간행한 대동여지도보다 400여 년이나 앞서 제작된 고(古)지도 강리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로서, 중국과 일본의 지도를 바탕으로 1402년에 김사형, 이무, 이회가 제작한 가로164cm, 세로 148cm인 대형 지도는 일본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인도보다 대국이었다는 점… 우리 선조들이 지도적 대국에서 살았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나 애석하게도 이 지도의 원본은 우리나라에 없고 임진왜란 중에 가토 가야마사가 훔쳐 가 현재 교토류코쿠 대학에 한 점 또 다른 한 점은 텐리 대학에 보관 중인 우리 문화재를 반드시 되찾았으면…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강리도는 서울대 이찬..

역사 이야기 2022.06.12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시기는?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시기는? 고구려때 이미 한자가 들어온걸로아는데 대락어느시기쯤되는지요? 한자/한문 역사/역사학 2006.10.08 수정됨 최초등록일 2006.06.09 14:40 최종수정일 2006.10.08 17:06 신고 猫さん의 질문입니다. A 답변하기 선택됨 우수 답변 등록 우선 답변 한자의 전파〕 한국에 한자가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BC2세기 위만조선으로 짐작된다. 한자가 본격적으로 유입·전파된 것은 삼국이 자리잡은 6∼7세기 무렵으로 중국과 외교문서가 오고간 기록이 있고, 한자로 기록된 명문(銘文)·탑기(塔記) 등이 현존하여 이 무렵에는 이미 지배층 사회에 한자가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의 한자사용에 대해 알 수 있는 예로는 414년(장수왕 2) 건립되어..

역사 이야기 2022.05.01

현량고독도(懸梁苦讀圖)

크랩] 현량고독도(懸梁苦讀圖)-탕담생(湯炎生)- | 자유게시판 강나루 2014. 12. 6. 12:13 수정|삭제|공개 http://blog.daum.net/naru636/3229 ※ 현대 중국화가 탕담생(湯炎生)의 현량자고(懸梁刺股)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달고 넓적다리를 송곳으로 찌르다. 두현량(頭懸梁) 추자고(錐刺骨), 자고현량(刺股懸梁) 또는 현두자고(懸頭刺股)라고도 한다. 스승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부지런히 노력함을 일컫는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종횡가(縱橫家)의 비조이자 합종책(合從策)으로 유명한 소진(蘇秦)과, 동한(東漢)의 대학자 손경(孫敬)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정확히 현량은 손경, 자고는 소진의 사례에 해당한다. 소진은 동문수학하던 장의(張儀)가 출세한데 자극 받고, 가족들까지 홀대하자 ..

역사 이야기 2022.04.15